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문화연대 2018. 7. 18. 14:52

[아, 그 말이 그렇구나-245] 성기지 운영위원

 

학생들 사이에서 “재수 덩어리!”, “왕재수야!” 하는 말들이 오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말들을 부정적으로 쓰는 것이라면, ‘재수’라는 말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사례이다. ‘재수’라고 하면 ‘재물이 생기거나 좋은 일이 있을 운수’를 말한다. 그러니까, ‘재수’는 누구나 바라는 참 좋은 말이 된다. “왕재수야!” 하면 대단히 좋은 일이 생겼다는 말이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는 정반대가 된다. 운수 나쁜 일이 생겼을 때에는 이 말에 ‘없다’를 붙여서 ‘재수 없다’라고 표현해야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된다.


이런 말들은 잘못 쓰고 있는 경우이지만, 아예 원래의 뜻이 반대로 옮겨가서 굳어진 낱말들도 있다. ‘빚쟁이’란 말도 그러한 사례이다. 요즘에는 빚을 진 사람을 낮잡아 이를 때 쓰는 말로 ‘빚쟁이’를 많이 쓰고 있다. 가령 “유명 연예인이 사업 실패로 하루아침에 빚쟁이가 되었다.”에 쓰인 ‘빚쟁이’가 바로 그렇다. 그런데 ‘빚쟁이’의 본디 뜻은 빚을 진 사람이 아니라, 남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는 빚 독촉에 못 이겨 집을 빚쟁이에게 넘기고 말았다.”처럼 써왔던 말이다.


우리말에서 빚을 진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은 ‘빚꾸러기’였다. 예전에는 빚을 진 사람은 ‘빚꾸러기’, 돈을 빌려준 사람은 ‘빚쟁이’로 엄격히 구분해 썼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빚꾸러기’는 잊고 돈을 빌려 준 사람이든, 빌려 쓴 사람이든 모두 ‘빚쟁이’로 부르기 시작했다. ‘빚꾸러기’가 점점 힘이 약해지고 잘 쓰이지 않게 되자 ‘빚쟁이’가 ‘빚꾸러기’의 자리까지 빼앗아 버린 것이다. 이제 ‘빚꾸러기’는 사전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