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경제성, 어느 선까지가 적당할까? - 이희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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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경제성, 어느 선까지가 적당할까? - 이희승 기자

한글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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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경제성, 어느 선까지가 적당할까?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7기 이희승 기자

h29mays@naver.com

 

▲ 한국일보 기사 제목 일부.


‘소확행’, ‘알못’, ‘깜놀’. 이제는 뉴스 기사에도 종종 쓰이는 단어들이다. 최근에는 거센 주식 투자와 관련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과 ‘빚투(빚내서 투자)’라는 말도 신문에 등장했다. 이렇듯 신조어 중에는 특히 줄임말이 많은데, 두 단어의 앞 음절만 따서 만들기도 하고 한 단어를 잘라서 만들기도 한다. 사실,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말을 덜 하곤 한다. 바로 언어와 언어 사용자의 특징 때문이다.

언어의 경제성
지구촌 언어 대부분은 공통적인 특징을 지닌다. 학창 시절 언어의 본질이라고 한 번쯤 배웠을 자의성, 사회성, 역사성 등이 해당한다. 이들과 함께 언급되지는 않지만, ‘언어의 경제성’이라는 보편적인 특징이 하나 더 있다. 사람은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면서 언어를 쓰려고 한다. 한국어 사용자들도 마찬가지로, 주어나 목적어 같은 문장성분이나 조사를 빼는 등 매번 완벽한 문장을 쓰지는 않는다. 또한 모든 음절을 또박또박 말하지 않고 문장 끝으로 갈수록 부정확하게 발음하는 경향이 강한 것도 언어의 경제성 때문이다. 따라서 소확행이나 영끌처럼 음절을 줄인 신조어들이 생기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현상임을 알 수 있다.


완전한 문장 실제로 쓴 문장 생략된 것
너는 밥을 먹었니? 밥 먹었니? 문장성분(주어), 조사
완전한 문장 실제로 발음한 문장 공통점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고맙슴다 / 감사함다. 끝으로 갈수록 부정확한 발음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여?

▲ 완전한 문장과 언어의 경제성에 의해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문장 예시
(편의상 음운변동에 의한 발음표기를 쓰지 않았다)


외화 번역과 언어의 경제성
영화 등 외국작품을 번역할 때도 언어의 경제성을 고려한다. 특히 자막은 화면 아래에 나올 수 있는 공간이 정해져 있고, 등장인물이 대사를 말하는 짧은 시간 안에 읽혀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이러한 조건뿐만 아니라, 가독성을 높여 보는 이의 이해를 돕거나 우리 문화를 반영하여 재미를 더하기 위해 문장요소를 빼거나 말을 줄이기도 한다. 즉, 언어의 경제성은 의역과도 관련이 깊으며 번역가는 정보를 압축하고 단어를 바꾸거나, 간결한 서술어를 쓰거나, 음절 수를 줄이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번역한다.

 

영화 제목 원문과 직역 언어의 경제성을 살린 해석
러브액추얼리 가: Your girl's American?
가: 네 여자는 미국인이니?
나: Yes, she's American.
나: 네, 그녀는 미국인이에요.
가: 미국 애야?

나: 네.
토이스토리 다: I'm actually from a smaller company that was purchased in a leveraged buyout.
다: 나는 차입자금을 이용해서 매수당한 더 작은 회사에서 왔어.
다: 사실은 할인매장에서 왔어.

▲ 영화 대사 원문과 의역한 예시.
(참고: 강지혜, 「자막 번역과 언어 사용의 경제성」, 󰡔텍스트언어학󰡕, 21, 2006.)

 

짧은 외국어냐 긴 우리말이냐
언어의 경제성은 언어 사용자의 본성과도 관련이 있고 효율적인 의사소통에도 영향을 주지만,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면 언어의 경제성을 지향하는 것이 무조건 바람직한 일은 아닌 듯하다.

 

▲ 인터넷 기사 속 ‘데드크로스’


최근 인구 문제와 관련해 ‘데드크로스’라는 말이 등장했다. 원래는 경제 분야에서 자주 쓰던 말이었는데, 이제는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많아지는 현상도 일컫는다. 환경 분야에서는 ‘그린 워싱(기업들이 환경에 해로운 제품을 만들면서 친환경 제품인 척 광고하는 것)’이라는 말도 쓴다. 이러한 외국어 단어들은 추가 설명이 없거나 맥락을 꼼꼼히 살피지 않으면 한눈에 그 뜻을 알기 힘들다. 이미 국립국어원에서는 데드크로스를 ‘약세 전환 지표’로, 그린 워싱은 ‘친환경 위장’으로 순화했지만, 여전히 ‘데드크로스’와 ‘그린 워싱’을 사용한 뉴스 기사나 글들이 순화어가 쓰인 것보다 많다. 이것이 언어의 경제성과 어떠한 연관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데드크로스’는 다섯 음절, ‘약세 전환 지표’는 여섯 음절이다. 또한 ‘그린 워싱’은 네 음절, ‘친환경 위장’은 다섯 음절이다. ‘아웃소싱’의 순화어인 ‘외주’가 많이 쓰인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의미를 곧바로 파악하기 쉽지 않으면서 음절 수도 더 많은 우리말 순화어가 과연 입에 잘 붙을지 의문이 든다.

지금까지 언어의 경제성과 관련된 몇 가지 사례들을 살펴봤다. 말을 덜 하려는 본능이나 단어를 적게 사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 등 여러 이유로 우리말 사용자는 자기의 뜻을 간결한 말과 글로 표현한다. 이로 인해 여러 신조어가 생기기도 하고, 자연스러운 번역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대체할 수 없는 전문 용어가 아니고선, 언론에서 줄임말을 쓰거나 외국어 단어들을 자주 사용하는 것은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아무리 익숙한 줄임말이라고 해도 남녀노소 읽는 뉴스 기사에서는 이를 풀어쓰거나 설명을 덧붙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외국어 용어를 의미가 통하는 우리말로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언어의 경제성까지 고려한다면 대중이 좀 더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사용하지 않을까. 언어의 경제성을 어디까지 적용할지 균형을 잡을 때가 아닌가 싶다.

※ 참고문헌
강지혜, 「자막 번역과 언어 사용의 경제성」, 󰡔텍스트언어학󰡕 21, 2006.
서천수, 「언어사용의 경제성과 생략」, 󰡔영어교육연구󰡕 제10집,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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