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기] 긴 글이 버거운 이유, 짧은 영상에 익숙해진 뇌 - 13기 황세연
긴 글이 버거운 이유, 짧은 영상에 익숙해진 뇌
학생도 어른도 “긴 글이 버겁다”
문해력 점수, 10년 새 최대 하락
한글문화연대기자단 13기 황세연
9fd192@naver.com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5월 20일부터 23일까지 전국 유·초·중·고·특수교사 1,901명을 대상으로 실시간 ‘학생 문해력 실태 파악 및 지원 방안 마련 교원 인식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92.7%가 학생들의 문해력 하락을 체감한다고 답했다. 교사들의 96.4%는 학생들의 문해력 부족으로 인해 수업과 학급 운영에 실질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원인을 묻는 질문에는 93.7%가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답했다. 짧은 영상에 익숙해진 학생들이 정작 교실에서는 긴 글 앞에 멈춰 선다는 뜻이다.
숫자로 보면 그 배경은 더 뚜렷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최신 ‘청소년 미디어 이용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중 95.1%가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을 상시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평균 시청 시간은 200.6분에 달해, 하루 중 상당 시간을 영상 소비에 할애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중학생만 놓고 보면 하루 4시간에 육박한다는 결과도 나왔다.
문제는 청소년만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국제성인역량조사에서 한국 성인의 문해력 점수는 500점 만점에 249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60점보다 낮다. 2012년 조사에서 기록한 273점과 비교하면 10년 사이 24점이 떨어졌는데, 이는 조사 대상국 중 가장 가파른 하락 폭에 속한다. 같은 기간 짧고 간단한 문장 정도만 이해하는 최하위 수준의 성인 비율은 13%에서 31%로 두 배 넘게 늘었고, 반대로 길고 복잡한 글을 이해하는 상위 수준 비율은 8%에서 6%로 줄었다. 세대를 가리지 않고 한국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라는 뜻이다.

독서 습관의 변화도 이런 흐름과 함께 나타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5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율은 38.5%로 2년 전보다 4.5% 낮아졌고, 종합 독서량도 2.4권으로 1.5권 줄었다. 20대 종합 독서율은 75.3%로 다른 연령대보다 높은 편이지만, 같은 기간 상승 폭은 0.8%에 그쳤다. 같은 시기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는 국민 4명 중 3명이 짧은 동영상 시청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시청자의 93%는 유튜브를 통해 짧은 동영상을 이용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의 배경으로 짧은 영상에 최적화되어 가는 뇌 구조를 지목한다. 짧은 동영상(숏폼)은 기승전결 없이 가장 자극적인 장면부터 보여주고, 시청자가 기다리거나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런 영상에 반복 노출되면 뇌는 점점 더 강한 자극에만 반응하고, 느리게 전개되는 정보에는 둔감해진다. 이런 현상을 ‘팝콘 브레인’이라 부른다. 전두엽과 보상 회로 사이의 연결이 약해지면서 충동 조절은 어려워지고, 문장을 따라가며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은 저하된다.
이런 문제에 대응해 해외에서는 규제가 이미 시작됐다. 호주 정부는 2025년 11월 말부터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 아동·청소년의 누리소통망(SNS) 이용을 전면 차단하는 법안을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취임한 안민석 경기도 교육감은 ‘폰 프리 스쿨’ 정책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학교 안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해력 저하를 짧은 동영상 하나의 원인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최근 4~5년간 학교 교육과 정책의 초점이 AI 디지털 전환으로 옮겨가면서 독서와 문해력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고 진단했다. 학교 수업 중 디지털 기기 접근을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절대적인 독서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독서량 감소와 교육 방식의 변화, 디지털 기기 의존 등 여러 요인이 겹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기술국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한국 학생들의 문제 해결형 읽기 능력은 높지만,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고급 문해력 수준은 세계 최하위권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문해력이 떨어질수록 AI 시대 가짜 뉴스의 희생양이 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