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기] “Who is Nugu?” 전 세계 누리소통망을 점령한 ‘우리말’ - 12기 기자단 김예림
“Is he a nugu? (그는 ‘누구(무명’)인가?)”
“My maknae is so kiyowo. (우리 ‘막내’는 정말 ‘귀여워’).”
해외의 대표적인 정보 공유 게시판인 ‘레딧’이나 누리소통망인 ‘엑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장이다. 영어 문장 속에 우리말 단어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과거 우리 청소년들이 외국어를 섞어 쓰는 것을 세련된 것으로 여겼다면, 이제는 전 세계 케이팝 팬들이 우리말을 섞어 쓰는 것이 하나의 문화적 기준이 되었다. 이른바 ‘돌민정음(아이돌+훈민정음)’의 탄생이다.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누구(Nugu)’라는 단어다. 우리말에서는 정체를 묻는 의문사지만, 해외 팬들 사이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무명 가수’를 뜻하는 명사로 굳어졌다. “Who is Nugu?”라는 문장은 우리말로 번역했을 시 “누구는 누구인가?”라는 어색한 문장이 되어버리지만, 해외에서는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나온 것이다. 실제로 인지도 낮은 가수를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누구 홍보인(nugu promoter)’이라는 누리소통망 계정은 수십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팬들은 “그들이 무명 시절(nugu-dom)을 탈출했다”라는 식의 새로운 표현까지 만들어내며 우리말을 능동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영국의 옥스퍼드 영어 사전(OED)은 2021년 ‘오빠(Oppa)’, ‘언니(Unni)’ 등 26개 단어를 올린 데 이어, 2024년 말에도 ‘형(Hyung)’, ‘막내(Maknae)’ 등을 추가로 등재하며 우리말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단순히 유행이라서 올린 것이 아니다. 옥스퍼드 사전 편집진은 “우리는 모두 한국 문화라는 파도를 타고 있다”라며, "영어권의 ‘Brother(형제)’나 ‘Sister(자매)’ 같은 단어는 한국어의 호칭이 가진 미묘한 친밀감과 존중, 사회적 관계의 맥락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등재 이유를 밝혔다. 즉, 우리말 호칭이 서구권 언어의 빈틈을 채워주는 고유한 문화적 가치를 지녔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는 한글의 독보적인 과학성이 자리 잡고 있다. 한글은 소리 나는 대로 적을 수 있는 표음문자이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로마자로 옮겨 적기에 매우 쉽다. ‘Kiyowo(귀여워)’, ‘Aegyo(애교)’처럼 한국어의 음가를 외국인들이 직관적으로 표기하고 발음할 수 있다는 점이 ‘돌민정음’ 확산의 일등 공신이다. 세종대왕이 창제 당시 강조했던 ‘누구나 쉽게 익혀 사용한다’는 원리가 현대에서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애교(Aegyo)’나 ‘사생(Sasaeng)’ 같은 단어들도 이제는 번역 없이 통용되는 장르적 용어가 되었다. 해외 팬들에게 우리말은 단순히 공부해야 할 ‘외국어’를 넘어, 자신의 팬심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로 자리 잡았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우리말 속에 무분별하게 섞여 들어오는 외국어와 외래어는 국어 오염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양상은 정반대다. 한국의 문화적 힘이 강해지면서 우리말이 외국어의 문장 구조 안으로 침투하여 그들의 언어 습관을 바꾸고 있다. 이는 언어가 단순히 소통의 도구를 넘어, 해당 국가의 국력과 문화적 매력을 상징하는 척도임을 보여준다. 이제 우리말은 수동적으로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세계와 교감하는 ‘수출품’이 되었다.
한국어는 이제 국내를 넘어 세계로 향하고 있다. 전 세계 팬들이 ‘돌민정음’을 즐기며 우리말로 소통하는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 언어 속에 담긴 고유한 정서의 힘이다. 우리말이 세계인의 언어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변화는, 한글이 가진 무한한 확장성과 미래 가치를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