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문화연대 2020. 5. 20. 09:35

[아, 그 말이 그렇구나-335] 성기지 운영위원



최근 일본군 위안부 성금 유용 의혹을 받고 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가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데 대해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라고 말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심심한 사과’를 한다. 이 ‘심심한’은 대체 어떤 뜻으로 쓴 말일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맛이 조금 싱겁다.’라든가,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닐 것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고서야 이 말이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뜻을 지닌 ‘심심하다(甚深--)’란 한자말임을 알았다.


그런데 또 궁금해졌다. 대개의 한국 사람들은 매우 깊고 간절한 마음을 나타낼 때 ‘진심으로’, ‘깊이깊이’와 같은 부사어를 쓰고 있지 않은가? 나날살이에서 ‘진심 어린 위로 말씀’을 드리고 ‘깊은 사과 말씀’을 드리지, ‘심심한 위로 말씀’, ‘심심한 사과 말씀’을 드리는 것을 본 일이 거의 없다. 아, 있다. 역대 일본 정치인들이 근거 없이 한국을 비방하는 망언을 했다가 문제가 되면 으레 ‘심심한 사과’를 해오지 않았던가.


일본어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아주 간절하다.’는 뜻을 지닌 형용사 ‘신진다(しんじんだ[深甚だ])’를 우리식 한자음으로 읽으면 ‘심심하다’가 된다. 일본 정치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다. 일본어와 닮은 말일 뿐이지 ‘진심으로’, ‘깊이깊이’보다 더 간절한 뜻을 담은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굳이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이 말을 쓰는 까닭은, 일본식 표현에 아직 익숙해 있거나 깊은 진심을 나타내기 싫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돕기 위한 단체장으로서 사용할 만한 말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