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국에 산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5기 하성민 기자
anna8969@naver.com

 

의식주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집은 한 가족이 살아가는 기본적인 생활공간이자 따뜻한 보금자리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공간이다. 그러나 길을 걷다 보면 보이는 다양한 집들은 포근함과는 거리가 멀고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파트, 빌라 등 많은 주거형태의 이름에 낯선 외국어가 난무하기 때문이다. ‘래미안(來美安)’이라는 한자로 쓰인 이름은 애교이며 ‘솔베뉴’, ‘그라시움’, ‘배네루체’, ‘뜨레피움’과 같이 뜻조차 알 수 없는 외국어가 들어간 이름이 많다.

 

왜 아파트 이름에는 외국어가 꼭 들어갈까?
우리는 한국에 살고 있는데 왜 우리가 사는 아파트와 빌라는 외국을 떠오르게 할까. 이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의 원리 때문이다. 아파트의 이름은 첫인상을 좌우하기도 하고 분양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건설사는 외국어 이름을 통해 더욱 차별화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고 싶어 한다. 소비자들은 더 괜찮은 곳에 살기 위해, 혹은 집값이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멋있는 외국 이름의 아파트를 선택하게 된다.
아파트 이름에 외국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유명 건설사 아파트(브랜드 아파트)의 등장과 관련이 깊다. 2000년 대림산업은 용인시에 새로 지은 아파트의 분양을 앞두고 대림아파트라는 이름을 e-편한세상으로 바꿨다. 삼성물산이 건설 부문에서 업계 처음으로 ‘래미안’이라는 아파트 브랜드 선포식으로 브랜드 아파트의 시대를 열었다. (네이버 캐스트 아파트 문화사- 브랜드 아파트 시대)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에는 아파트에 사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계층의 분화를 가져왔다면 2000년대 이후는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지 여부가 사회적 계층을 나누는 중요한 기준이 됐다.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 탓에 브랜드를 만들기 이전에 지은 아파트에서 개명신청을 하는 사례도 볼 수 있다. 브랜드 이름에 따라 부동산 시장에서 집값이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2007년에는 서울 동작구의 롯데낙천대아파트 입주자들이 외관 페인트칠 공사를 하면서 ‘롯데캐슬’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이처럼 건설사와 입주민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이국적인 이름의 아파트 숲을 이루게 된 것이다.

 

‘파라곤’ ‘자이’ ‘센트라스’ 가 무슨 뜻인데요?
2018년 3월 서울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서 사실상 생활하며 서울시의 행정서비스를 받는 모든 인구를 뜻하는 ‘생활인구’가 가장 많은 자치구는 강남 3구 강남, 송파, 서초이다. 네이버 부동산을 통해 강남 3구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본 아파트를 살펴봤다. ‘렉슬’ ‘리체’ ‘리센츠’ 등의 의미를 알 수 없는 외국어로 된 아파트가 많았다.

 

▲ 서울시에서 생활 인구가 가장 많은 자치구 중 하나인 강남구의 아파트. 외국어로 된 이름이 많다. 

 

▲ 사람들이 많이 찾아 본 서초구 아파트 목록. ‘래미안 아이파크’ ‘센트럴 푸르지오’ ‘리체’ ‘자이’ ‘퍼스티지’등 뜻을 알기 어려운 외국어가 많다.

 

▲ 송파구의 아파트 역시 마찬가지로 영어로 된 이름들이 많이 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부동산의 열기가 뜨거운 강남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외국어 이름의 아파트는 신도시나 재개발 지역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이 외국어들은 무슨 의미일까? ‘자이(Xi)’는 ‘extra intelligent(특별한 지성)’의 약자로 만든 말이며, ‘센트레빌’에서 ‘센트레’는 중심을 뜻하는 프랑스어이자, 영어로 ‘세기’를 뜻하는 ‘센트리(century)’에 단지를 뜻하는 빌(ville)이 합성된 단어이다. ‘파라곤’은 모범, 본보기를 뜻하며 ‘푸르지오’는 우리말 ‘푸르다’에 공간이라는 의미의 지오(geo)를 합성한 단어이다. ‘센트라스’의 경우 ‘센트럴’(Central)과 ‘지상낙원’이라는 ‘아틀란티스’(Atlantis)를 조합한 말이다.
 요즘 짓는 아파트들은 브랜드 이름을 넣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근처의 지형, 지물이나 역명을 표기해 아파트의 장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근처의 우수한 학군을 내세운 ‘서산 금호어울림 에듀퍼스트’나 아파트 설계에 테라스를 적용했다는 점을 강조한 ‘e-편한 세상 오션테라스’, 교육 환경이 우수하며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흑석 뉴타운 롯데캐슬 에듀 포레’처럼 아파트의 장점을 명시하려다 보니 건물 이름이 과도하게 길어지기도 한다. 기억하거나 발음하기도 어렵다. 또한, 한국어와 달리 낯선 외국어이다 보니 이름을 들었을 때 무슨 의미인지 즉각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아름다운 우리말로 된 집에서 살고 싶어요!
집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일상에서 외국어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을 때 쓰는 샴푸와 치약, 세안제 등의 제품명부터 학교와 직장에 가기 위해 타는 버스, 지하철 안의 광고, 창밖에 보이는 다양한 가게 이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듣는 노래의 제목과 가사까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그 공간에서 외국어를 찾기란 식은 죽 먹기이다.
 그 가운데 아파트 이름이 대부분 외국어로 되어있다는 점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집이 우리의 일상과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있는 공간이라는 데 있다. 외국어로 아파트 이름을 짓는 현상이 계속될 경우 어릴 때부터 이런 건물명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일상에 뒤섞여 있는 외국어를 우리말처럼 느낄지도 모른다. 어쩌면 같은 뜻의 우리말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어 더 근사한 이름으로 수요자들의 눈에 띄게끔 하려는 것 또한 외국어로 이름이 넘쳐나는 원인이 될 것이다. 건설사는 새로 짓는 아파트의 이름에 외국어를 사용해 공급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자 한다. 소비자 역시 여기에 별문제를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집값이 내려갈 것을 염려해 브랜드 이름이 들어가거나 외국어가 들어간 이름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편안한 휴식 공간이자 가족의 사랑이 가득한 공간이었던 집의 본래 기능이 부동산으로서의 가치, 투자의 대상이라는 경제적 이익으로만 여겨지다 보니 지나치게 퇴색된 것은 아닐까.
 아파트 이름이 어려워 기억하기도 어렵다. 단지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알 수 없는 외국어를 끌어들이는 대신, 실제로 튼튼하고 살기 좋은 집을 짓는다면 소비자의 관심과 신뢰를 더 많이 얻고 아파트를 짓는 건설사도 더 큰 이익을 얻게 되지 않을까? 알기 쉬운 한국어로 된 이름, 생소하더라도 예쁜 의미가 담긴 우리말로 된 이름의 건물 이름이 길에 가득하길 바란다.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