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방/대학생기자단

2017년 서울에서 듣는 우리 조상의 노랫말 - 오주현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17. 7. 6.

2017년 서울에서 듣는 우리 조상의 노랫말
- “순간의 풍경들, 『청구영언』 한글 노랫말 이야기"

 

한글문화연대 대학생기자단 오주현 기자

dhwnus@snu.ac.kr


사람들도 북적대는 지하철 개찰구 앞, 서울 지하철 2호선 합정역 거리, 웃고 떠드는 고등학생들,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한 노인의 모습……. 결코 낯선 풍경이 아니다. 우리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런데 이 익숙한 풍경 속에서 조선시대의 가곡(歌曲)이 흘러나오는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필자는 평소에 “우리 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우리 것의 하나인 가곡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사실상 가곡을 접할 기회가 현저히 부족했다는 것이 무지의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그런 점에서 국립한글박물관에서 9월 3일까지 진행되는 기획특별전, ‘순간의 풍경들, 『청구영언』 한글 노랫말 이야기’는 가곡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기회였다.

▲ 국립한글박물관 기획특별전, ‘순간의 풍경들, 『청구영언』 한글 노랫말 이야기’ 입구의 모습


구전되던 노랫말을 담은 가장 오래된 책, 『청구영언(靑丘永言)』
김천택이 편찬한 『청구영언』은 지금까지 전해지는 가장오래된 가곡의 노랫말을 담은 책이다. 그는 민간에서 입으로 전해오던 노래가 사라지지 않도록 고려말부터 1728년까지 애창되던 가곡의 노랫말을 수집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청구영언』 원본이 민간에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의의가 크다. 우리 가곡은 세피리, 대금, 거문고, 해금, 장구 등 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는 통 성악곡이다. 가곡은 조선사회 지식층에서 애창되면서 발전하였다. 시조·가사와 함께 정가(正歌)라고 하여 판소리나 잡가 또는 민요처럼 일반 백성들에 의해 구전되는 속가(俗歌)와는 예술적으로 구분된다. 특히 우리가 흔히 홍난파니 슈베르트니를 떠올리는 '가곡'은 현대 시에 피아노 반주를 곁들여서 노래하도록 작곡가들이 작곡한 것인데, 이와도 엄연히 구분된다.

▲『청구영언』 원본

『청구영언』의 노랫말은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과 생각, 감정을 담고 있다. 특히 이 책에 담긴 노랫말 중에는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정치적 사건이나 인물들의 일화를 담은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았던 정몽주의 ‘단심가’나 이방원의 ‘하여가’를 들 수 있다. “이 몸이 죽어죽어 일백 번 다시 죽어~”,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전시 중에 익숙한 노랫말을 마주하니 『청구영언』이 한층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에 대한 설명

“삶의 순간을 노래하다”

그러나 이 전시의 진정한 묘미는 비단 유명한 노랫말을 발견하는 재미에만 있지 않다.『청구영언』에는 유명한 인물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당대 한양의 일상을 생생하게 담은 노랫말, 사랑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다양한 노랫말, 노래를 짓고 부르던 풍류방 속 사람들의 노랫말을 모두 담고 있다. 그래서 그 노랫말 속에는 가식이 없으며 사람 사는 모습이 가득 담겨있다. 약 300년이 지난 오늘날의 우리에게까지 시대를 넘어선 동질감이 전해지는 듯하다. 현대라는 공간에서 시대를 초월한 우리 민족의 정서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전시의 진짜 묘미이다.

 

전시실에 비치된 공중전화의 수화기를 들면 사랑에 빠진, 서로를 그리워하는 남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300년 전에 쓰인 가사지만, 오늘날 사랑에 빠진 남녀가 들었을 때도 가슴 절절한 그리움이 충분히 느껴진다.

▲ 전시실에 비치된 공중전화기. 수화기를 들면 노랫말이 흘러나온다.

▲ 사랑을 주제로 한 『청구영언』의 노랫말 중 하나

가곡을 읊조리다, “산 절로절로”

전시의 또 다른 묘미는 전시실에서 제공되는 아름다운 영상물에 있다. 특히 가곡 가창자 박민희 씨의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삼아 만들어진 영상물에서는, 어느 현대 여성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 내용이 전개되는데, 잔잔한 노랫말과 영상미가 어우러져 정말 아름다웠다. 영상을 보고 나오니 머릿속에 영상의 잔상이 남으며 절로 가사를 읊조리며 부르게 되었다.


“산 절로절로 물 절로절로 ~ 두어라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전시 말미에는 <명창 이동규를 소개한 스크린>이 있다. 명창 이동규 씨는 중요무형문화재 제 30호인 가곡인으로 2010년에는 가곡의 역사적 가치와 예술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인류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하였다.

▲ 박민희 씨의 창을 배경음악으로 삼아 만들어진 영상물

▲『청구영언』 속 노랫말 중 하나. 가곡 가창자 박민희 씨가 이 가사로 부른 창이 흘러나온다.

그곳에서 접할 수 있었던 명창 이동규 씨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가곡을 들으시면 흥이 나거나 신이 나거나 이런 것이 절대 아니고 들으시면 듣는 대로. 선율의 아름다움, 미…그런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가곡에) 관심을 가지고 이게 남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것이고 우리 선조들부터 내려온 것인데 한 줄이라도 이렇게 중얼중얼할 수 있는 것이 우리 민족의 혼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명창 이동규에게 듣는 가곡이야기 중

 

본 전시는 우리 노랫말의 아름다움과 사람 사는 이야기에서 나오는 공감과 위로, 그리고 자꾸만 따라 부르고 싶은 가곡 한 곡조까지 여러 마리의 토끼를 한번에 잡을 수 있는 전시회임이 분명하다. 9월 3일까지 계속될 전시인 만큼 친구, 연인, 가족 그리고 자녀들까지 함께 관람하며 한글 노랫말과 가곡의 아름다움을 느껴 보기를 바란다.

 

▶ “순간의 풍경들, 『청구영언』 힌글 노랫말 이야기” 전시정보

장소: 국립한글박물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9) 기획전시실
전시기간: 2017.04.28. ~ 2017.09.0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