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철리(水鐵里)는 ‘철’이 많이 나던 마을이 아니다.
- 땅이름의 본래 뜻과 변화

한글문화연대 기자단 4기 유원정 기자
ybwl81@naver.com

 

우리나라 땅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우리가 땅이름을 보고 유추해낸 뜻이 과연 알맞은 것일까? 예를 들어 수철리(水鐵里)는 한자어 뜻을 통해 물과 쇠가 있는 마을이라고 추측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수철리는 쇠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마을이다. 그런데 왜 마을 이름에 철(鐵)이 들어간 걸까? 한글문화연대에서 지난 6월 2일 개최한 ‘알음알음 강좌’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들을 수 있었다.

 

고유어 땅이름이 사라지다
우리나라 땅이름 중에 한자어 표기와 원래 의미가 다른 이름이 상당히 많다. 그 이유는 고유어 땅이름이 한자어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신라 시대 때부터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삼국사기 지리지』는 1145년 고려 인종 때 김부식이 편찬한 책으로 고대 지명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되고 유일한 기록이다. 34권에서 36권까지 각각 신라·고구려·백제의 지명을 다루었으며, 37권은 고구려·백제 지명에 추가 설명을 담았다. 신라 경덕왕은 757년에 고유어 땅 이름을 한화(漢化), 즉 한자어로 바꾸었다. 한자 뜻과 관계없이 소리만 빌려 적던 것을 한자 뜻에 따른 지명으로 바꾼 것이다. 예를 들면 ‘무수막’은 원래 물가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무수’는 말이 변화해 온 과정을 거꾸로 유추하면 폐음절인 ‘뭇’인데, 이는 ‘물’을 일컫던 말이다. ‘막’은 마을을 뜻한다. (또, ‘수’는 특별한 뜻이 없고 글자를 연결하는 문법적 역할을 한다.) 따라서 원래는 뭇막으로 불렸다. 그런데 이 ‘뭇막’을 ‘무수막’, ‘무쇠막’으로 발음되었는데 이를 한화하면서 ‘무수리(無愁里)’로 소리바꿈하거나 ‘수철리(水鐵里)’로 뜻바꿈하게 되고 마을 이름이 아예 다른 뜻으로 바뀌었다. 물가에 있는 마을이 아무런 관련이 없는 쇠와 연결되어버린 것이다.


지리지에 원 지명과 한화지명을 나란히 적어 놓아 원래 땅이름을 추정하고 복원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있다. 그러나 이렇게 ‘땅이름을 한자어로 바꾸는 것’은 도성 단위의 큰 행정 구역명이 대체로 한화(漢化)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일제강점기 초기에 행정구역 등록 과정에서 우리말 땅이름이 원칙 없이 한자 이름으로 수정되었다. 그리고는 우리말로 다시 복원되지 못했다.

 

땅이름의 문법적 변화

배우리 선생은 예로부터 우리 말은 폐음절에서 개음절로, 단음절에서 다음절로 발전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말 땅이름 역시 그렇게 변화해 왔다. 폐음절은 말의 끝소리가 ‘ㄷ’과 같이 닫히는 소리로 끝나는 말이고, 개음절은 모음이나 ‘ㄹ’로 끝나 소리가 마지막 끝나는 음절이다. 단음절은 음절의 수가 하나이고, 다음절은 음절의 수가 둘 이상인 음절이다. 그래서 말에서 주로 받침이 사라지고 한 음절이 두 음절 이상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갓골’이 ‘가사골, ‘가자골’로 바뀌었다. 폐음절 ‘갓’의 끝소리 ‘ㅅ’이 떨어져 나가 ‘가’라는 개음절이 되고, ‘ㅅ’는 ‘사’ 혹은 ‘자’로 발음되면서 ‘갓’이 ‘가사’ 혹은 ‘가자’로 음절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원래의 우리말 땅이름을 찾는데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동물 이름이 들어갔는데 동물과 아무 상관이 없다?

‘꿩마을’이 있다고 한다. 꿩마을은 이름 그 자체로만 보면 꿩이 많이 나오는 동네인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은 끝에 자리한 마을이라는 의미이라고 한다. ‘끝’ 혹은 ‘구석’을 의미하는 ‘굿’ 또는 ‘갓’이라는 말에 장소를 의미하는 ‘억’이 결합한 ‘굿억’이 ‘구억’이 되고, ‘구엉’, ‘궝’, ‘꿩’이 된 것이다. 그게 ‘꿩마을’ 이름의 변화과정이다. 또한 ‘곰나루’도 곰이 많이 나오는 지역이 아니다. 곰나루의 ‘나루’는 ‘내[川]’가 ‘날’, ‘나루’가 된 것으로 예전에 나루는 나루터가 아니라 ‘내(川)’ 그 자체를 의미한 것이었다. 즉 강을 의미하는 ‘내(川)’가 후대에 와서 배가 드나드는 나루터로 쓰이게 된 것이다. 또한 ‘곰(감)’은 ‘신성한’, ‘큰’을 의미한다. 따라서 곰나루는 신성하고 큰 강이 있는 마을이다. 가재울 또한 가재가 많은 마을이 아니라 ‘갓’에 ‘애’가 더해진 것으로 가장자리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이름을 글자 그대로 읽지 말고 말의 변천과 함께 이름이 생겨난 과정을 생각해야 본래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생활권으로 발음이 나뉘다
지방마다 같은 이름을 다르게 발음하는 방언이 있다. 이는 산맥과 강이 경계선 역할을 하여 생활권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활권에 따라 땅이름에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경상도는 ‘어’ 중심 방언권이고 전라도는 ‘오, 이’ 중심 방언권이고 충청도는 ‘으’ 중심 방언권이다. 그리하여 경상도에서 ‘너르목’이 전라도에서는 ‘노리목’, 충청도에서는 ‘느르목’으로 다르게 쓰인다. ‘넓은 목’을 지방마다 다르게 부르는 것이다. 이게 점점 시간이 흐르며 ‘노루목’, ‘너르목’으로 변했다.

 

우리식 한자로 쓴 땅이름
우리식 한자(國字)는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는 우리만의 한자로 인명과 지명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 사용하던 것이다. 한자의 뜻과 관계없이 고유어의 음절을 적기 위해서였다. 한자에 한글이나 한자로 받침을 쓰는 것이 특징이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 때 우리식 한자를 새로 만들어 땅이름을 표기하였다. 이두를 차용해 새로운 표현을 만든 것으로 예를 들면 乫(갈)이 있다. ‘加(더할 가)’에 ‘乙’을 붙여서 ‘갈’이라는 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식 한자로 표기한 땅 이름은 乫坡之(갈파지), 乬五(걸오), 旕(엇) 등이 있다. 여기서 ‘叱’는 세게 읽으란 의미로 주로 ‘ㅅ’ 받침 대신 쓰인 것이다.

 

땅 이름은 우리말의 곳집
현재 우리말 땅이름은 상당 부분 한자어로 바뀌었고, 점차사라지고 있다. 우리말 땅이름의 본 뜻을 알지 못하고 한자어 표기로 뜻을 파악해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땅이름의 기원과 변화 과정을 잘 살펴야 땅이름 속에 담겨 있던 우리말을 찾을 수 있다.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선생은 ‘땅이름은 우리말의 곳집이다’라고 강조하셨다. 곳집은 창고를 의미한다. 즉 땅이름 속에 우리말, 옛말, 방언 등이 모두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말 땅이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이유로 변화된 땅이름의 본래 의미를 알아야 한다. 한자어로 바뀐 우리말 땅이름을 조사하고 복원하거나, 한자어 땅이름과 우리말 땅이름을 같이 표기하여 본래 의미를 기억하게 하면 어떨까. 땅이름에 깃든 우리말에 관심을 두고 그 의미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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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