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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아, 그 말이 그렇구나(성기지)361

고랑과 이랑 [아, 그 말이 그렇구나-326] 성기지 운영위원 춘분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산과 들이 기지개를 켜고, 얼었던 논밭에도 새 생명의 기운이 꿈틀댄다. 산자락에 매달린 밭에서는 벌써 호미를 들고 밭이랑을 고르는 어르신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이랑’이란 말은 밭농사를 짓는 분들에겐 무척 친숙한 낱말이다. 그런데 그분들 가운데서도 이랑과 고랑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랑은 밭을 갈아 골을 타서 두두룩하게 흙을 쌓아 만든 곳이고, 고랑은 그 두둑한 땅과 땅 사이에 길고 좁게 들어간 곳이다. 이랑에선 모종이 자라고 고랑으론 빗물이 흘러든다. 밭농사는 반드시 고랑과 이랑을 만들어야 한다. 흙을 깊이 갈아엎어서 흙덩이를 잘게 부수고 고른 다음, 고랑에서 파 올린 흙으로 이랑을 만들어 씨앗을 넣거나 모종을 옮겨서.. 2020. 3. 11.
봄이다 [아, 그 말이 그렇구나-325] 성기지 운영위원 내일(5일)이 경칩이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 꿈틀거리는, 새봄의 문턱이다. 그러나 도시는 아직 을씨년스럽고, 사람들은 입마개를 한 채 종종걸음을 치고 있으며, 일터와 집 외에는 어디에도 발걸음을 멈추고 싶어 하지 않는다. 코로나19는 새봄의 다사로운 기운이 우리 사회의 문턱을 넘어올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다. 경칩이 되었지만, 개구리도 코로나19의 서슬에 잠에서 깨어날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럼에도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우리말 ‘봄’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들이 각자 다른 견해를 내놓고 있다. 어떤 학자는 따뜻한 온기가 다가온다는 뜻으로, ‘불(火)’과 ‘오다’의 명사형인 ‘옴(來)’이 결합된 뒤에 이 ‘불옴’이 ‘봄’으로 변천해 왔.. 2020. 3. 4.
떠세 [아, 그 말이 그렇구나-324] 성기지 운영위원 우리는 실속이 없이 겉으로만 드러나 보이는 기세를 ‘허세’라고 한다. 허세는 한자말인데, 이 말과 비슷하게 쓰이는 순 우리말이 있다. 바로 ‘떠세’라는 말이다. ‘떠세’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재물이나 힘을 내세워 잘난 체하고 억지를 쓰는 짓이라고 풀이돼 있다. 허세가 실속 없이 겉으로만 잘난 체하는 행동이라면, 떠세는 갖고 있는 재물이나 힘을 과하게 내세워 잘난 체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코로나19라는 급성 감염병으로 국가 비상사태를 겪고 있다. 온 국민이 힘을 합쳐 헤쳐 나가야 할 위기에 놓여 있음에도, 우리의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이 시국에도 당쟁에 여념이 없는 정치인들과, 정치인들보다 정치에 더 깊이 개입하는 일부 종교인들, 이 .. 2020. 2. 26.
차가운 바람, 추운 날씨 [아, 그 말이 그렇구나-323] 성기지 운영위원 사나흘 전부터 갑자기 추워지면서 “차가운 날씬데 건강은 어떠십니까?”란 인사를 듣는다. ‘차가운 날씨’가 바른 말일까? 우리말에서 ‘차다’ 또는 ‘차갑다’라고 하는 것은 “몸에 닿아서 찬 느낌이 있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찬 서리가 내리다’, ‘차가운 물’ 들처럼 표현한다. 이와는 달리, 기후 곧 날씨가 차가울 때에는 ‘춥다’라고 해야 옳다. “차가운 날씹니다.”는 “추운 날씹니다.”로 고쳐 말해야 올바른 뜻을 전하게 된다. ‘추운 날씨’를 ‘차가운 날씨’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차가운 바람이 볼을 스쳤다.”처럼 ‘몸에 닿아서 찬 느낌이 있는 바람’은 ‘차가운 바람’이다. 이를 “추운 바람이 볼을 스쳤다.”라고 말하면 무척 이상하다. 정리하.. 2020. 2. 19.
아등바등 [아, 그 말이 그렇구나-322] 성기지 운영위원 “반지하방에서도 악착같이 살기 위해 바동거렸다.”에서 볼 수 있듯이, 힘겨운 처지에서 벗어나려고 바득바득 애를 쓴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 ‘바동거리다’, ‘바동대다’이다. 이 ‘바동거리다/바동대다’의 큰말은 ‘버둥거리다/버둥대다’이다. 그러나 실제 말글살이에서는 “지하방에서도 악착같이 살기 위해 바둥거렸다.”처럼 많은 사람들이 ‘바둥거리다/바둥대다’로 쓰고 있다. 본디 말과는 어긋난 표현이지만 이미 많은 이들이 이처럼 쓰고 있기 때문에, 국립국어원은 인터넷 『표준국어대사전』에 ‘바둥거리다/바둥대다’를 표준말로 올려놓았다. “으리으리한 저택 주인 앞에서는 왠지 굽신거리게 된다.”에서 ‘굽신거리다’는 남의 비위를 맞추느라고 비굴하게 행동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2020. 2. 12.
후출하다 [아, 그 말이 그렇구나-321] 성기지 운영위원 우리말에 ‘후출하다’가 있다. 요즘 말글살이에서는 낯설게 느껴지는 말이다. 매우 배가 고픈 상태를 나타내는 말인데, 이 말의 쓰임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말밭을 헤쳐 나가다 보면 맨 끝에서 ‘촐촐하다’를 만날 수 있다. 끼니 때가 다가오면서 ‘배가 조금 고픈 느낌’이 있을 때 ‘촐촐하다’고 한다. “점심 때가 다가오니 촐촐하네.”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더 시간이 지나 ‘배가 고픈 느낌’(‘조금’이 빠졌다.)이 들면 ‘출출하다’고 한다. “점심을 거르니 출출하네.”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출출하다’가 배가 고픈 느낌을 가장 일반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출출하다 못해 허기가 지기 시작할 때에 이르러서 ‘허줄하다’라는 우리말이 쓰인다. “점심밥을 거르고 아.. 2020. 2. 5.
존망이 위태롭다 [아, 그 말이 그렇구나-320] 성기지 운영위원 “바이러스 확산으로 국가의 존망이 위태롭다.”는 문장에서 ‘존망이 위태롭다’는 표현은 문제가 없을까? ‘존망’이라는 말은 ‘존속과 멸망’ 또는 ‘생존과 사망’을 뜻하고 있다. 상대되는 두 개념이 한 낱말에 다 들어 있는 것이다. 반면 서술어는 ‘위태롭다’ 하나뿐이다. 그러니까 “국가의 존망이 위태롭다.”는 말은 ‘국가의 존속도 위태롭고 멸망도 위태롭다’는, 이치에 맞지 않는 뜻이 된다. 따라서 이 말은 “국가의 존속이 위태롭다.”는 정도로 고쳐 쓰거나, 그냥 “국가가 위태롭다.”로 간단히 표현하면 올바른 뜻을 전할 수 있게 된다. 이와 비슷한 사례 가운데 “생사가 위기에 처했다.”는 문장도 어색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생사’는 ‘삶과 죽음’인데, ‘생사 .. 2020. 1. 30.
‘맞히다’와 ‘맞추다’ [아, 그 말이 그렇구나-319] 성기지 운영위원 올 여름에는 도쿄에서 올림픽 경기 대회가 열린다. 우리나라가 가장 금메달을 자신하는 종목은 역시 양궁이라고 한다. 우리 선수들이 도쿄에서 쏘아낸 화살이 온 국민의 묵은 체증을 확 뚫어 주리라 기대한다. 지난 올림픽 경기 대회에서 양궁 중계를 할 때, “화살이 과녁을 정확히 맞췄어요.” 하고 환호하던 해설자가 생각난다. ‘맞히다’와 ‘맞추다’를 혼동한 까닭이다. “화살이 과녁을 정확히 맞혔어요.”가 맞다. ‘맞히다’는 ‘맞다’의 사동사로서, ‘목표물에 바로 맞게 하다’, ‘적중하다’라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가령, “과녁을 맞히는 솜씨는 우리가 최고다.”라고 할 때에 ‘맞히다’라고 표현해야 하는데, 이 말이 일상생활에서는 ‘맞추다’와 자주 헛갈리고 있다. .. 2020. 1. 22.
차림표를 바르게 [아, 그 말이 그렇구나-318] 성기지 운영위원 음식점 차림표를 보면 잘못된 표기들이 자주 눈에 뜨인다. 가장 흔하게 보이는 것이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에서 ‘찌개’를 ‘찌게’로 적어 놓은 차림표이다. ‘찌개’는 동사 ‘찌다’(→익히다)의 어간 ‘찌-’와 접미사 ‘-개’가 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이를 ‘찌게’로 잘못 적는 것은 [ㅔ]와 [ㅐ]의 발음 구별이 어려운 탓일 텐데, 차림표 표기 가운데는 이처럼 발음의 혼동으로 잘못 쓴 사례가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돼지고기로 만든 요리인 돈가스이다. 흔히 [돈까스]로 발음하고 있지만, 글로 옮길 때에는 ‘돈가스’라고 적어야 한다. 그러나 음식점 차림표에서는 발음을 그대로 적은 ‘돈까스’가 자주 보인다. 본디 돼지고기 튀김이라는 뜻의 “포크 커틀릿”(pork .. 2020.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