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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기] “할머니 손맛이 영어 메뉴판에 밀려나요”… 사가정시장의 그늘

한글문화연대 2026. 10. 13. 13:50

“할머니 손맛이 영어 메뉴판에 밀려나요”… 사가정시장의 그늘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13기 정시은

jse5120@naver.com

 

사가정역 상권, 현대화·가맹점 확장에 입지 좁아지는 전통시장

대형마트 기습 입점과 외국어 도배에 설 자리 잃은 터줏대감 상인들

정겨운 우리말 상품명 사라지고 '영문 간판·알파벳 메뉴'가 도심 점령

 

 

서울특별시 중랑구 사가정역 인근. 오래전부터 지역 주민들의 따뜻한 삶터이자 정겨운 우리 말이 살아 숨 쉬던 사가정시장(면목골목시장) 일대가 거센 변화의 바람에 직면해 있다. 역세권 개발과 상권 현대화의 흐름 속에서 대형 가맹점 식당과 음료 전문점들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전통시장의 입지는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이러한 물리적 상권 침해는 도심의 ‘언어 경관’마저 크게 흔들어놓고 있다. 전통시장을 지키던 상인들의 정겨운 한글 표기와 우리말 상품명은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으며, 그 자리를 정체불명의 외국어와 영문 메뉴판이 채우고 있다. 본지 취재진이 사가정시장 일대를 찾아 현장의 목소리와 언어 환경 실태를 집중 점검했다.

낮 시간대에 시장의 문들이 닫혀있는 모습이다. 출처_정시은

 

 

대형마트와 가맹점의 습격… 좁아지는 사가정시장의 영토

사가정역 주변 골목 상권은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노지 풋고추’, ‘덤’, ‘할머니 손맛’ 등 정겨운 한글 안내문과 상인들의 인심이 묻어나는 장터 언어가 가득했던 곳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사가정역을 중심으로 화려한 영문 간판을 내건 가맹점 음료 전문점과 외식업체들이 대거 들어서면서 전통시장의 고유한 풍경이 훼손되고 있다.

 

시장 골목 진입로와 주변 대로변은 이미 가맹점 점포들의 외국어 상호와 알파벳 메뉴판이 점령했다. 한글 표기는 구석에 작게 표기되거나 아예 생략된 경우가 허다하다.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대형 매장들이 늘어나면서 정작 수십 년간 이 자리를 지켜 온 전통시장 점포들은 골목 안쪽으로 밀려나는 형국이다.

 

 

“영어 제품 찾는 젊은 손님들 앞에서 자괴감”… 터줏대감 상인의 눈물

현장에서 만난 전통시장 상인들은 대형 유통자본의 침입과 급변하는 언어·문화적 장벽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사가정시장에서 수십 년간 농산물과 찬거리를 판매해 온 한 상인은 “시장 바로 옆으로 벌써 큰 마트가 2개나 생겨서 가뜩이나 장사가 힘든데, 요즘은 손님들 다니는 길목까지 온통 알지도 못하는 영어 간판 음료 전문점이나 가맹점으로 도배가 됐어요. 젊은 사람들은 영어로 크게 적힌 제품이나 그런 매장을 훨씬 쉽고 편하게 느끼는 것 같은데, 우리 같은 노인들은 갈수록 세상에서 자리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라며 인터뷰에서 시름 깊은 속내를 털어놓았다.

 

또 다른 상인은 “물건을 더 잘 알고 잘 팔고 싶어도, 요즘은 뭐 하나 들여오면 죄다 외국어나 영어로 적혀 있어요. 손님들이 물어봐도 입이 떨어지지 않으니 쉽게 팔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됩니다. 옛날처럼 ‘노지 고추’, ‘햇양파’ 이렇게 정직한 우리말로 나누던 장터 맛이 완전히 사라졌어요.”라며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고 싶지만, 최근 급증한 외국어 포장재나 상품 표기 방식 때문에 손님들에게 설명조차 하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한글이 소외된 골목… 사라져가는 삶의 국어 자산

가맹점 매장의 세련된 영문 간판과 무인 결제기(키오스크), 외국어 표기 메뉴판이 늘어날수록, 한글에 익숙한 어르신이나 지역 주민들은 상권 이용에서 소외되는 '언어적 단절'을 겪게 된다. 정겨운 손글씨 한글 안내판과 우리말 상품명이 사라진 자리에는 차가운 상업적 외국어만 남게 되는 것이다.

사가정시장 주변의 대형마트 입점과 가맹점 확장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사가정의 터줏대감인 전통시장 상인들이 자리를 잃어감에 따라, 우리가 지켜야 할 정겨운 한글과 한국어의 숨결도 사가정 골목길에서 조금씩 꺼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