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기] 인공지능 시대 속 언어 전공의 위기와 생존 전략 - 기자단 12기 박규태
인공지능 시대 속 언어 전공의 위기와 생존 전략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12기 박규태
사라져가는 언어 전공...
전문가가 말하는 언어 전공자의 생존법은?
▲ 최근 구글은 차세대 제미나이 2.5를 공개했다 (사진=구글)
"저는 번역을 좋아하지만, 인공지능이 이 일을 대신할까 봐 걱정돼요."
테솔(TESOL) 영어학을 전공 중인 중국인 유학생 허주성 학생은 최근 늘어난 대규모 언어 모델 기반의 인공지능 도구 사용 경험을 언급하며 언어 전공자로서의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인공지능(AI)은 문법 오류를 잡고, 의미 파악에도 분명 도움은 되지만, 여전히 직역 위주이거나 문화적인 맥락에서 어색한 표현이 많다"라고 토로했다. 특히 그는 "인공지능은 틀린 이유를 설명해 주지 못하고, 미묘한 뉘앙스나 감정 표현은 따라오지 못한다"며, 실제 대화에서 얻는 정서적, 문화적 학습이 여전히 대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고민은 언어 전공자들 사이에서 점점 더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덕성여대, 삼육대 등 여러 대학이 언어 계열 학과를 통폐합하거나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고 있다. 대학교육연구소는 2023년 현안 보고자료에서 언어·문학 계열의 2022년 대학 입학 정원이 2012년보다 약 36.7% 감소했다고 밝혔다. 부산대 사범대학 독일어 교육과를 졸업한 정재우 씨는 "우리 과는 이제 사라졌어요. 24년도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고 독문과와 통합되었죠. 심지어 대부분의 학생이 복수전공을 해서 다른 길로 가요"라고 말했다. 이 같은 감소세로 학생들은 언어 전공의 존재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결국 인공지능 시대에도 외국어 학습의 본질적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교수들의 시각이다.
인터뷰에 응한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 핀 하버 교수는 “전자 기기로 외국어 능력을 모방할 수는 없다”고 단언하며, “인공지능은 인간이 즐겨 사용하는 다중적 의미, 반어법 등을 이해하는 데 항상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공지능이 법률 문서 번역과 같은 특정 실용적 작업에는 유용할 수 있으나, 영화 자막 번역처럼 “미묘한 뉘앙스”를 파악하거나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유대감(connections between human beings)”을 맺는 데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핀 하버 교수는 이어 “현대의 직장에서 다국어 구사 능력은 매우 큰 이점입니다. 특히 기계 번역 없이 외국어로 직접 소통하는 능력과 자신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죠. 언어 학습은 국제적인 기업에서 경쟁력을 높여줄 뿐 아니라, 개인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게 합니다”라고 조언했다.
한편, 번역가이자 한국외국어대학교 박순강 교수는 “현재 언어 전공뿐만 아니라 프로그래밍 분야에서도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입니다”라고 말하며, 언어 전공자들에게도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공지능이 생성한 번역 결과가 맞는지를 확인하고,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오히려 더 깊이 있는 언어 이해력과 분석 능력이 필요합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파파고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교수들 사이에서는 ‘기계가 도움은 될 수 있지만, 인간 번역가의 섬세한 판단력은 따라오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인공지능을 대체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잘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 인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단순한 번역 기능을 넘어, 언어를 통해 사고하고 문화를 표현하는 인간 고유의 방식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언어를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닌 사고와 문화를 담는 그릇으로 본다면, 지금 언어 전공이 마주한 변화는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그 본질적 의미를 다시 묻는 시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