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말이 그렇구나-238] 성기지 운영위원

 

혼자 사는 이들이 늘면서 먹거리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밥을 미리 지어 용기에 담아 파는 ‘햇반’은, 어르신들에겐 여전히 낯설게 느껴진다. ‘햇반’은 식품업체에서 지어낸 상품이름일 뿐 본디 쓰이던 우리말은 아니다. 우리말에는 “그 해에 새로 난 쌀로 지은 밥”을 ‘햅쌀밥’이라고 하는데, ‘햇반’은 아마 햅쌀밥을 떠올리도록 지어낸 말인 듯하다. 그러나 이 상품이 그 해에 난 햅쌀로 지은 밥이라고 믿는 이들은 별로 없다.


‘햇곡식’, ‘햇밤’, ‘햇병아리’ 들에서의 ‘햇-’은 ‘그 해에 새로 난 것’을 뜻하는 접두사이다. 다만 이 ‘햇-’이 ‘쌀’과 결합할 때에는 ‘햇쌀’이 아닌 ‘햅쌀’이 된다. ‘쌀’이나 ‘씨’, ‘싸리’, ‘때’ 들은 본디 첫머리에 ‘ㅂ’ 소리를 가지고 있었던 말로서, 현대국어에서 제 홀로 쓰일 때에는 첫머리의 ‘ㅂ’ 소리가 숨어 있다가, 다른 낱말이나 접두사와 만나는 경우에는 두 말 사이에 숨어 있던 ‘ㅂ’ 음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햇’과 ‘쌀’이 만나면 ‘햇쌀’이 아니라 뒤의 ‘쌀’이 본디부터 가지고 있던 ‘ㅂ’의 영향을 받아 ‘햅쌀’이 되는 것이다.


차진 쌀을 말하는 ‘찹쌀’이나 ‘차지지 않고 메진’ 쌀을 뜻하는 ‘멥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또, ‘벼’와 ‘씨’가 합쳐져서 ‘볍씨’가 되고, ‘대’와 ‘싸리’가 합쳐져서 ‘댑싸리’가 된다. ‘여태’를 뜻하는 ‘입때’와 ‘저번 때’를 뜻하는 ‘접때’도 모두 이러한 경우이다. ‘쌀’, ‘씨’, ‘싸리’, ‘때’ 들의 첫머리에 숨어 있던 ‘ㅂ’ 소리가 낱말의 합성 과정에서 살아나 끼어드는 사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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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