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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아, 그 말이 그렇구나(성기지)361

서리 [아, 그 말이 그렇구나-262] 성기지 운영위원 아침저녁으로 늙은 주인을 지하철역까지 실어다주는 낡은 자전거. 오늘 아침에 보니 안장이 서리에 덮여 온통 하얗다. ‘서리’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그 풀이가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하늘이 맑고 바람이 없는 밤, 기온이 영하로 낮아질 때, 공중의 수증기가 땅위의 물건 겉에 닿아서 엉긴 흰 가루”(우리말 큰사전). 좀 장황하지만 서리를 무척 공들여 설명하고 있다. 우리말 ‘서리’는 이 밖에도 두 가지 뜻이 더 있는데, 그 하나가 “떼를 지어서 주인 모르게 훔쳐다 먹는 장난”이다. 예전에는 주로 마을 아이들이 서리를 저질렀고, 주인도 이에 대해 무척 관대했다. 그러나 지금은 서리도 절도죄로 처벌 받게 되었으니, 국어사전에서도 ‘장난’을 ‘범죄’로 고쳐야 .. 2018. 11. 28.
당부와 부탁 [아, 그 말이 그렇구나-261] 성기지 운영위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가수가 방송 후에 ‘우리 언니를 예쁘게 봐 주세요’라고 하자, 이를 두고 어느 기자는 “OOO씨는 언니를 예쁘게 봐 달라고 당부했다.”라고 기사를 썼다. 이때 ‘당부하다’는 바르게 쓰인 말일까? 이 말은 사전에서 “단단히 부탁함. 또는 그런 부탁.”으로 풀이되어 있으므로, 부탁의 정도가 강한 경우에 쓰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부탁이라면 어떤 일을 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니 상대편에서는 그만큼 부담이 되는 일이다.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부담이 되는 일을, 그것도 강하게 윗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태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부’라는 말을 윗사람에게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손윗사람에게는 “당부합니다.” 대신에, “부.. 2018. 11. 21.
히히덕거리다 [아, 그 말이 그렇구나-260] 성기지 운영위원 방송을 보다 보면 음식 맛을 표현하는 갖가지 말들이 쏟아진다. 이 가운데 음식 맛이 싱거울 때 ‘닝닝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밍밍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닝닝하다’는 낱말은 국어사전에 없다. 음식이 제 맛이 나지 않고 아주 싱거울 때는 ‘밍밍하다’, 또는 ‘맹맹하다’고 하는 것이 바른 표현이다. 음식에서뿐만 아니라, 마음이 몹시 허전하고 싱거울 때에도 “마음이 밍밍하다/맹맹하다.”고 말할 수 있다. ‘히히덕거리다’는 말도 자주 쓴다. 실없이 웃으면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이를 때 “틈만 나면 전화로 히히덕거렸다.”처럼 말한다. 하지만 ‘히히덕거리다’가 표준말은 아니다. 이 말은 ‘시시덕거리다’, ‘시시덕대다’로 고쳐 쓰는 것이 .. 2018. 11. 14.
뺨과 볼 [아, 그 말이 그렇구나-259] 성기지 운영위원 여름내 햇빛을 모아 꽃과 열매를 키워낸 잎들이 나뭇가지를 떠나 흙으로 돌아가고 있다. 낙엽을 밟는 이들의 옷차림은 점점 두꺼워만 가고,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찬 공기가 몸을 움츠러들게 하는 계절이다. 날이 추워서 얼굴이 빨개졌다고 말할 때는 “뺨이 빨개졌다.”고 할 수도 있고, “볼이 빨개졌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볼’과 ‘뺨’은 가리키는 부위가 똑같지 않아서 상황에 따라 쓰임이 다를 때가 있다. ‘뺨’과 ‘볼’은 흔히 구분 없이 쓰이곤 한다. 그러나 ‘뺨’과 ‘볼’이 가리키는 신체 부위는 똑같지가 않기 때문에, ‘뺨’과 ‘볼’이라는 말의 쓰임도 차이를 보인다. ‘뺨’은 얼굴에서, 귀와 눈 사이의 관자놀이에서 턱까지 살이 제법 많이 있는 부위를 가.. 2018. 11. 7.
외래어 적기에 관하여 [아, 그 말이 그렇구나-258] 성기지 운영위원 ‘창틀’을 뜻하는 영어 ‘sash’는 우리말에 들어와 이미 외래어로 굳어졌으며, 이 말의 바른 한글 표기는 ‘새시’이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흔히 이 말을 ‘샤시’ 또는 ‘샷시’로 쓰고 있는데, 이는 일본말의 영향을 받은 잘못된 발음 습관에서 비롯한 것이다. ‘sash’는 본디의 발음이 [sæʃ]이므로, 이를 충실히 옮기면 ‘새쉬’로 적어야 하지만, 외래어를 적을 때에 ʃ[쉬]는 어말에서 ‘시’로 적는다는 외래어 표기 원칙에 따라 ‘새시’를 표준말로 삼았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튼튼한 새시→튼튼한 창틀”처럼 건설 현장에서 이 용어를 바꾸어 쓰는 노력이다. 훈련을 할 때나 운동을 할 때 입는 것으로서 흔히 ‘추리닝’(또는 ‘츄리닝’)이라 불리.. 2018. 10. 31.
‘밑’과 ‘아래’ [아, 그 말이 그렇구나-257] 성기지 운영위원 흔히 쓰는 말인데도 ‘밑’과 ‘아래’의 차이를 물어보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국어사전에서는 ‘밑’을 “물체의 아래나 아래쪽”으로 풀어놓고, ‘아래’에는 “어떤 기준보다 낮은 위치”로 설명해 놓았다. 이 사전 풀이만으로는 얼른 구별되지 않는다. 먼저 ‘밑’의 쓰임새를 보면,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 “손톱 밑의 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등과 같은데, 모두 다리와 손톱과 독의 가장 아래쪽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때의 ‘밑’을 ‘아래’로 바꿔 써보면 매우 어색하다. 말하자면 ‘밑’은 ‘항아리 밑’처럼 사물의 일부이거나 ‘다리 밑’처럼 그 사물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는 부분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아래’는.. 2018. 10. 24.
‘각출’과 ‘갹출’ [아, 그 말이 그렇구나-256] 성기지 운영위원 한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식사를 하던 일행이 계산대 앞에 줄을 서서 각자의 신용카드로 제 밥값만 치른다. 요즘 음식점 계산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심지어는 한 가족이 외식을 하고 나서 식사 후에 돈을 각자 내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말이 ‘각출’이다. 각출은 내야 할 돈을 모인 사람들이 각각 내놓는 것을 뜻하는데, 영어로 하면 ‘더치페이’가 이 뜻에 가까울 것 같다. 그런데 ‘각출’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말이 바로 ‘갹출’이다. ‘갹출’은 같은 목적을 위하여 여러 사람이 돈을 나누어 낼 때 쓰는 말이다. 이때는 각자 내는 금액이 다를 수 있는데, ‘추렴’으로 쓸 수도 있고 ‘거출’이라고 쓰기도 한다. 어떤 행사에 드는 비용.. 2018. 10. 17.
갈매기살과 홍두깨 [아, 그 말이 그렇구나-255] 성기지 운영위원 음식점 차림표에서 ‘갈매기살’이라는 말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를 갈매기 고기로 오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갈매기’와 ‘살’을 띄어 쓰게 되면 이 말은 영락없이 갈매기 고기가 된다. ‘갈매기살’을 한 낱말로 붙여 써야 비로소 돼지고기가 된다. 이 갈매기살 요리는 서울의 마포에서 퍼져 나간 음식이란 말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주물럭’이라는 불고기 구이도 마포가 원조라고 한다. 어쨌든 갈매기살도 불고기 구이의 한가지인데, 쇠고기 같은 맛을 가진 담백한 돼지고기이다. 돼지고기가 어떻게 해서 갈매기살이라는 이름으로 변했을까? 갈매기살을 요리하기 전에 날것으로 보면 꼭 보자기처럼 얇고 너덜너덜하게 생겼다. 이 살은 돼지의 가슴과 배 사이에 있는 횡격.. 2018. 10. 11.
가시나 [아, 그 말이 그렇구나-254] 성기지 운영위원 경상도 지역에서는 여자아이를 낮추어 부를 때 ‘가시나’라고 말한다. 이 말의 표준말은 ‘계집아이’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가시나’는 방언으로 밀려나 있다. 그러나 우리말의 나이를 따져보면, ‘계집아이’보다 ‘가시나’가 훨씬 오래 전부터 쓰이고 있는 말이다. 다만, 지금처럼 여자아이를 낮춰 부르던 말은 아니었다. ‘가시나’의 ‘가시’는 꽃을, ‘나’는 무리를 뜻하는 우리 옛말이다. ‘나’의 형태는 오늘날 ‘네’로 바뀌어서, 여전히 어떤 말 뒤에 붙어서 ‘그 사람이 속한 무리’라는 뜻을 보태주는 접미사로 쓰이고 있다. 가령 ‘철수네 집’이라고 하면, 철수와 그 가족이 사는 집을 말하게 된다. 곧 옛말 ‘가시나’는 ‘꽃의 무리’라는 뜻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신.. 2018. 10.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