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기] 프랑스의 ‘포괄적 글쓰기’를 아시나요 - 13기 강수진
프랑스의 ‘포괄적 글쓰기’를 아시나요
대학생기자단 13기 강수진
soojkang222@gmail.com
프랑스의 '포괄적 글쓰기', 한국의 성차별적 표현 논의와 닮아있어
언어와 사회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포괄적 글쓰기' 논쟁
‘포괄’의 사전적 정의는 ‘일정한 대상이나 현상 따위를 어떤 범위나 한계 안에 모두 끌어넣음’이다. 그렇다면 ‘포괄적 글쓰기’는 무엇을 뜻할까. 살펴보기에 앞서 프랑스어 문법 체계에 대해 알아둘 점이 있다. 프랑스어에는 한국어와 달리 문법적 성(性)이 존재한다. 모든 명사는 여성형과 남성형으로 나뉜다. 문법적 성은 사람의 성별과 관계없는 사물에도 부여된다. 예를 들어 ‘la table’와 ‘le bureau’는 모두 ‘책상’이라고 번역될 수 있지만, ‘table’는 여성형 명사이고 ‘bureau’는 남성형 명사다. 그러나 사람을 가리키는 직업 명사는 종사자의 성별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 여성 가수는 ‘chanteuse’, 남성 가수는 ‘chanteur’로 표현한다. 논쟁은 여기서 시작된다. 바로 직업 명사 대부분이 남성형을 기준으로 여성형이 파생되는 형태를 취한다는 점이다. 여성형 직업 명사는 남성형에 접미사를 붙이거나 그 형태를 변형해 만드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어로 ‘의장’을 의미하는 단어는 ‘président’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남성 의장만을 의미한다. 여성 의장은 ‘e’를 덧붙인 ‘présidente’로 표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성 1명과 여성 3명으로 이루어진 의장단을 지칭할 때도 ‘présidents’이라고 쓴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포함된 집단은 남성형 복수로 표기하는 것이 전통적인 프랑스어 문법 규칙이기 때문이다.
포괄적 글쓰기는 남성형 명사를 기준으로 두는 언어 체계를 바꾸고자 하는 성평등적 의미를 지닌다. 여성과 남성이 섞여 있을 시 여성의 존재를 지우지 않기 위해 가운뎃점(·)이나 괄호를 사용해 ‘président·e·s’ 또는 ‘président(e)(s)’로 표기하자는 것이 포괄적 글쓰기의 핵심 주장이다.

포괄적 글쓰기를 둘러싼 의견
프랑스어에서는 17세기까지 명사를 수식할 때 형용사에 가장 가깝게 위치한 명사에 성별 일치를 시키는 ‘인접 일치’ 규칙이 일반적으로 쓰였다. 그런데 동시대 일부 문법학자들은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남성형을 우선하는 규범을 정립했다. 포괄적 글쓰기 찬성론자들은 현재 프랑스어 문법 규칙이 이러한 성차별적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언어학적 요소가 사람들의 인식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현재 규칙이 수정돼야 한다고도 말한다. 성평등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여성의 존재를 지우지 않고, 성별 간 위계 없는 동등한 재현을 가능케 하는 표현법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포괄적 글쓰기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프랑스어 사전을 편찬하고 규범을 제시하는 기관인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가운뎃점 사용이 가독성을 해치며, 프랑스어의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이유로 포괄적 글쓰기에 반대한다.
2023년 프랑스 상원에서 심의된 ‘법률·행정 문서에서 포괄적 글쓰기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에 찬성한 공화당 소속 의원은 포괄적 글쓰기가 오히려 포용에 반하는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가운뎃점 표기가 장애인, 문해력이 낮거나 난독증이 있는 사람들의 독해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을 포용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언어를 단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반대론자들은 포괄적 글쓰기의 대안으로 여성 명사와 남성 명사를 함께 쓰는 방안을 제시한다. ‘les président·e·s’가 아닌 ‘les présidents et les présidentes’로 표기하자는 것이다.
언어를 이념화하는 것 자체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몇몇 프랑스 언어학자들은 언어와 현실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법적 기능을 수행하는 명사의 성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언어의 변화는 성평등이라는 이념적 흐름에 따라 이루어진 게 아닌, 편의와 실용의 측면에서 실현된 것이라고 말한다.
프랑스 대학생들에게 포괄적 글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물어봤다. 사라(19)는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 수보다 많더라도 남성형에 일치해 ‘그들은’이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는 게 어릴 때부터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성은 단 한 명의 남성이 있는 순간부터 언어 속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고 지적하며, 이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를 반영한다고 덧붙였다. 키미야(19)는 포괄적 글쓰기가 더 많은 사람을 대표할 수 있는 표기법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프랑스어를 지배해 온 가부장적, 위계적 규범을 벗어난 포괄적 글쓰기는 다양한 집단이 자신의 존재가 인정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게끔 만든다고 했다. 더불어 프랑스어는 계속해서 새로운 단어와 속어가 생겨나며 빠르게 달라지고 있기에 이러한 변화 또한 자연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프랑스에서는 포괄적 글쓰기가 일상생활 속 널리 사용되는 것은 아니며, 가족 구성원 중 일부는 이러한 표기 방식이 프랑스어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포괄적 글쓰기와 비슷한 ‘여○○’ 표현
한국에는 문법적 성이란 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논쟁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데 프랑스 여성과 한국 여성이 공명할 수 있는 한 가지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프랑스의 포괄적 글쓰기 논쟁은 한국에서 ‘여○○’ 사용을 줄이자는 주장과 비슷하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여기자’, ‘여교사’, ‘여검사’ 등 직군 앞에 접두사처럼 ‘여-’를 붙여 부르는 관행은 성차별적 표현으로 여겨지고 있다. 앞선 표현은 기자, 교사, 검사는 남성의 직업이라는 것을 전제하는 차별적 인식을 내포한다. 교사의 경우 교육부의 2024년 교육통계 분석자료집에 따르면, 24년 말 기준 초등학교 여성 교사는 76.7%, 중학교 여성 교사는 72.5%, 고등학교 여성 교사는 59%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여성 교사 비율이 남성 교사 비율보다 높음에도 불구하고 ‘여교사’라는 표현엔 익숙하지만 ‘남교사’엔 익숙지 않은 아이러니가 남아 있다. 해당 표현이 문제라는 의식은 존재하나 자성의 효과는 미미하게 드러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언론과 미디어에서도 여성 종사자를 표현할 때는 여전히 ‘여-’를 붙인 단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포괄적 글쓰기의 의의는 찬반을 가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사회적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논의 자체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2025년 12월 프랑스 최고 행정법원은 포괄적 표기법이 프랑스어 규범에 어긋난다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현재 프랑스는 포괄적 글쓰기 사용을 특정 분야로 제한할지, 오히려 확대할지, 독해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어떤 대안을 마련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모색하고 있다. 언어는 시대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현실과 상호작용을 하며 변화한다. 프랑스의 포괄적 글쓰기 논쟁은 언어와 사회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어에는 문법적 성이 없지만 ‘여기자’, ‘여교사’, ‘여검사’란 표현이 어떤 사회적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면, 현재 프랑스에서 이어지고 있는 이 논의는 결코 낯선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