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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작가협회4

다시 보는 ‘뿌리 깊은 나무 [한국방송작가협회-방송작가 2018년 10월호]에 실린 글 572돌 한글날을 맞아 드라마 를 다시 본다. 방영 당시엔 띄엄띄엄봐서, 우리가 아는 한글 창제 이야기에 ‘밀본’이라는 정도전 추종 세력의 도전을 ‘구라’로 엮어서 제법 그럴듯하게 만들었구나 하는 정도였다. 어느 사극이든 철저한 고증엔 한계가 있겠지만, 그래도 구할 수 있는 자료는 제법 열심히 찾아보고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우리 국민 가운데에는 세종이 한글을 반포할 때 한글 창제의 철학, 글자 모양과 음성의 관계를 상세하게 풀이하고 용례를 담아 펴낸 책 《훈민정음》 해례본을 본 사람이 많지 않다. 대개 “나랏말씀이....”로 시작하는, 세종 이후 세조가 편찬한 《월인석보》에 실린 훈민정음 언해본의 서문 정도를 읽어보았을 뿐이다. 그러니 이 드라.. 2018. 10. 30.
서명과 사인, 그리고 수결 [한국방송작가협회-방송작가 2018년 9월호]에 실린 글 어디에 서류 낼 때마다 맨 마지막에 이름 적고 도장을 찍거나 이른바 ‘사인(sign)’을 한다. 은행에서 예금을 들 때도, 예금을 찾을 때도 신청서에 그렇게 한다. 서류 작성자가 본인임을 마지막으로 확인해주는 표식이다. 도장 찍는 걸 한자말로 ‘날인’이라고 하니, 손으로 휘갈겨 이름을 적는다는 뜻의 영어 낱말 ‘사인’과 신기하게도 운율이 맞는다. 날인과 사인. 과거에는 문서 작성자 확인 표시로 대개 도장을 썼으나, 요즘에는 인감도장을 요구하는 경우가 아니면 ‘사인’을 많이 쓰는 편이다. 은행에서도 통장에 도장 찍는 일보다 사인하는 일이 더 잦다. 도장 들고 다니는 걸 귀찮아해서 그런 면도 있지만, 위조를 막는 데에 사인이 더 든든해서 그럴 것이다... 2018. 9. 11.
족보를 알고 싶은 말들 [한국방송작가협회-방송작가 2018년 8월호]에 실린 글 우리가 문자 생활에서 쓰는 한글 조합이 2,350여 자인 데 비해 한자는 480여 개 소리만 표현하기 때문에 외국어나 한국어의 소리를 모두 적지 못한다. 선동 정치가를 뜻하는 ‘데마고그’ 같은 말만 해도 귀로 들었을 때는 ‘대마불사’ 비슷한 ‘대마고구’인가 싶지만, 글자로 적어 놓으면 우리네 한자말이 아니라는 걸 쉽게 눈치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자주 하다 보면 그 반대편의 착시를 일으키기도 한다. 한자말이 아님에도 한자말이라고 오해하는. 선거철이면 자주 듣는 ‘마타도어’. 근거 없이 남을 모략하는 짓을 뜻하는 이 말은 한자로 그 음을 표현할 수 있는 터라 한자 4자성어일 거라고 흘려 넘기기 쉽다. 하지만 이 말은 투우사를 뜻하는 스페인어.. 2018. 8. 8.
로봇에게나 할 말을? [한국방송작가협회-방송작가 2018년 7월호]에 실린 글 오늘은 우리말의 밑바닥에 깔린 뒤틀림을 살펴보련다. 누구나 병원에 가면 바깥 세상에서는 잘 안 쓰는 요상한 말투를 경험한다. “이건범 님, 주사실 앞에서 기다리실게요.” “아, 네.” “이건범 님, 들어오실게요. 바지 약간 내리실게요.” ‘기다리세요, 들어오세요, 내리세요’ 대신 쓰는 ‘기다리실게요, 들어오실게요, 내리실게요’는 이제 병원을 넘어서 미용실, 손톱손질가게 등 손님과 일하는 이가 가까이 접촉하는 모든 업종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한때 에서 이 말투를 가지고 노는 바람에 더 심해졌다. 언뜻 들으면 공손하게 부탁하는 말 같기도 하고, 나한테 요구하는 건지 자신이 하겠다고 하는 건지 뒤엉킨 것 같아 앞말에만 의지하여 해석하는 말들. ‘-ㄹ.. 2018. 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