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로 엿보는 조선 공주의 혼례-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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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엿보는 조선 공주의 혼례-서지윤 기자

한글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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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엿보는 조선 공주의 혼례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3기 서지윤 기자

97sjy2016@naver.com

 

순원왕후가 사위 윤의선과 덕온공주에게 보냈던 혼수 발기. 모두 한글로 작성되어 있다.

덕온공주는 1822년 순조 임금의 마지막 딸로 태어나서 8살에 공주의 지위를 받고 16살에 시집을 가서 23살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오빠인 효명세자, 언니 명온공주, 복온공주에 이은 셋째 공주였다. 정식으로 공주가 되던 8살에 ‘덕스럽고 온화하다’는 의미를 담은 ‘덕온’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지금으로부터 180년 전, 공주가 결혼할 때 덕온공주의 어머니는 하나 남은 막내딸의 결혼을 정성껏 챙겼는데, 그 내용이 한글로 기록되어 전해온다. 이 기록물들을 한글박물관에서 <1837년 가을 어느 혼례 날, 덕온공주 한글자료> 전시전에서 직접 볼 수 있다.


직접 가본 전시에서는 그 기록물에서 어머니 순원왕후가 덕온공주의 혼례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썼고, 덕온공주가 결혼한 이후에도 얼마나 딸을 그리워했는지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 궁중 문서의 한 종류로 물품명과 그 수량을 적어둔 목록을 발기라고 부른다. 덕온공주의 혼례는 어머니 순원왕후가 도맡아 준비하며 막내딸의 혼례를 아주 정성껏 준비했는데 덕온공주와 사위 윤의선에게 마련해 준 혼수 발기, 신혼집 세간으로 넣어준 발기 등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발기는 모두 한글로 적혔다.

덕온공주는 비록 시댁과 분리된 살림집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하였지만 어머니와 떨어져 살 수밖에 없었다. 덕온공주가 궁에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없는 상황이라 순원왕후는 딸과 사위에게 아주 많은 편지를 썼다고 한다. 순원왕후는 막내딸을 자주 보지 못하여 생기는 그리움을 편지를 쓰며 달랬던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런 순원왕후의 애틋한 마음을 담은 한글 편지도 역시 만나볼 수 있었다.


덕온공주 역시 순원왕후만큼이나 글 쓰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덕온공주는 한글로 된 책을 베껴 쓰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덕온공주가 직접 베껴쓴 것으로 전해지는 ‘춘련’과 ‘일촬금’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었다.


전시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덕온공주가례등록』에 덕온공주가 시집갈 때의 절차와 부마 간택 과정 등이 기록되어있는데 이에 따르면 덕온공주의 혼례는 납채, 납폐, 명복내출, 칭연, 동뢰연의 5단계로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명복내출’은 왕실 여성과 사가 남성의 혼례에만 있는 독특한 절차로서 임금의 사위인 부마에게 옷을 내어주는 것이다. 덕온공주가 혼례를 치르던 당시 공주에게 남은 가족은 어머니인 순원왕후뿐이었다. 그런 순원왕후가 덕온공주와 사위 윤의선에게 보냈던 혼수 발기는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덕온공주의 한글 혼수 발기에는 노리개, 비녀, 댕기 등의 장신구뿐만 아니라 사발, 대첩 등의 그릇 및 가위, 인두 등의 바느질 도구까지 살림에 필요한 모든 물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19세기 당시 혼수품을 지칭하는 표현도 발기에 쓰여 있는데 모두 한글로 작성되어 있어서 우리말 어휘를 잘 확인할 수 있다.
 

덕온공주는 비록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막내딸로서 어머니의 정성 아래 큰 사랑을 받고 자랐다.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진행되는 이번 전시 <1837년 가을 어느 혼례 날, 덕온공주 한글자료>에서는 바로 그런 공주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전시는 국립한글박물과에서 오는 12월 18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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