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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비상사태에 마주하는 로마자 표기 - 이지은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16. 11. 29.

비상사태에 마주하는 로마자 표기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3기 이지은 기자

freeloves84@hanmail.net


“김한글양은 대학의 새로 지은 건물에서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했다. 학교에 도착한 그녀는 ‘P’의 ‘AUTO PAY STATION’ 옆의 ‘SMOKING ZONE’의 학생들에게 길을 물어보았다. 김한글양은 ‘Elevator’를 타고 ‘3F’로 올라갔다. 앗, 친구와 만나기로 한 ‘Study Room’은 ‘2F’에 있었다. ‘3F’에는 ‘Class Room’뿐이었다. 김한글양은 ‘Woman Toilet’을 잠시 들린 뒤, ‘information’을 확인하고 ‘2F’로 내려가 친구가 있는 ‘Study Room’의 문을 ‘PUSH’ 했다.”


위 글은 대학생인 김한글양이 잠시 겪게 되는 상황을 간단히 묘사한 글이다. 방문하는 장소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표기된 안내글 그대로 적어보았다.

사진 1. 일상에서 쉽게 보는 로마자 표지판.

한국어로 말하고 로마자로 쓴다

건물마다 ‘주차장’은 없어도 ‘P’는 꼭 만들어져 있다. ‘화장실’이 가고 싶은 사람들은 ‘toilet’ 혹은 ‘Restroom’을 찾는다. 아무도 ‘SMOKING ZONE’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는데 ‘흡연실’은 ‘SMOKING ZONE’이다. 여긴 미국일까? 안타깝지만 위 사진들은 모두 우리나라에서 기자가 직접 마주하고, 찍은 로마자 표기사진들이다. 지하주차장 역시 ‘IN’, ‘OUT’. ‘B1’ 등 로마자로 가득하다. ‘들어가는 곳’, ‘나가는 곳’, ‘지하 1층’ 등 우리말로 충분히 표기할 수 있었던 표지판이다. ‘Class Room’이라고 굳이 영어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한국의 어떤 대학생이 “강의시간이니까 ‘Class Room’ 가자!”라고 말할까. 외국인 학생들을 배려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한글과 로마자를 함께 표기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어디에도 ‘강의실’이라는 한글 표지판은 보이지 않는다. 층별 안내도는 칸이 모자랐는지 억지스럽게 ‘infor'와 ’mation'으로 두 줄에 걸쳐 표기했다. 예쁘지도 않고,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어단어를 떠올리며 잠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영어 사랑이 불러오는 ‘참사’
이러한 로마자 표기는 우리말보다 영어가 조금 더 멋지고 고급스러워 보인다는 생각에서 나온 결과물일 것이다. 사람들이 우리말 표지판보다 로마자 표지판을 더 예쁘다고 생각하고 정보전달력이 높은 것으로 선호한다면 일상의 로마자 표지판에 대해 조금은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전달력이 떨어지고 한눈에 알아보기 힘든 로마자 표기는 급한 상황에서 자칫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사진 3. 비상상황에 마주하는 로마자 표기.

‘Toilet'을 몰라 화장실을 찾지 못하는 상황은 아주 귀여운 것이다. 건물 계단마다 비상구 표지판은 'EXIT'이다. 지하철을 타고 주위를 둘러보자. 비상시 눈에 가장 잘 띄어야 하는 비상연락장치는 ‘SOS’라고 표기되어있다. 화재 등 비상상황에 올라가야 할 옥상은 ‘RF’로 표시되어있다. 비상사태에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과거 한자 사대주의가 이제는 영어 사대주의가 되었다. 유치원 때부터 영어유치원을 다니며 영어를 배우고 쉽게 접하는 것까지는 목적에 따라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므로, 그래 좋다. 하지만 적어도 비상상황에서 마주하는 표지판은 쉽게 알아볼 수 있고 전달력이 뛰어나야 하는 것 아닐까. 특히 사람들이 많이 오가며 이용하는 곳은 반드시 쉽게 이해하고 눈에 띄는 우리말, 한글 표기로 알려야 한다.


한글문화연대가 앞장서 제안하고 서울시가 협력하여 바꾼 서울지하철의 스크린도어를 ‘승강장 안전문’ 또는 ‘안전문’이라든지 ‘AED’ 또는 ‘자동제세동기’를 ‘자동심장충격지’로 바꾼 것은 안전을 위하여 우리말과 한글로 표기한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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