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기]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말, 공공기관부터 시작한다 - 기자단 12기 김예림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말, 공공기관부터 시작한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12기 김예림
공공기관이 사용하는 언어는 국민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된 소통 수단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행정기관이 써온 언어는 외국어, 한자어, 약어, 전문용어가 뒤섞여 있어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계속되어 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수년 전부터 개선 노력을 이어왔고, 국어책임관 제도나 언어 진단 사업처럼 제도화된 사례도 있다.
최근 공공기관에서 진행한 언어 개선 사례를 살펴보자. 대구광역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경기도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행정 언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1. 대구광역시–쉬운 행정용어를 위한 자동화 시스템 도입
대구광역시는 시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공공언어를 쓰기 위해 시스템 개선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2025년 국어책임관 업무 우수기관’으로 뽑힌 대구시는, 시민과 더 잘 소통하기 위해 다양한 언어 개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 가운데 대표 사례는 대구시가 자체 개발한 ‘행정용어 검사 자동화 도구’다. 이 프로그램은 공무원이 보도자료나 공문서 같은 문서를 작성할 때, 어려운 한자어·외국어·전문용어를 자동으로 찾아내고 쉬운 말로 바꿀 수 있도록 제안해 준다. 현재 4,513개의 어려운 용어와 이에 대응하는 6,074개의 쉬운 말이 등록돼 있다.
‘행정용어 검사기’로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이용자가 문장을 입력하면, 어려운 단어를 붉은색으로 표시한다. 각 단어를 클릭하면 문맥에 맞는 쉬운 말이 나타나고, 이를 선택하면 문장이 자동으로 바뀐다. 조사까지 함께 바꿔줘 문법 오류도 줄일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단어 교체를 넘어, 문맥에 맞는 표현을 골라 쓸 수 있게 해 실무에 바로 활용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구시는 공무원들이 이 도구를 실제로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정기 교육과 연수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또한 이번 시스템은 경북대학교 한국어문화원과 함께 개발한 것으로, 기술과 언어 연구가 결합한 성공 사례로 꼽힌다. 대구시는 앞으로 이 시스템을 전 부서로 확대해, 시민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행정 언어 사용을 정착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2. 한국자산관리공사×한양대 한국어문화원–챗봇·알림톡 언어 순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더 쉬운 언어로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한양대학교 한국어문화원과 협력해 공공서비스 ‘온비드’의 챗봇과 알림톡 메시지 언어를 다듬었다. 특히 자주 사용하는 문장들을 국민 눈높이에 맞춰 고친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기존 챗봇의 “입찰 참여를 원하시면 절차를 확인하세요” 같은 문장은 “입찰에 참여하고 싶으시면, 절차를 확인해 주세요”처럼 더 자연스럽게 고쳐졌다. 알림톡 문장도 약어와 딱딱한 행정용어 중심에서 벗어나, 쉽고 명확하게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문장을 단순하게 만들고 구어체를 활용함으로써, 사용자는 정보를 더 빠르게 이해하고 공공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챗봇과 알림톡은 문자 수가 제한돼 있고 즉시 반응이 필요한 만큼, 짧고 정확한 표현이 중요하다. 이번 개선은 그러한 특성을 잘 반영한 사례로 평가된다.
3. 경기도–어려운 공공언어 55개 선정해 대체어 제시
경기도는 2024년 ‘국어문화진흥사업’의 일환으로, 공공문서에서 자주 쓰이는 외래어, 한자어, 전문용어 가운데 어려운 말 55개를 선정하고 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 고시했다. 이 작업은 한양대학교 한국어문화원과 경기도 문화정책과가 함께 진행했다.
경기도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0%가 공공언어를 더 쉽게 바꿔야 한다고 답했다. 이를 바탕으로 국어 전문가와 ‘경기도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가 함께 최종 목록을 정했다.
예를 들어 ‘숏폼’은 ‘짧은 영상’으로, ‘어젠다’는 ‘의제’로 바꾸었다. ‘엑셀러레이팅’은 ‘기업 육성’, ‘밸류업’은 ‘가치 향상’처럼 정책 용어도 쉽게 풀어썼다. ‘세굴’은 ‘강바닥 파임’, ‘벌개제근’은 ‘나무 뿌리 제거’, ‘교면’은 ‘다리 표면’ 등 토목 분야 용어도 직관적인 표현으로 바뀌었다.
이 순화어들은 경기도청뿐 아니라 도내 31개 시·군과 산하기관에도 배포돼, 공무원들이 문서 작성에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영상 카드뉴스 형태로도 제작돼 버스 안의 텔레비전 화면, 세종청사, 공항철도 역사 등에서 송출되고 있으며, 유튜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사업은 도민이 행정 언어를 더 쉽게 이해하고, 공공기관과의 거리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어려운 용어나 전문적인 정책 용어가 쉬운 우리말로 바뀌면서, 도민의 정책 참여도와 이해도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어렵고 딱딱한 행정 용어는 이제 전문성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 대구광역시의 행정용어 검사기,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언어 순화 협업, 경기도의 순화어 대체 사업은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모두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행정 언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정책의 질만큼이나 그것을 전하는 언어의 질도 중요해진 지금, 국민이 이해하는 말에서부터 행정의 신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