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률 70% 로드맵이라는데, 로드맵이 뭔 뜻이야?"

 

또 시작이다. 낼 모레 고희인 어머니는 신문을 펼칠 때마다 아들에게 낯선 용어에 대한 질문을 퍼붓는다. 딱 부러지게 설명을 해드리면 좋으련만 아들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 많아 돌아가는 답변은 매번 퉁명스럽다. "아니 왜 이리 궁금한 게 많으셔."

 

경기 의정부시에 사는 이모(39)씨 집 이야기지만 이거 남의 일이 아니다. 정부나 지자체 등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영어 정책이나 표현이 쏟아져 나온다. 의미를 파악해 흐름을 따라 잡으려면 따로 상식 공부를 해야 할 정도다. 많아도 너무 많다.

우리말이 공공기관에서 푸대접 받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십 수년 전부터 국정감사 때 지적을 받고, 한글단체 등에서 무수히 성토해도 바뀌지 않을 뿐이다. 아니 오히려 정도는 세지고 있다. kobaco(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KORAIL(한국철도공사) LH(한국토지주택공사)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등 공공기관 명칭이 영어 표기로 바뀐 유행이 몇 년 전부터는 정책으로 옮겨 갔다.

 

'마이스산업' '희망드림론' 'K-move' 'Work Together 센터' '아웃리치' 'R&E 페스티벌' 등등 온통 어려운 외국어투성이다. 여기에 내부결재 문서는 말할 것도 없고 온 국민이 접하는 보도자료 같은 공문서에도 희한한 영어 표현이 난무한다.

 

'그린필드형 투자'와 '밸류체인'(외교부), 'Safe & Clean Hub'(검찰), 'Support-chain'(산업통상자원부)은 올해 보도자료에서 사용된 표현들이다. 이거 듣고 바로 이해할 사람은 거의 없다. 정부 공문서에 나온 표현을 국민 대다수가 무슨 말인지 모른다면 심각한 문제다.

 

국립국어원 공공언어지원단이 올 1월부터 지난달 중순까지 중앙부처의 보도자료를 분석해보니 이런 영어 표현 셀 수 없이 많았다. 우리말로 바꾸기 애매한 영어도 물론 있지만 'First mover(선행자)' '니즈(요구)' '리스크(위험요인)' '거버넌스(공공경영)' 같이 대체 가능한 말도 수두룩하다. 공공언어지원단은 이런 말들을 콕콕 집어 해당 부처에 부지런히 수정 요청 공문을 발송하지만 변화는 좀체 감지되지 않고 있다.

 

그럼 왜 공공기관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영어 정책이나 표현을 즐기는 걸까. 아직까지 대놓고 이유를 밝히지는 않지만 과시욕구와 타 부처와의 차별화, 국제화에 대한 강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김형배 공공언어지원단 연구사(국어학 박사)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영어에 대한 우월의식이 뭔가 새롭고 눈에 확 띄어야 하는 정책이나 사업명에 녹아 들고 있다"며 "공무원 조직은 먼저 치고 나가지는 않아도 누군가 하면 따라가는 경향이 강하다. 즉, 영어 애용도 유행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공공기관의 이런 행태가 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어기본법에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춰 한글로 써야 한다'(제14조)고 명시돼 있다. 뜻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필요하거나 전문어ㆍ신종어의 경우 괄호 안에 원어를 같이 써야 한다. 이 잣대를 갖다 대면 빠져 나갈 공공기관 거의 없지만 법 규정이 권고 수준이라 처벌방법이 없다.

 

보다 못한 한글문화연대는 올 4, 5월 16개 부처와 서울시 보도자료에서 국어기본법 위반 사항을 꼼꼼히 찾아내 정리 중이다. 대학생 연합동아리인 우리말가꾸기도 가세했다. 조사결과는 이달 말 발표 예정이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공공기관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줘야 할 의무가 있다"며 "특히 국민 안전 및 생활과 밀접한 정책에는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는 한국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2013.06.08.

한국일보 김창훈기자 chkim@hk.co.kr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306/h201306081008452195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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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