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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기] 윤동주 생가 비석에 새겨진 ‘중국 조선족 유명시인’ - 13기 이수빈

한글문화연대 2026. 8. 25. 16:35

윤동주 생가 비석에 새겨진 ‘중국 조선족 유명시인’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13기 
이수빈 기자 bingsu@dankook.ac.kr


윤동주 생가에서 발견한 왜곡된 시인의 정체성
법적으로 명확한 ‘대한민국 독립 유공자’ 윤동주 시인

중국 명동촌 윤동주 생가로 가는 길 바닥에는 한글로 '시인의 길'이 새겨져 있다. 사진=이수빈 기자


윤동주 생가로 들어가는 한글로 쓴 시인 길을 따라 들어가면 입구에 비석 하나가 서 있다. “중국 조선족 유명시인 윤동주 생가.” 조국의 아픔을 우리말로 노래한 시인의 이름 앞에 ‘중국’과 ‘조선족’이라는 낯선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광복 81주년을 맞아 단국대학교 학생들은 지난 7월 12일부터 18일까지 6박 7일간 단국대학교 설립자 범정 장형 선생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찾아 중국 만주 일대를 답사했다. 주요 답사지 ▶뤼순관동법원전시관 ▶윤동주생가 ▶신흥강습소터 ▶안중근의사유묵비 ▶731부대범죄전시관 등을 거치며 대련에서부터 단동, 이도백하, 용정, 연길, 통화, 창춘, 하얼빈까지 이어지는 대장정이었다. 태풍과 궂은 날씨로 백두산과 심양 일정은 무산됐지만, 대신 들른 집안의 장군총과 광개토대왕릉비 등 고구려 유적지로 답사는 무사히 마무리됐다. 

우리말로 시대를 견뎌낸 시인
여정 중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꼽히는 윤동주의 생가 방문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지역인 중국 룽징(용정)시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현재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속하지만, 그가 나고 자란 명동촌은 윤동주의 조부인 윤하현을 비롯한 유학자들이 ‘동쪽(조선)을 밝힌다’라는 뜻을 담아 우리 민족의 밝은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 중국 땅에 모이면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생가 내부에 전시된 윤동주 시인의 시를 새겨둔 비석이다. 사진=이수빈 기자

 

일제가 조선어 사용을 억압하던 시절, 윤동주는 끝까지 한글로 시를 썼다. 그의 시 ‘별 헤는 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그가 패, 경, 옥이라는 이름을 ‘이국 소녀들의 이름’이라 부른 것은, 자신이 발 딛고 선 만주 땅과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었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의 시는 조국을 단순한 국경이 아닌 우리말의 공간으로 바라본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표지석 문구는 어떻게 바뀌어 왔나

지난 7월 16일 촬영한 중국 지린성 용정시에 있는 윤동주 생가 입구 표지석이다. 사진=이수빈 기자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의 윤동주 생가는 2010년대 들어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입구에 대형 표지석이 설치됐다. 표지석에는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이라는 문구가 한글과 한자로 병기돼 있었고, 표지석 설치 연도는 2012년으로 표시돼 있다. 한국 언론과 학계에서 “윤동주가 어떻게 중국 국적이며 조선족인가”라며 꾸준히 비판했음에도 2025년 보도에 따르면 ‘조선족 애국 시인’ 표기는 고쳐지지 않은 상태였다. 지난 7월 16일에 찾았을 때는 ‘애국’에서 ‘유명’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중국 조선족’이라는 표현은 그대로 남았다.

왜곡은 오프라인 표지석에만 머물지 않았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2023년 윤동주를 조선족으로 소개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이를 두고 “윤동주를 조선족으로 주장하기 위한 기사”라고 비판했다. 같은 해 중국 당국은 윤동주 생가를 한동안 폐쇄하기도 했다. 약 3~4개월 동안 내부 수리를 사유로 폐쇄했으나 서 교수는 이 조치에 대해 “자신들의 왜곡이 더 알려질까 봐 두려워서 취한 조치”라는 견해를 밝혔다.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에 ‘윤동주’를 검색하면 국적이 중국으로 나온다. (2026년 7월 28일 캡처)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 백과사전에서도 비슷한 왜곡이 지속되고 있다. 2020년 보도에서 서 교수는 “바이두가 윤동주의 국적을 ‘중국’, 민족을 ‘조선족’으로 표기하고 있다”라고 지적했고, 2023년 11월에는 “민족 표기 ‘조선족’은 삭제됐으나 국적은 중국으로 남아 있다”라는 사실이 복수의 매체를 통해 확인됐다. 3년이 지난 지금도 바이두에는 윤동주 시인의 국적이 ‘중국’으로 나온다.

국적은 대한민국이지만 표기는 아직도
왜곡과 별개로 윤동주의 대한민국 국적은 법적으로 명확하다. 그는 1990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으며, 정부는 대한민국 독립 유공자로서 그를 공식 인정해 왔다. 본적이 북한에 있거나 외국인 독립 유공자의 경우 오랫동안 한국 국적 증명이 까다로웠으나 2022년 7월 국가보훈처가 무호적 독립 유공자 156명에게 대한민국 가족관계등록부를 부여하면서 이 문제도 해소됐다. 156명에 포함된 윤동주는 법적으로도 완전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국조선족 유명한 시인’으로 남은 윤동주 시인의 약력 소개. 사진=이수빈 기자


현지에 남은 흔적은 법적 결론과 무관하게 혼란스럽다. 윤동주 시인 기념관 내부 약력 소개 안내판에는 누군가 ‘중국’의 ‘중’ 자를 지워버려, 지금은 ‘국조선족 유명한 시인 윤동주’라는 어색한 문구만 남아 있다. 왜곡에 대한 무언의 항의인 셈이지만, 그 흔적조차 불완전하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 문제의 복잡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현장에서 마주한 당혹감, 표기는 기억의 방식
현장을 찾은 탐방 단원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박가영(24)씨는 생가 입구 비석을 마주한 순간 “윤동주 시인은 명백한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라고 알고 있어서 당황스러웠다”라며 “연변 지역에 조선족이 많이 산다는 사실을 알고 표기 방식에 대해 이해가 됐지만, 한편으로는 조선족이라는 표기가 있어 안타까웠다”라고 말했다. 안세은(21)씨도 “조국의 아픔을 문학으로 써낸 시인의 영혼이 특정 틀에 박제되는 것 같아 씁쓸했다”라고 덧붙였다.

표기는 단순한 안내 문구가 아니다. 한 인물의 역사와 정체성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윤동주가 남긴 것은 국적을 둘러싼 논란이 아니라, 끝까지 우리말로 시를 쓰며 시대를 견뎌낸 정신이었다. 광복 81주년을 맞아 그의 시와 우리말을 올바르게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이어가야 할 문화적 실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