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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 나라 좋은 나라(김영명)

사대주의에 대하여(2) 

by 한글문화연대 2017. 2. 22.

[우리 나라 좋은 나라-67] 김영명 공동대표


사대주의에 대하여(2)


그러면 사대주의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큰 나라, 앞선 나라를 섬기거나 우러러 보고 그 힘을 추종하며 자기 것을 업신여기는 마음 상태이며, 큰 나라와의 관계가 국내외 정책의 근본을 규정하는 정책 사조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현대 한국의 사대주의는 중국의 변방으로 살아온 오랜 역사, 일본의 강점, 그리고 미국에 대한 의존 등 한민족의 지정학적 역사에 뿌리박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강대국의 영향이나 지배 하에 있었던 역사가 과거에는 물론이고 주권 국가의 모습을 갖춘 현대에도 대외 의존적 구조와 심성을 탈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런 사대적 마음이나 정책은 역사적으로 중화 사대주의, 문명 개화 사대주의, 친일 사대주의, 친미 사대주의, 세계화 사대주의 등등의 모습으로 다양하게 변신해 왔으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측면에서 나타났다. 이 모든 면의 깊은 곳에는 심리적 사대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사대주의는 정치적 사대주의, 문화적 사대주의 등 여러 측면에서 나타나지만, 이 모든 분야에 공통되게 정신적·심리적 사대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이다. 


사대주의는 지배층이나 피지배층, 또는 다른 말로 엘리트나 대중 모두에게서 나타날 수 있다. 이 가운데 대외 관계를 규정하는 정치적 사대주의는 주로 지배 엘리트의 몫이겠고, 정신적, 문화적 사대주의는 엘리트와 대중 모두에게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사대주의는 한국의 지배층 또는 엘리트가 대중을 지배하는 방편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국의 역사에서 지배층이 중국이나 일본, 미국의 정치적 또는 문화적 힘에 의지하여 피지배 대중 위에 군림한 사례가 아주 많다. 한국의 지배 엘리트는 중심국의 지배 엘리트와 밀접히 연결되고 이런 관계를 국내에서 지배력의 원천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사대주의는 대중에 비해 엘리트 사이에서 더 강해 보인다. 엘리트들이 힘센 외국과의 교류나 연결이 잘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의 엘리트들이 자국의 대중보다는 강한 나라의 엘리트들과 더 동류 의식을 느끼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국 엘리트층의 사대주의는 수없이 많은 사례들에서 나타난다. 최근의 대표적인 예로는  2000년대에 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난 성조기 시위를 들 수 있다. 개신교 지도자를 위시한 보수 엘리트들은 대한민국의 안위를 걱정한다면서 ‘반미’ 운동을 비판하고 성조기를 흔들면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는 했다. 2002년의 미군 장갑차 사건 때에도 그런 시위를 벌였으며, 2008년의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에 대한 맞불 집회에서도 같은 모습을 보였다. 더 최근 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도 한국의 보수 인사들은 대형 성조기를 흔들었다. 도대체 박근혜 탄핵하고 미국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럴까? 대한민국의 안위를 위한다는 그들은 왜 성조기를 흔들까? 바로 대한민국의 안위에는 미국의 도움이 필수적이며 미국을 떠나서는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없다는 의식과 무의식 모두의 포로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대주의는 주로 대외관계에서 나타나지만, 국내의 세력관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대외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도 그것은 ‘큰 힘을 좇는’ 사상이나 사조를 말한다. 그런데 그 큰 힘은 국내와 국외를 관통하여 연결되어 있다. 이완용은 친미파가 되었다가 친러파가 되었다가 결국 친일파가 되었는데, 전형적인 사대주의자요 기회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나라 밖으로 큰 나라에게 의존하면서 나라 안에서는 자기 자신이 큰 힘이 되었다. 이들을 좇는 무리들 역시 나라 안팎의 사대주의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반면 반외세적 행동은 엘리트보다는 대중에게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한국 역사에서 외침을 받았을 때 왕이나 지배층은 도망가고 의병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어선 경우가 허다했다. 임진왜란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조선을 침략한 왜군은 ‘걸어가는 속도’로 한양을 향해 전진하였고, 당시 임금이었던 선조는 평양으로 신의주로 도망가다가 급기야는 명나라에 망명 신청까지 하였지만 명에서 거부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 동안 백성들은 궐기하여 왜군과 싸우고 도망가는 임금 무리에게 돌을 던지고 침을 뱉었다고 한다. 이런 사례들은 선조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비슷한 사례들이 한국 역사에서 심심하면 나타난다. 민중이 들고 일어나자 이를 진압할 능력이 없는 조정은 외국에 군대를 파병하여 진압해 주기를 요청한다. 동학 농민 봉기가 일어나자 고종은 청나라에게 그 진압을 요청한다. 청의 개입으로 봉기는 실패하고 우두머리 전봉준은 참수 당한다. 제 나라 백성들을 남의 나라 군대가 죽여주기를 원하는 임금이 과연 어느 나라의 임금인가? 그것도 자기는 죽일 능력도 없었으니 더 한심한 일이었다. 결국 청군의 개입이 일본 군의 개입을 부르고 조선은 중국과 일본의 전쟁터가 되어 버린다. 다른 나라들이 전쟁하는데 우리 땅을 빌려주고 우리 백성들이 학살당하고 우리 재산들이 불탄다. 그 결과 조선은 외교권을 잃고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하고 결국 식민지가 된다. 출석 일수를 제대로 채운 고등학생이라면 다 아는 얘기를 여기서 나는 왜 반복할까? 한국 지배층의 외세 의존은 민중 탄압과 직결되었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환기시키기 위해서이다. 근대 이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물론 이 경우 대중들이 저항적 민족 엘리트의 지도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조선 말기에도 지배 엘리트가 앞장서서 나라를 일본에 넘긴 반면 일부 저항 엘리트들과 민중들이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곧 외세와 그것에 편승한 조정에게 진압당하고 말았다. 한국사의 힘은 외세와 사대주의자들에게 있었지 외세 저항세력에게 있지 않았다. 한국사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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