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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문화, 학술

616돌 세종대왕 나신 날 큰 잔치

by 한글문화연대 2013. 6. 25.

5월 15일 세종대왕 나신 날, '우리말 받아쓰기' 등 잔치 열어 

올해는 세종대왕 태어나신지 616돌, '스승의 날'로만 알고 있던 5월 15일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의무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5월 15일이 스승의 날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날이 겨레의 큰 스승인 세종대왕께서 태어나신 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원래 5월 26일로 기념하던 ‘은사의 날’을 대한교련과 대한적십자사가 1965년부터 세종대왕 태어나신 5월 15일로 옮겨 ‘스승의 날’로 기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 가장 경사스런 날인 한글날이 국경일도 아닌 기념일에 지나지 않던 시절인지라 세종대왕 나신 날 또한 국민의 관심을 끌 수 없었다.


2012년 12월 27일, 마침내 한글날이 공휴일로 재지정되었다. 일 많이 하기 운동에 희생되어 1991년부터 법정 공휴일에서 빠진 지 22년만의 일이다. 2005년 국경일로 승격된 뒤 한글날을 공휴일로 다시 지정하자는 운동을 끊임없이 벌여온 국어운동계의 승리이자 국민의 승리였다. 경총을 비롯한 경제계의 반대는 19대 국회의 한글날 공휴일 적극지지 분위기 속에서 더 이상 명분을 찾지 못했고, 정부 역시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이제는 세종날이다. 한글문화연대가 2013년 들어오면서 세운 목표는 세종대왕 태어나신 날 ‘세종날’을 복권시키는 것이었다. 2월말부터 한자 혼용파의 마지막 발악인 국어기본법 위헌 소송과 교과서 한자 사용에 맞선 싸움을 치르느라 3월말에 가서야 행사 기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만들자는 큰 틀 속에서 나온 사업은 시민이 참여하는 꽃 바치기와 받아쓰기 대회. 장소는 서울 한복판인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으로 정했다. 주말인 5월 11, 12일에는 이미 다른 행사가 모두 잡혀 있어 평일인 5월 15일 수요일로 행사 일정을 잡았다. 평일에 사람을 모으기는 참 어려운 일이지만, 세종대왕께서 보살펴주리라는 기대를 걸고.


시민의 꽃 바치기는 세종대왕 동상 앞에 큰 무대를 세우고 그 벽면에 “고맙습니다”라는 글자가 꽃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구멍을 뚫기로 했다. 우리말 받아쓰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휴대전화로 받아쓰기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앱(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기로 했다. 한글문화연대가 뒷배를 봐주고 있는 대학생 국어사랑 연합 동아리인  “우리말가꿈이” 학생들은 한글무늬 옷으로 꾸미는 패션쇼 “한글옷이 날개”를 무대에 올리기로 했고, 한글 가훈 써주기, 임금이 타던 가마 옆에서 사진 찍기 등의 부대 행사와 함께 테너 임정현의 축가와 세종대 무용단의 “아버지의 꿈” 공연, 가수 이한철의 축하 공연 등이 착착 기획되어 준비에 들어갔다. 


행사는 5월 13일 월요일부터 세종대왕의 업적을 15가지로 정리하여 광화문 해치마당 출입구에 업적판을 전시하는 행사로 시작했다. 업적판은 우리말가꿈이 대학생들이 세종대 김슬옹 교수의 도움과 감수를 받아 정리하고 삽화도 섭외하여 그려 넣었다.  이 업적판은 책자로도 편집하여 시민에게 널리 뿌리고자 대량으로 인쇄하였다.    













행사 안내책자세종대왕 업적


5월 15일, 오전 11시 20분부터 무대가 완성되어 시민들이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고맙습니다” 글씨에 꽃을 꽂아 완성해가는 행사가 시작되었다. 봄날의 땡볕이었지만 꽃을 꽂은 시민들은 무대에 놓인 가마 ‘연’ 옆에서 기념 촬영을 하며 뿌듯해 하기도 했다. 무대 옆에서는 시민들에게 휴대전화 지갑 등의 기념품을 나눠주면서 세종날의 의미를 확인했다. 한 송이, 두 송이 꽃이 꽂아지면서 글자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 오후 2시부터 한글 가훈 써주는 행사가 시작되었다. 시민들은 꽃을 꽂은 뒤 줄을 서서 한글 가훈을 받아갔다. 한국예술문화원에서 오신 분들이 재능을 기부해주셨다. 


꽃 바치기가 계속 이어지면서 1천 명 넘는 시민이 세종대왕 앞에서 고마움을 표시하였고, 저녁 6시에는 중앙대와 고려대 학생들로 구성된 길놀이패가 광화문 광장을 출발하여 세종로 네거리를 돌아다니며 시민들에게 행사를 알렸다. 궁궐을 지키던 내금위 군사 복장을 한 청년들은 행사의 무대와 세종대왕의 정신을 지키듯 굳은 표정으로 시민들의 눈길을 끌며 광장으로 시민들을 모았다. 우리말가꿈이 대학생들이 각 학교에서 알리고 모둠 참가를 유치하였으며, 한글문화연대 사무국과 운영위원들이 중고교 앞에서 학생들에게 행사를 알리고 광과문 광장에서 며칠 동안 알린 결과 받아쓰기 대회에 참가 신청한 사람들의 수는 1,500여 명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1천 명 정도가 광화문 광장 받아쓰기 시험장 안에 바둑판처럼 줄을 맞춰 앉기 시작했다. 



길놀이패와 내금위 군사들이 시내를 돌아 다시 광화문 광장으로 돌아와 무대에서 한껏 흥을 돋운 6시 30분, 배은한 씨의 사회에 맞춰 민간에서는 처음 치르는 “세종대황 나신 날 큰 잔치”가 시작되었다. 한글문화연대 박상배 고문, 고경희 전 대표, 이건범 상임대표와 운영위원들 및 국어운동단체 관계자들, 우리말가꿈이 운영진 등이 무대에 올라가 “고맙습니다” 꽃 글자에 마지감으로 꽃을 꽂았다. 이건범 상임대표는 “노비의 출산 휴가, 게다가 그 남편에게까지 출산 휴가를 줬던 세종대왕의 백성 사랑 정신을 잊지 말자”는 인사말로 대회를 열었다. 


축가는 세종대왕 나신 날을 맞아 한글문화연대 이건범 대표가 시를 쓰고 뮤지컬 ‘금강’의 작곡자인 음악가 이현관 선생이 곡을 만든 “그날엔 꽃이라”를 임정현 테너가 이현관 작곡가의 반주에 맞춰 불렀다. 시민들과 함께 부른 “스승의 은혜”도 축가 가운데 하나였다. 곧 남학생들만으로 구성된 세종대 무용단의 “아버지의 꿈”이 펼쳐졌다. 박진감 넘치고 생동하는 젊은 힘이 무대 전체를 휘감았다. 맨발로 무대와 관중석 사이를 질주하는 학생들의 젊음이 세종대왕의 기를 현대로 옮겨온 듯했다. 


저녁 7시, 문화방송 김나진 아나운서와 교통방송 김혜지 아나운서가 “우리말 받아쓰기”의 막을 열었다. 세종의 과학기술 창조 정신과 한글 창제 정신을 기리기 위해 현대 과학기술의 총아인 휴대전화에서 우리말 받아쓰기를 진행하기로 한 기획은 참으로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참가자들은 사전에 연습을 해보고 누리집에 올라가 있는 귀띰 보따리를 익힌 사람도 있었지만, 현장에서 나눠준 행사 안내 책자를 보며 허겁지겁 대회 진행 요령을 파악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휴대전화로 앱을 내려받아 사용하는 건 누구에게나 익숙한 일인지라 아무도 소란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첫 문제가 나갔다. “파이팅 대신 아리아리 외쳐요.” 시험장 곳곳에는 내금위 군사들이 시험을 감독하듯 서있었지만, 그런 감독이 문제가 아니라 혹시라도 오타를 칠까 조심조심 답을 적는 그 진지함에 장내는 숙연함가지 들 정도였다. 예선전 33문제 가운데 절반 정도는 외국어 남용을 꼬집는 문제로, 즉 국어운동의 뜻과 방법을 퍼드리는 문제로 채워졌다. 10문제마다 장내 사회자 배은한 씨가 응시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1천 명의 중고생과 대학생 및 시민이 모두 고개를 숙인 채 귀를 쫑긋 세우고 전화기에 한글을 입력하는 그 모습을 세종대왕께서 굽어보시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시민이 참여하는 행사 가운데 모두가 이렇듯 균등하게 참여하는 행사는 일찍이 없었던 듯하다. 




본선 진출자는 50등까지. 마침내 33문제를 모두 풀고 곧 실시간 채점 결과가 나왔다. 평균 점수가 00점이었고, 80점 이상은 00명이었다. 100점을 맞은 참가자도 한 명 있었다. 50등에 동점자가 많아 본선 진출자는 모두 00명이었고, 이들에게는 개별적으로 문자로 알림이 날아갔다. 그런데 본선 진출자들이 무대로 나오는 순간에 순조롭게 진행되던 대회에 돌발 상황이 터졌다. 원래 본선 진출자들은 텔레비전 고등학생 퀴즈 프로에서 하듯이 도화지에 답을 적게 하려다가 행사 3일 전에 계획을 바꿔 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치르기로 했는데, 그 누리집이 정상적으로 작동을 않는 것이었다. 본선 진출자 정보가 누리집에 입력되지 않아 접속이 되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다. 


대회 운영진은 신속하게 행사 일정을 수정하여 그 다음 행사로 잡혀진 우리말가꿈이 대학생들의 “한글옷이 날개”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하지만 공연이 끝날 때까지 사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운영진은 급하게 근처 문구점에서 도화지를 사오고, 00명에 달하는 본선 진출자들을 줄이기 위해 O X 문제를 냈다. 1번 문제가 사회자의 입에서 나간 직후 누리집의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이미 본선이 시작된지라 행사는 그렇게 진행되었다. 


으뜸 1명, 버금 1명, 보람 10명을 뽑는 본선은 00명 가운데 12명을 가려내고, 다시 이 가운데 2명을 가려내어 마지막 으뜸을 봅는 복잡한 과정이었다. 자칫하면 시간이 오래 걸려 지루할 수도 있는 대회 방식이었지만 세종대왕게서 도와주신 덕에 아주 수월하게 마무리되었다. 12명이 쉽게 가려졌고, 한 문제에서 2명만 정답을 내는 통에 으뜸과 버금 대상자도 단박에 가려졌다. 마지막 으뜸은 고려대 재학생 0양. 남자 친구를 다라왔다가 참가하게 된 0양은 안타깝게도 버금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최신 휴대전화기를 상품으로 받았다. 으뜸은 최신 노트북 컴퓨터가 상품. 나머지 보람 10명에게는 10만 원 어치 문화상품권이 상품으로 돌아갔다. 


모둠으로 가장 많이 참가한 동국대 백팔리더스가 모둠 참가상을, 이화여대 국문학과가 모둠 성적상을 받았다. 3백여 명이 참가한 중고생 가운데에서는 안타깝게도 상위권 입상자가 없었다. 그래도 참가자들은 행사에 참여한 즐거움과 세종대왕님의 백성 사랑을 새삼 느낀 자리였다. 가수 이한철 씨가 흥겨운 축하 공연을 펼치면서 광화문 광장의 숙연하고 긴장감 넘치던 분위기는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 환호성 위로 광화문의 어둠이 점점 깊어갔다. 




 ▶  구경하러 가기 - 사진으로 보는 616돌 세종대왕 나신 날 큰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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