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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담은 단편소설들 - 고희승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19. 5. 22.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담은 단편소설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6기 고희승 기자
hshs9913@naver.com

 

 책은 마음의 양식이며, 가까이할수록 분명 얻는 것이 많다. 에세이, 시집, 동화책 등 여러 분야로 나뉘는데, 사람들이 쉽게 떠올리는 건 소설책이다. 소설은 다시 국외 소설과 국내 소설로 분류할 수 있다. 요즘에는 두 가지 모두 인기가 많다. 아무래도 정서나 문화의 차이 때문에 국외 소설은 다채롭고 독특한 내용이 많기도 하다.


 하지만, 국외 소설과 국내 소설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번역가의 손을 거친 국외 소설은 어딘가 어색한 구석이 있기도 하고, 작가가 원문에서 표현한 정서를 그대로 느끼기 어렵다. 반면 국내 소설은 문장에서 작가가 묘사한 감정이 독자에게 잘 전해진다. 무엇보다 작가가 직접 쓴 다양한 어휘와 말투를 읽으며 한국어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한국어의 아름다움과 작가 개성이 드러나는 두 편의 단편소설을 소개하려 한다.
 첫 번째는 신경숙 작가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다. 신경숙 작가는 1985년 ‘문예중앙’ 신인상에 중편소설 <겨울 우화>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대의 국내 문학은 남성 중심 작품이 많았다. 그 속에서 신경숙 작가는 1990년 전후에 <풍금이 있던 자리>와 같이 여성이 자아를 찾거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내용의 작품들을 많이 발표했다.  신경숙 작가는 “소설가가 작가로서 면모를 갖추려면 문체를 확고하게 가져야 한다.”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섬세하고 서정적인 묘사와 은유가 다채롭게 박힌 문체가 이 작가의 특징이다. 지금은 2015년에 일어난 표절 논란으로 작품 활동을 중단한 상태이다.

 

<감자 먹는 사람들>은 1996년 작품으로, 주인공이 친한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의 소설이다. ‘죽음’과 가까이 있는 인물들을 통해 인간이라면 겪을 죽음과 이별, 그에 대한 슬픔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정인에게 고백하는 편지글 형식으로 쓰여 여러 어미가 눈에 띄며 작가 특유의 느리지만 온화한 문체를 볼 수 있다. 종종 등장하는 전라도 사투리와 감자, 떡갈나무, 코고무신, 추수 등의 단어들은 시골마을을 생생하게 연상케 한다.
 ‘저 빗속의 단풍이며 저 빗속의 아름드리 나무둥치며 저 빗속의 시계탑이며...... 추억들을.’
 ‘마을을 둘러싼 야산과 논둑과 신작로에 하얀 눈은 다복하게도 쌓였습니다.’
 이러한 문장들 이외에도 ‘산모퉁이의 휘어 올린 곳’이라는 뜻의 ‘모롱이’나, ‘적적하고 고요함’이라는 뜻의 ‘적요’, ‘논밭’과 같은 말인 ‘전답’ 등 토속적이고 향토적인 어휘들이 특유의 분위기를 만든다. 이처럼 작가는 외국어나 외래어보다는 숨겨진, 하지만 아름다운 한국어를 매끄럽게 문장 속에 담았다.
 

다음으로 소개할 작품은 김연수 작가의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이다. 김연수 작가는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김연수 작가는 인간이 살아가며 마주하는 이야기들을 전통적 소설 문법의 틀 안에서 풀어간다.

 

 10명의 국내외 소설가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 <이것이 나의 도끼다>에서 김연수 작가는 “안 쓰는 단어를 많이 써서 국어의 가능성을 높이자는 생각을 한다. 내가 안 쓰는 구체적인 단어를 쓰는 순간 소설의 세계가 더 현실적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요즘 소설에서 어휘 수가 줄어들며 독자들의 어휘 능력도 예전과 달라졌다는 걱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는 2009년 출판된 김연수 작가의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 수록된 작품이다. 주인공이 어릴 적 꿈꾸던 것과는 다른 서른 번째 생일을 보내지만, 예전의 애인을 만나며 인생의 매 순간이 아름답고 소중함을 되새기는 내용이다. 이 작품에는 작가의 재치를 엿볼 수 있는 수식어구나 비유가 많다. 예를 들면, ‘코발트블루에서 역청빛으로 시시각각 어두워지는 광활한 밤하늘’, ‘보석을 흩뿌려놓은 듯 점점이 반짝이는 불빛들의 물결’, ‘시시각각 변하는, 그러므로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얼굴을 지녔지만, 결국 단 하나일 수밖에 없는 얼굴들’ 등이 있다.

 

 <감자를 먹는 사람들>에 비해 깔끔하고 감각적인 문체가 눈에 띄며, 길고 짧은 문장들을 적절히 섞어 호흡이 잘 이어진다. 또한 문장을 명사로 끝내거나, ‘~리라’체 등 다양한 문장들을 사용해 단조로움을 피했다. ‘우주, 봄날, 벚꽃잎’ 등의 자연적인 단어 역시 작품의 주제인 꿈과 시간을 명확히 드러내는 데에 한몫하고 있다.

 

 신경숙 작가와 김연수 작가 이외에도 권여선, 김애란, 오정희, 이문구 등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소설 속에 담은 작가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많다. 국내 소설을 계속 접하다 보면, 어느새 풍부한 한국어 어휘와 표현을 익히게 될 것이다.

▲ 사진: 신경숙 작가(위), 김연수 작가(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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