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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 나라 좋은 나라(김영명)

엉터리 표기, 이상한 표기

by 한글문화연대 2013. 8. 23.

[우리 나라 좋은 나라-1] - 김영명 공동대표

 

텔레비전 자막은 우리말 공부를 망치는 주범이다. 틀린 글자가 너무 많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만 몇 개 들어보자. “우리에 사랑은 변함없을 것”이라고 서슴없이 쓴다. 한 두 번이 아니다. “우리의 사랑”이라고 옳게 쓴 경우를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웃긴 얘기”는 또 뭔가?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의 인터넷 언어를 그대로 옮겨 쓰기 시작하여 맞는 표기를 아예 밀어내고 말았다. 영화 제목도 이런 식으로 표기한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이게 이제는 “웃기는”이나 “우스운”을 밀어내고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표기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대로 퍼 나르고 있는 중이다.
 
한 가지 더. “그러면 돈을 내놓던지!”라는 자막도 “내놓든지”를 제친 지 오래다. 다시 말하지만, 어쩌다 그러는 게 아니다. 옳은 표기를 최근에 본 적이 없다. 자막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 표기들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한심한 노릇이다. 그들은 중고등학교에서 국어도 제대로 안 배운 사람들인가? 대중에게 미치는 악영향이 심각하다. “우리에 사랑이 변치 않게 내게 웃긴 얘기를 해주던지 사랑에 편지를 보내던지 해 주세요!” 끔찍하다.
 
수학자들이 뿔났다고 한다. 잘 쓰고 있던 꼭지점을 “꼭짓점”으로 써야 한다고 맞춤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벌써 오래 된 얘기이긴 하다. 사이시옷 규정이란 것이 참 요망스럽다. 명사 둘이 붙을 때 어떨 때는 사이시옷을 쓰고 어떨 때는 안 쓴다는 것인데, 그 법칙이 참으로 어렵다. 순우리말일 땐 어쩌고 한자말일 땐 저쩌고 외래어일 땐 또 어쩌구... 그런데 어떤 말이 순우리말인지 한자말인지 일반 대중들이 어떻게 다 안단 말인가?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이고 학교 다닐 때 한자도 배웠던 나도 잘 모르는데... 책상머리 서생들의 탁상공론이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규칙을 만들어놓았으니 따를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북어국이 북엇국이 되고 무국이 뭇국이 되었다. 그럼 다시마국은 마시맛국, 아귀찜은 아귓찜? 명태국은 명탯국? 서대랫국, 조갯국... 그리고 멍게찜은 멍겟찜?(그런 게 있다면...) 맞춤법에는 맞을지 모르나 참 옹색하고 사나운 글자 모양들이다.    
 
태어나서 수십 년 동안 장마비를 “장마-비”라 발음하며 살았는데, 그 표기법 덕분에 “장맛-삐”라 발음해야 하게 되었다. 어느 게 맞는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사이시옷 넣고 된소리 만드는 거보다 안 넣고 순한 소리 내는 게 경제적이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할 것 같은데...
 

그건 그렇고, 텔레비전을 보니 ‘우윳값’ ‘나랏빚’ 등으로 표기하는데, 이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위의 사이시옷 규정에 따른 것이겠지만, 그 이전에 애당초 우윳값이 한 낱말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아래 한글에서도 틀렸다고 빨간 줄이 나온다.) “우유 값”이 옳은 표기라 생각한다. 그것이 한 낱말이 될 수 있다면, 두붓값, 채솟값, 참욋값도 한 낱말이 되어야 할 것이요, 나랏빚이 한 낱말이 될 수 있다면 동넷빚, 집안빚, 회삿빚, 마누랏빚도 그래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수많은 복합명사들이 모두 사전에 기재되어야 할 것이요, 그렇다면 우리말은 아마 세상 언어들 중에서 가장 많은 어휘 수를 자랑하게 되리라.
 

그리고 도대체 순우리말 사이(앞?)에만 사이시옷을 쓸 수 있다는 발상이 어디서 나온 것인가? 그냥 자의적일 뿐이다. 우윳값이 가능하다면 컴퓨텃값은 왜 안 될 것인가? 또 사이시옷으로만 복합명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적인 이유가 어디 있는가? 우윳값이 가능하다면 기름값, 집값, 자동차값, 오리너구리값은 왜 안 될 것인가?
 

내가 복잡한 규정을 다 몰라서 그럴 것이라 생각해 본다. 아는 건 적고 눈에 거슬리는 것은 많은 한 관심자의 투덜거림이라고 봐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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