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말이 그렇구나-361] 성기지 운영위원
어제 우리 마을 큰 가게에 가서 햅쌀 한 포대를 사며 가게 직원에게 “올해 수확한 나락을 타작한 거 맞지요?” 하니, 나락을 못 알아듣는다. 수도권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들에게는 벼를 나락이라고 부르는 게 낯설 만도 하다. 그러니 타작을 바심이라고 했다면 이방인 취급을 받았을 것 같다. 가을걷이가 끝난 농촌의 들에는 나락을 바심하고 난 짚을 말아서 쌓아놓은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요즘엔 그마저 보기 어렵게 되었다.
나락이 낯선 이들도 논에서는 벼가 자라고 이 벼를 바심하여 쌀을 얻는다는 것을 잘 안다. 벼의 낟알을 떨어낸 줄기가 볏짚이란 것도 대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낟알을 찧어 쌀을 빼고 난 껍질이 겨라고 하면, 또 그 겨도 쌀의 고운 속겨인 쌀겨와 겉겨인 왕겨로 분리하여 그 쓰임이 다르다고 하면, 이 또한 낯설어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한 이들에게 우리말 ‘쓿다’는 아마도 외계어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벼를 찧어 속꺼풀을 벗기고 깨끗하게 하는 것을 ‘쓿는다’고 한다. 이렇게 쓿어 놓았는데도 아직 껍질이 벗겨지지 않은 벼 낟알이 섞여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을 뉘라고 한다. 이 뉘가 몇 안 되면 골라내기도 하지만, 많이 섞여 있으면 한 번 더 쓿어야 한다. 이렇게 벼를 쓿 때 생기는 부스러진 쌀알을 가리켜 싸라기라 하였다. 유독 가난했던 어린 시절, 어머니는 이 싸라기를 얻어다가 시래기를 넣어 죽을 쑤어 주시곤 했는데, 이제 나이 들어 되돌아보니 그 부드러운 싸라기 죽이 새삼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