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기] 구형? 선고? 헷갈리는 법률 용어 - 13기 강수진
구형? 선고? 헷갈리는 법률 용어
대학생기자단 13기
‘구형’은 형사소송법에 없는 표현
‘신병’ 또한 일제 잔재 언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징역 5년을 구형했었다.’, ‘1심에서 벌금 1000만원과 추징금 2100만원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각각 조선일보와 한국경제 기사에 실려있는 문장이다. 해당 언론사 기사에서만 볼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정치인 사건 사고나 세간의 주목을 받은 범죄 사건의 재판 과정을 싣는 모든 언론사의 사회면에서 숱하게 볼 수 있는 내용이다. 구형, 선고, 항소, 추징금 같은 단어는 익숙하긴 하나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엔 어렵다. 이처럼 법률 관련 보도에는 어려운 표현이 많다. 이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법률 용어, 특히 검찰발 보도를 비판 없이 받아적어선 안 된다는 지적은 2000년대 초반부터 언론계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구형’과 ‘선고’의 차이는?
‘구형’은 형사소송법에 나오는 용어가 아니다. 형사소송법 제302조가 이를 다루는데, 조항 제목은 ‘증거조사 후의 검사의 의견진술’이다. 피고인 신문과 증거조사가 종료됐을 때 사실과 법률적용에 관해 검사가 ‘의견을 진술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우리가 기사에서 보는 ‘구형’은 검찰 측이 진술한 의견일 뿐, ‘판결’이 아니다. 판결을 뜻하는 용어는 ‘선고’다. 법원이 최종 형량을 내리는 과정을 선고라고 한다. 이 두 용어는 행위 주체가 다르며 효력도 다르다. 구형은 검찰이 진술하는 의견, 주장에 불과하기에 형량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요청하는 것일 뿐이다. 반면, 법원이 내리는 선고는 그 자체로 법적 구속력을 갖고, 항소·상고가 없으면 그대로 확정된다. 이 두 용어를 헷갈리는 사람이 적지 않아 보인다. 포털사이트에 ‘구형 선고’를 검색하면 ‘구형 선고 차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뜬다. 두 용어가 다른 뜻임을 모르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검찰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보도 방식이 언론의 객관성을 해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에서 쓰는 용어를 언론이 그대로 옮기는 것은 독자의 이해를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검찰 쪽 주장만 싣는 셈이기에 보도가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구형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문화방송(MBC) 박건식 피디가 「신문과방송」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구형에 해당하는 영어로는 ‘ask, demand, request’ 등이 있다. 이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요청하다’가 될 수 있다. 구형이란 표현 대신 검찰이 몇 년 형을 요청한다는 식으로 바꾸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의견이라는 사실이 더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그런데 법률 용어를 쉬운 말로 바꾸자는 주장에 반박하는 의견도 있다. 「한국방송학보」에 실린 2022년 보고서에서는 검찰의 출석 요구를 ‘소환’이라고 표현하는 관행을 두고 여러 목소리가 나온다. 방송말연구회는 ‘소환’을 ‘출석을 요구했다’, ‘출석해 조사받았다’, ‘출석 요구에 응했다’로 바꾸자고 권고했다. 형사소송법 제68조는 피고인을 소환하는 주체를 검사가 아닌 법원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200조에는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수사에 필요한 때에는 피의자의 출석을 요구하여 진술을 들을 수 있다”라고 명문화돼 있다. 수사 단계에서 검찰과 경찰이 피의자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소환’이 아닌 ‘출석 요구’라는 것이다. 다만 이에 반대하는 기자도 있다. ‘소환’이라는 표현이 법적으로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은 인정하면서도, 전달력을 위해 해당 표현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 소환’은 강한 느낌을 주어 내용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지만, ‘검찰 ◯◯◯ 불러 조사’나 ‘검찰 ◯◯◯ 조사’라고 쓰면 강조가 덜 된다는 주장이다.
일본어 대신 우리말을 사용하자

‘신병을 확보했다’에서 ‘신병’은 우리말이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우리말샘』 모두 ‘보호나 구금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몸’이라고 뜻을 밝혀 두었다. 그러나 ‘신병’은 일본에서 온 말이다. 일본어 ‘미가라(みがら)’를 한자로 적은 ‘身柄’을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어 ‘신병’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범인의 신병을 확보했다’라는 표현 자체도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다. ‘신병 확보’라는 표현만 놓고서는 범인의 위치를 파악했다는 것인지, 체포에 성공했다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몸과 몸의 주위’를 뜻하는 ‘신변’과 헷갈리기도 한다. 의미의 명확성을 흩뜨리며 혼동을 주는 단어는 바꿀 필요가 있다. 방송말연구회는 ‘신병’ 대신 ‘체포’나 ‘구속’ 같은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단어를 사용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어려운 법률 용어를 쉬운 언어로 바꾸자는 요구는 지난 20년 넘게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2026년인 현재까지도 ‘구형’, ‘소환’, ‘신병’이란 표현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언론은 시민의 알권리를 보장해야 하며, 이는 우리말로 쉽게 풀어쓸 때 그 효과가 높아진다. 따라서 언론사는 법조 출입 기자를 대상으로 순화어 지침을 만들어 권고하고, 쉬운 말로 풀어쓰는 관행이 자리 잡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문 용어가 독자의 이해에 걸림돌이 된다면 과감히 삭제하거나 수정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