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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한글 - 이희승 기자

한글문화연대 2020. 11. 11. 09:58

무대 위 한글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7기 이희승 기자

h29mays@naver.com


 한글날이 올해 574돌을 맞았다.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인원이 참가하는 대면 행사는 줄었지만, 곳곳에서 한글날을 기념하기 위해 비대면 행사를 진행했다. 한글과 관련된 영화도 빼놓을 수 없다. 이전부터 우리말, 세종대왕, 한글 창제 등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 작품들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대중들이 세종의 업적과 우리말, 학자들의 노고를 다시금 떠올리도록 돕고 있다.


▲ 왼쪽부터 영화 <말모이>, <천문>, 드라마 <대왕세종>, <뿌리깊은 나무>

 

 그런데 이렇게 한글과 관련된 역사를 보여주는 것은 비단 영화와 드라마뿐만이 아니다. 공연계, 특히 최근 많은 관객을 모으고 있는 음악극(뮤지컬) 분야에서도 무대 위로 우리말 이야기를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종대왕의 삶과 고뇌를 엿보다, <뿌리깊은 나무>와 <세종, 1446>

 세종의 가장 위대한 업적인 훈민정음 창제를 다룬 작품은 다양하지만, 이 역사적 사실을 어떤 면에서 바라보고 작품을 구성했느냐에 따라 극이 전달하는 의미와 감동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비슷한 주제지만 그 이야기 속을 들여다보면 분명히 구분되는 두 작품이 있다. 바로 <뿌리깊은 나무>와 <세종, 1446>이다.

 음악극 <뿌리깊은 나무>는 2014년, 국립 한글박물관 개관을 기념하여 개막했다. 같은 이름의 인기소설을 바탕으로 서울예술단이 창작가무극으로 제작해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공연했다. 이 작품이 독특한 까닭은 단순히 세종의 업적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집현전 학사 연쇄살인 사건’이라는 역사적 상상을 추가해 극의 재미와 긴장감을 높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재미를 더하기 위해서만 허구적 이야기를 만든 건 아니다. 오히려 훈민정음 반포를 찬성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의 대립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이 과정에서 세종의 고통과 고뇌를 보여주는 데 더 집중했다. <뿌리깊은 나무>는 2015년을 마지막으로 현재는 공연하지 않는다.


▲ (왼쪽부터) 음악극 <뿌리깊은 나무> 광고지(2장), <1446>, <세종, 1446> 광고지


 2018년, 세종 즉위 600년을 기념하여 처음 공연한 음악극 <1446>은 2017년에 이미 여주 세종국악당과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시연해 대중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2019년에는 제목 ‘1446’을 ‘세종, 1446’으로 바꾸어 두 번째 공연을 올렸으며 국내 최초로 14시 46분에 예매 창을 열기도 했다. 이 작품에선 임금 ‘세종’이 아닌 인간 ‘이도’를 주인공으로 세워 그의 업적보다는 삶에 관해 더 이야기한다. 김은영 연출가는 ‘어떻게’보다는 ‘왜’에 집중하여 세종이 왜 그렇게까지 한글 창제에 몰두했는지 그 이유를 파고들었다고 했다. 이러한 연출 의도, 세종의 성장환경과 가치관이 담긴 일대기 속에서 관객들은 세종의 인간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은 2018년부터 매년 꾸준히 공연하고 있다. 원래 올해는 10월에 관객을 만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10월 9일 한글날에 비대면으로 공연을 무료 생중계했다. 그러나 11월 6, 7일에는 부천에서, 11월 13, 14일에는 군산에서 대면 공연이 이루어지는 등 지방 순회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국어학자의 삶을 전하다, <외솔>


▲ 음악극 <외솔> 광고지


 <외솔>은 ‘한글이 목숨’이라는 말씀을 전한 외솔 최현배 선생의 삶을 음악극으로 승화한 것으로, 2015년에 울산에서 처음 공연했다. 이 작품의 제목은 2015년 첫 공연 때는 <외솔, 겨레의 등불>, 2016년에는 <외솔, 겨레의 등불 최현배>, 그리고 2017년부터 2019년까지는 <외솔>로 세 번에 걸쳐 바뀌었다. 1막에서는 일제의 폭압 속에서 우리말, 한글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외솔 선생과 식민지 조선의 백성들 이야기를 전하고, 2막에서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된 외솔 선생이 옥중에서 한글 가로쓰기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제는 이 작품을 앞으로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5년 동안 꾸준히 작품성을 인정받아 예술 부문 수상도 하고, 한글날 경축식 행사에서 축하 무대를 장식하는 등 울산의 대표 음악극으로 자리 잡은 <외솔>이 올해 제작이 중단되었는데, 울산시에서 앞으로 예산을 지원해주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 소식에 지역 문화계와 시민들은 안타까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국 사투리를 모으다, ‘말모이 연극제’

 음악극에서는 세종대왕과 훈민정음 그리고 국어학자의 삶을 주로 다루었다면, 연극 분야에서는 좀 더 현실적인 차원에서 우리말을 아끼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노력 중 하나가 바로 <말모이 연극제>다.


▲ (왼쪽부터) ‘제2회 말모이 연극제’ 광고지, 연극 ‘덫’(경상도 부문), ‘동백꽃’(강원도 부문), ‘자청비2020(제주도 부문)’ 광고지


 ‘말모이 연극제’는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그리고 제573돌 한글날을 맞이하여 2019년에 처음 개최된 우리말 예술축제다. 각 지역 출신 배우들이 각자 준비해 발표하던 사투리 연극들을 하나로 아울러 우리말 연극제로 만들었으며, 주시경 선생의 뜻을 이어 편찬된 현대적인 국어사전인 <말모이>에서 이름을 따왔다. 올해도 제574돌 한글날을 맞아 9월 8일부터 10월 25일까지 대학로에서 연극제가 열렸다. 전라도 부문의 ‘싸나이로만스’로 문을 열고, 제주도 부문의 ‘자청비2020’으로 마무리되었는데, 이 밖에도 ‘없시요’(이북), ‘불매기라는 이름의 달항아리’(충청도) 등 일곱 지역 부문에 극단 여덟 곳이 참여하여 전국의 지역색과 사투리를 담은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주차

지역

제목 

예술단체 

 1주

전라도 

싸나이로만스 

극단 무대 그리고 나 

 2주

이북 

없시요 

창작집단 곰 

 3주

충청도 

불매기라는 이름의 달항아리 

박정순 사랑방 극장 

 4주

경기도 

잉큼잉큼 소설극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B사감과 러브레터 

극단 늑대 

 5주

경상도 

덫 

창작집단 혜화살롱 

 6주

강원도 

동백꽃 

ACTS138 

 7주

제주도 

자청비 2020 

재경제주극단 괸당들 

 자청비

제주극단 세이레 

▲ 2020년 제2회 말모이 연극제 참여 작품과 예술단체


 말모이 연극제는 일본 잔재어나 외국어 등 틀린 말을 고치고, 우리 고유의 언어인 사투리를 통해 우리말을 수호하자는 취지로 연극계에서 2017년부터 준비했다. 폐막 및 시상식에서 ‘우리말 지킴이상’과 ‘우리말 빛냄상’을 시상함으로써 이러한 연극계의 취지를 잘 보여주었다.


 공연계에서는 한글과 역사, 우리말과 관련된 극 작품들을 꾸준히 기획하지만, 2015년 이후로 공연하지 않는 <뿌리깊은 나무>, 코로나19 사태에 잠시 공연 일정이 휘청였던 <세종, 1446>, 그리고 예산을 지원받지 못해 공연이 중단된 <외솔>의 상황만 보더라도 유명 배우들이 대형 극장에서 공연하는 작품들보다 확실히 인지도가 낮고, 예산 측면에서도 불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이 생명력을 얻는 데 필요한 것은 바로 대중, 우리들의 관심이다. 무대가 전하는 생생한 감동을 느끼고 우리말과 관련된 더 많은 창작극이 발전할 수 있도록 내년에는 앞서 소개한 음악극과 연극을 관람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