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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9

개발과 계발 [아, 그 말이 그렇구나-327] 성기지 운영위원 한때 텔레비전 광고에서 비롯한 유행어 가운데 “니들이 게 맛을 알아?” 하는 말이 있었다. ‘게 맛’은 발음에 여간 유의하지 않으면 자칫 ‘개 맛’으로 소리 낼 위험이 있고, 또 그렇게 들릴 수 있다. [ㅔ]와 [ㅐ]는 둘 다 전설모음이기는 하지만, [ㅔ]는 [ㅐ]보다 혀가 높이 올라가고 좀 더 앞쪽에서 소리가 난다. 곧 ‘개’가 ‘게’에 비해 비교적 입이 크게 벌어지고 입천장 뒤쪽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다. 이를 구별하여 발음하는 데 소홀했던 까닭에 ‘개발’과 ‘계발’의 쓰임마저 혼동되고 있다. ‘개발’과 ‘계발’ 두 낱말은 실제로 거의 구분이 없어진 것처럼 쓰이고 있다. 그러나 ‘개발(開發)’과 ‘계발(啓發)’은 본디부터 쓰임이 서로 달랐으며, 아직도 .. 2020. 3. 18.
돋우다, 돋구다 [아, 그 말이 그렇구나-299] 성기지 운영위원 요즘처럼 찌는 듯한 더위가 이어질 때에는 몸이 나른해지고 입맛도 뚝 떨어진다. 이럴 땐 잘 익은 여름 과일이나 향긋한 나물 반찬이 입맛을 살려 줄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입맛을 당기게 하다’는 뜻의 낱말로 ‘돋우다’와 ‘돋구다’를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입맛을 ‘돋우는’ 게 맞는지, ‘돋구는’ 게 맞는지도 자주 헷갈리는 문제이다. 낱말의 형태가 비슷해서 오는 혼동이다. ‘돋우다’는 ‘돋다’에 사동 표현을 만들어 주는 접사 ‘-우-’를 붙여 만든 사동사다. “부엌에서 입맛을 돋우는 구수한 냄새가 난다.”에서와 같이 ‘입맛을 당기게 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또, “발끝을 돋우어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처럼 쓰기도 하고, “벽돌을 돋우다”에서와 같이 ‘밑을.. 2019. 8. 14.
겹쳐 쓰는 말들 [아, 그 말이 그렇구나-290] 성기지 운영위원 요즘 ‘주취 폭력’을 줄여서 ‘주폭’이란 말을 자주 쓰고 있다. 주폭까진 아니라도 주정을 부리는 자체가 주위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술에 취해서 정신없이 하는 말이나 행동은 ‘주정’이다. 이미 ‘술 주’ 자가 들어가 있으므로 ‘술주정’이라 말할 필요가 없다. 맛있고 영양 많은 음식을 소개하면서 ‘몸보신’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몸을 보충하는 것은 ‘보신’이라고만 하면 된다. 국어사전에는 ‘술주정’과 ‘몸보신’ 들을 올림말로 싣긴 했지만, 낱말 뜻은 각각 ‘주정’과 ‘보신’ 쪽에 풀이해 놓고 있다. 비슷한 사례 가운데, 돌로 만든 비는 ‘비석’이라 하면 된다. 이것을 굳이 ‘돌비석’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나무를 깎아 세운 비는 ‘비목’인데, .. 2019. 6. 12.
우리말 동시로 피우는 마음의 꽃-박찬미 기자 우리말 동시로 피우는 마음의 꽃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5기 박찬미 기자 chaanmii@naver.com ▲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동시 사전』은 우리말(토박이말)로 쓴 동시를 엮은 책이다. 책에 실린 동시에는 말 그대로 영어와 일본어 등의 번역 말씨가 섞이지 않았다. 지난 1월 ‘모르고 쓰는 영어식 표현’이라는 기사에서 무심코 쓰는 잘못된 번역 표현에 대해 다뤘던 터라 이 사전이 더욱 궁금해졌다. 동시는 한글 자음 ‘ㄱ’부터 ‘ㅎ’까지 여러 가지 우리말을 주제로 쓰였다. 친숙한 낱말도 있었지만 자주 쓰지 않던 말도 많이 보였다. ▲ 책의 목차 제대로 시를 읽기도 전에 여는 시 ‘글쓰기’에서부터 마음이 사로잡히고 말았다. 특히 “그래서 나는 마음을 써요/일기장에 오늘 하루 이야기를 꿈을 꾸듯.. 2019. 3. 15.
낱개 [아, 그 말이 그렇구나-264] 성기지 운영위원 같은 낱말을 나란히 써서 복수를 나타내게 되는 ‘곳곳이’, ‘번번이’, ‘틈틈이’ 들이 있는가 하면, 여럿 가운데 하나하나를 가리키는 ‘낱낱이’도 있다. 단위를 헤아릴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이 ‘개’(個)라는 한자말이고, 이 개에 해당하는 순 우리말이 바로 ‘낱’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하나 포장되어 있는 물건을 “낱개로 포장되었다.”고 말한다. 두 낱 이상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똑같은 뜻의 순 우리말 ‘낱’과 한자말 ‘개’를 겹쳐 쓴 사례이다. 여러 낱을 가리킬 때 이를 ‘낱개’처럼 나타내다 보면 우리말 “낱낱”은 사라지게 된다. “낱개로 포장되었다.” 대신 “낱낱으로 포장되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우리말을 보존해 나가는 길이다. 이처럼 반복.. 2018. 12. 12.
'수납'은 '계산', '분리수거'는 '분리배출'이 맞는다 [조선일보 2018년 11월 27일]에 실린 글 병원에서 진료비를 낼 때 "수납 창구로 가시라"는 안내를 받는다. 대개 그곳엔 '수납'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간호사들도 "가서 수납하시고 처방전 받아가세요"라고 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수납'이라는 낱말이 여럿 있다. 그중 우리가 많이 쓰는 말은 두 개이다. 하나는 '돈이나 물품 따위를 받아 거두어들임'이라는 뜻의 '수납(收納)'이고, 다른 하나는 수납장, 수납공간 등에 쓰이는 '받아서 넣어 둠'이라는 뜻의 '수납(受納)'이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수납'이라는 말은 돈을 받아 거두어들이는 것을 말한다. 그 주체는 누구인가. 환자인가, 병원인가. 당연히 병원이다. 그러니 간호사가 "수납하세요"라고 환자나 보호자에게 안내한다면 그건 '돈 받아가세요'라.. 2018. 11. 27.
히히덕거리다 [아, 그 말이 그렇구나-260] 성기지 운영위원 방송을 보다 보면 음식 맛을 표현하는 갖가지 말들이 쏟아진다. 이 가운데 음식 맛이 싱거울 때 ‘닝닝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밍밍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닝닝하다’는 낱말은 국어사전에 없다. 음식이 제 맛이 나지 않고 아주 싱거울 때는 ‘밍밍하다’, 또는 ‘맹맹하다’고 하는 것이 바른 표현이다. 음식에서뿐만 아니라, 마음이 몹시 허전하고 싱거울 때에도 “마음이 밍밍하다/맹맹하다.”고 말할 수 있다. ‘히히덕거리다’는 말도 자주 쓴다. 실없이 웃으면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이를 때 “틈만 나면 전화로 히히덕거렸다.”처럼 말한다. 하지만 ‘히히덕거리다’가 표준말은 아니다. 이 말은 ‘시시덕거리다’, ‘시시덕대다’로 고쳐 쓰는 것이 .. 2018. 11. 14.
날개 돋힌 듯? [아, 그 말이 그렇구나-230] 성기지 운영위원 받침소리가 이어져 소리 나는 말들 가운데 잘못 적기 쉬운 말들이 많다. ‘높다’의 사동형인 ‘높이다’도 그러한 사례이다. ‘높게 하다’는 뜻으로 쓸 때 바른 표기는 ‘높이다’인데 여러 곳에서 ‘높히다’로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실제 인터넷 검색창에 ‘높히다’를 입력해 보면 무수한 글들이 떠오른다. 또, “어떠할 것으로 짐작이 가다.”는 뜻으로 쓰이는 ‘짚이다’를 ‘짚히다’로 적는다든가, “얼음을 녹이다.”라는 말을 “얼음을 녹히다.”로 적는 경우, “뚜껑이 덮이다.”를 “뚜껑이 덮히다.”로 적는 경우가 무척 많다. 이들은 모두 ‘-히-’가 아니라 ‘-이-’로 적어야 한다. ‘돋치다’도 ‘치’와 ‘히’ 표기가 자주 틀리는 사례이다. 말 속에 상대를 공.. 2018. 4. 4.
[한글새소식-526]낱말의 의미는 문자가 아니라 체험에서 얻는다. ■ 낱말의 의미는 문자가 아니라 체험에서 얻는다. 한자 문제에는 두 가지 논쟁점이 있다. 하나는, ‘한자말 뜻을 익히는 데에 한자 지식이 반드시 필요한가?’하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한자로 표기하지 않으면 한자말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없는가?’하는 점이다. 두 문제는 ‘교육’과 ‘표기’라는 다른 영역에 속하지만, 사실은 ‘낱말의 뜻을 사람이 어떻게 알아채는가?’라는 하나의 문제에서 비롯한다. 새로운 낱말을 이해하는 단계에서 한자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은 교육의 문제이고, 낱말을 눈으로 지각하고 식별하는 단계에서 한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표기의 문제다. 하지만 한자말의 이해와 식별에서 한자가 차지하는 역할은 기대만큼 크지 않다. 먼저, 교육의 문제를 짚어보자. 한자말의 의미는 대개 구성 한자의 .. 2016. 6.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