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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말 비빔밥(이건범)

다시 보는 ‘뿌리 깊은 나무

by 한글문화연대 2018. 10. 30.

[한국방송작가협회-방송작가 2018년 10월호]에 실린 글

 

572돌 한글날을 맞아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를 다시 본다. 방영 당시엔 띄엄띄엄봐서, 우리가 아는 한글 창제 이야기에 ‘밀본’이라는 정도전 추종 세력의 도전을 ‘구라’로 엮어서 제법 그럴듯하게 만들었구나 하는 정도였다. 어느 사극이든 철저한 고증엔 한계가 있겠지만, 그래도 구할 수 있는 자료는 제법 열심히 찾아보고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우리 국민 가운데에는 세종이 한글을 반포할 때  한글 창제의 철학, 글자 모양과 음성의 관계를 상세하게 풀이하고 용례를 담아 펴낸 책 《훈민정음》 해례본을 본 사람이 많지 않다. 대개 “나랏말씀이....”로 시작하는, 세종 이후 세조가 편찬한 《월인석보》에 실린 훈민정음 언해본의 서문 정도를 읽어보았을 뿐이다. 그러니 이 드라마에서 세종이 발음 기관과 원리를 추상화하여 초성 글자 만드는 과정을 그린 장면들이 그냥 극적 구성일 거라고 넘겼을지도 모르겠다.

 

옛날에는 문창살을 보고 한글을 만들었다는 속설이 널리 퍼지기도 했고,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가림토 문자를 베꼈다거나 파스파 문자 등 다른 문자를 모방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너무 지나친 상상력의 산물이다. 한글을 만든 철학과 원리는 《훈민정음》 해례본에 매우 소상하게 적혀 있다. 드라마임에도 <뿌리 깊은 나무>가 한글에 담긴 음성과학과 추상적 상형의 멋진 만남을 제대로 그린 것은 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어떤 식으로든 해례본을 살펴본 것 같다.

 

다만, 드라마임을 고려하더라도 극에서는 상황의 시점이 꽤 혼란스럽다. 한글 창제 직전인지, 직후인지, 아니면 반포 시점인지 헷갈리게 관련 사건들이 어지러이 엮인다.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가겠지만, 자칫하면 오해를 부를 수도 있다. 특히, 집현전 학자들의 역할이 분명치 않게 나온다. 이른바 ‘천지계원’이라고 불리는 학자들이 한글 창제에 동원되었는지 풀이와 사용례를 보인 해례 작업에 참여했는지. 확실히 이 점에 관해서는 우리 국민 사이에서도 많은 혼란이 있는 것 같다.


 

한글을 누가 창제했냐고 물어보면 답은 세 가지로 갈린다.
1) 세종이 몸소 만들었다.
2) 세종이 지시하고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
3)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함께 만들었다.

 

너무 뻔해 보이지만, 여러 사람을 상대로 의견을 조사해보면 예상과는 사뭇 다른 결과를 얻게 된다. 대개 60~70%가 3)번, 즉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함께 만들었다는 답을 낸다. 세종은 그저 지시만 하고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고 답하는 사람도 20~30% 나온다. 용기있게1)번을 고르는 이가 10% 남짓.

 

그러나 훈민정음(한글)은 세종께서 눈병에 시달려가며 몸소 만들었고, 집현전 학자들은 세종의 가르침과 지시에 따라 한글의 설명서인 《훈민정음》 해례본 집필에 참여했다. 즉, 집현전 학자들이 만든 건 글자인 ‘훈민정음’이 아니라 제목이 ‘훈민정음’인 책이다. 해례본 끝머리의 ‘정인지 서’에 이런 사정이 명백하고도 소상하게 나온다.


한글 창제에 관해서는 여러 기록이 있지만,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기록은 역시 《훈민정음》해례본이다. 이 책 서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을 요즘 말로 바꾸어 보면 다음과 같다.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것을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愚民,有所欲言,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予,爲此憫然,新制二十八字).”
여기서 ‘내’가 만들었다고 말하는 ‘나’란 당연히 세종대왕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진실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놓았다지만, 직접 삽질이야 했겠냐는 식으로 말이다.
1443년 12월 <세종실록>에서는 “이달에 임금께서 친히 언문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다(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라고 적고 있고,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인지 서’에서도 다음과 같이 밝힌다. “1443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친히 정음 스물여덟 자를 창제하여, 간략하게 예와 뜻을 적은 것을 들어 보여 주시며 그 이름을 ‘훈민정음’이라 하셨다..(癸亥冬.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略揭例義以示之,名曰訓民正音.”

 

세종께서 직접 한글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많지만, 역시 한글 창제 뒤에 사대의 도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한글 반포를 반대했던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의 상소문이 가장 결정적인 증거다. 거기에서 최만리는 “신 등이 엎디어 보건대, 언문을 만든 것이 매우 신기하고 기묘하여, 새 문자를 창조하시는 데 지혜를 발휘하신 것은 전에 없이 뛰어난 것입니다.(臣等伏覩諺文制作, 至爲神妙, 創物運智, 夐出千古)라고 하였다. 한글 반포에 반대하며 이를 비판하였던 자들의 증언이야말로 가장 믿을만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한글을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공동 창제물로 오해하고 있을까? 놀랍게도, 우리 교과서가 잘못되어 있다. 지금 쓰는 초등 5학년 사회 교과서에는 “훈민정음(한글)은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직접 만들어 반포하였으며....”라고 적혀 있다.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도 예전부터 창제 주체가 대부분 잘못되었거나 불분명했다. 약간의 오락가락은 있어도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는 비교적 명확하게 한글 창제의 주역을 세종으로 그렸지만, 우리 국민들이 철석같이 믿는 교과서에서는 오히려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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