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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아, 그 말이 그렇구나(성기지)

잊혀진 계절

by 한글문화연대 2018. 1. 18.

[아, 그 말이 그렇구나-219] 성기지 운영위원

 

기부금이나 후원금을 옳지 않게 사용한 단체와 개인에 대한 보도 때문에 요즘 기부 문화가 많이 움츠러들었다고 한다. “이 돈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여지기를 바랍니다.”란 문장에서 ‘쓰여지다’는 옳은 말일까? 이 말은 ‘쓰다’라는 동사에 피동 표현이 겹쳐서 나타난 것이다. ‘쓰다’는 피동형을 만들어주는 ‘이’를 넣어서 ‘쓰이다’로 적으면 이미 피동이 된다. 여기에 또다시 ‘-지다’를 붙이는 것은 바르지 않다. 이 문장은 “이 돈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이기를 바랍니다.”와 같이 고쳐 써야 한다.


“그와 같은 기부 천사는 잊혀질 리가 없다.”에서도 ‘잊혀질’이라는 표현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 ‘잊다’의 피동형은 ‘잊히다’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잊혀지다’로 알고 있다. <잊혀진 계절>이라는 대중가요까지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잊혀지다’는 ‘잊히다’라는 피동형에 또 피동을 만들어주는 ‘-지다’를 겹쳐 쓴 말이다. ‘잊혀질’이 아니라 ‘잊힐’이고, ‘잊혀진 계절’은 ‘잊힌 계절’이 맞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에,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란 구절이 있다. 이때의 ‘잊힐리야’가 올바로 쓰인 말이다.


나날살이에서 쓰는 말 가운데 이러한 예들은 참 많다. “사랑이 담겨진 기부금”도 “사랑이 담긴 기부금”으로 바로잡아 써야 한다. “그 프로그램 진행자가 어느 틈에 바뀌어졌네.” 하고 흔히 말하는데, ‘바꾸다’의 피동형은 ‘바뀌다’이다. 따라서 “그 프로그램 진행자가 어느 틈에 바뀌었네.”로 해야 올바른 표현이 된다. ‘피동형쯤은 좀 틀린들 어때?’ 하고 생각한다면, 우리 말글살이에서 언제나 피동적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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