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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새소식-528] 국어소통능력시험, 세상에 없던 나무를 키우다

by 한글문화연대 2016. 8. 11.

■ 국어소통능력시험, 세상에 없던 나무를 키우다

 

“도대체 시험은 누가 만들었지?”하고 볼멘소리하던 어릴 적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런데 시험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만들어도 시원찮을 판에 다들 피하고 싫어하는 ‘시험’을 새로 만들었다.


한글문화연대에서는 2000년에 창립한 뒤로 언제나 공공언어에 대한 감시를 이어왔다. 2012년부터는 해마다 17개 행정부처의 보도자료를 3천 건 넘게 조사하여 정부의 공공언어 사용 실태를 평가해 왔다. 서울시와 경기도 지방 공무원들이 만들어내는 공문서에서 소통을 가로막는 낱말과 문장을 조사하고 평가하기도 했다. 가끔 교육에도 나선다. 한글문화연대 말고도 이런 일을 맡은 국립국어원이 있고 애쓰는 여러 단체와 학자들이 있지만, 늘 뭔가 아쉬웠다.


새로운 소식과 정책이 나올 때마다 툭툭 튀어나오는 외국어와 어려운 한자어들. 아직도 못 바꾼 것들이 많은데 소통을 해치는 새로운 말은 계속 쏟아진다. 마련되는 교육은 대개 일회성이고 짜인 시간에 쫓기기 일쑤다. 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시간 채우기에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한마디로 효율이 떨어진다. 게다가 쉽고 바른 우리글을 써야 함을 알지만 굳어진 관행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때가 많다는 호소를 듣기도 한다. 담당자 몇 사람 바뀐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공언어는 쉽고 분명하게 써야 한다는 생각을 널리 퍼트리고 소통성 높게 글을 쓰는 능력을 키울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공문서 인증제도? 체계적인 교육과정? 고민 끝에 우리는 ‘자격시험’이라는 방법에 다다랐다. 시험은 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실력을 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먼저 7, 9급 공무원 시험의 국어시험과 이미 알려진 국가공인 자격의 국어시험들을 검토했다. 영어나 한자에 비교해서 국어를 평가하는 시험은 몇 개 되지도 않는다, 그나마 있는 시험들은 소통이 아닌 문학이나 어학 실력 위주였다. 소통을 중심으로 국어능력을 평가하는 자격시험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몇 차례 토론회를 열어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의견을 나누며 우리는 시험의 방향을 잡아갔다. 소통성 높은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 어디 공무원뿐일까. 정책 만드는 일에 관여하는 단체들, 언론사, 소비자를 상대하는 일반 기업들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우리는 시험의 대상 범위를 넓혔다. 그렇게 국어소통능력시험의 틀을 잡아가며 표준이 될만한 문제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외국어 낱말이나 낯선 한자어를 남용하지 않고, 알기 쉬우며 분명하고 바른 말과 글로 소통하는 능력은 특히 공직과 기업체, 방송국, 언론사에서 온 국민을 두루 상대하는 사람에게 일의 효율을 높이고 신뢰를 쌓는 데에 든든한 지렛대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 이런 능력을 제대로 키워주는 곳은 없다. 교과서 속 국어지식, 대학입시 대비 국어지식이 국어로 소통하는 능력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국어소통능력시험이 그런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디딤돌이 되길 기대한다.


우리는 이 시험의 평가 방향을 ‘쉬운 말 사용’, ‘정확한 의사소통’, ‘배려의 말 문화’로 정하였다. 정확한 의사소통은 쉬운 말의 필요조건이며, 쉬운 말은 배려의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커다란 평가 방향에 따라 5개 영역(대화, 어휘, 읽기, 쓰기, 국어문화와 어문규범)으로 구분하여 18개의 평가 요소를 짜고 이를 62개 세부 요소로 나누어 전체 평가 체계를 세웠다. 시험에서 받은 점수에 따라 응시자에게는 1급에서 5급까지의 국어소통능력 자격을 준다. 이 시험은 2014년에 국어문화원으로 지정된 한글문화연대에서 “국민의 국어능력 향상과 창조적인 언어생활의 정착을 위하여 국어능력을 검정할 수 있다”고 정한 <국어기본법> 23조에 뿌리 두고 꾸린다.

 

국어소통능력시험은 중고교 내신 국어시험이나 수능 국어시험, 7급과 9급 공무원 채용 국어시험, 그 밖의 민간 국어자격시험과 비교해 뚜렷이 구별된다. 그 특징을 꼽아보자. 첫째, 사회생활에 필요한 대화 예절과 소통력을 중요하게 평가하는 시험이다. 문학이나 어학 지식 위주의 실력을 추구하는 기존의 국어시험과 달리 사회생활에서 갖추어야 할 소통능력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 둘째, 실제 사회생활의 사례로 평가한다. 언론, 기업, 공공 단체 등 실제 업무 현장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다룬다. 그래서 시험을 준비하고 치르면서 익힌 국어소통능력은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사회생활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다. 셋째, 쓰기 능력을 중시하여 평가한다. 전체 평가에서 ‘쓰기’ 영역은 35%를 차지한다. 또한, 객관식 평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서술형을 비롯한 주관식 문항을 전체 점수의 30%가량 출제한다.

 

드디어 작년 한글날에 첫 시험을 열었다. 서울의 한 중학교를 빌리고 47명의 응시자를 맞아 치렀다. 응시자들은 진지했고 온통 시험에 집중하였다. 시험이 끝난 뒤 나온 응시자의 반응은 좋았다. 평소 썼던 말과 글에 대해 다시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단다. 현직 교사인 한 응시자는 제한된 시간에 80개의 문항을 풀기가 제법 어려웠지만, 다른 시험에서는 볼 수 없던 문제들이 있어 새로웠고, 국어능력과 소통이라는 열쇳말이 잘 느껴지는 시험이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지난 6월에 2회 시험을 열었다. 부산, 충남 등 서울 외 지역 시험장 5곳을 준비했다. 기대만큼 많은 응시자를 모으지는 못했지만, 무사히 두 번의 시험을 치러냈다. 교재도 만들어냈다. 국어소통능력시험이 이제 자격시험으로서 그야말로 ‘시험’을 통과한 것 같다.


아직 민간자격 시험이다. 국가공인자격 시험으로 키워야 하는 게 다음 목표다. 그만큼 시험장도 더 많이 열어야 하고, 응시자와 자격자도 더 많이 나오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널리 알려야 한다. 자금이 있어야 광고도 내고 홍보도 한다. 이것이 우리 앞에 놓인 큰 산이다. 산을 옮기거나 지치지 않고 그 산을 넘어갈 힘이 필요하다.


지금은,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모르는 나무의 씨앗을 받아서 땅에 심고 물을 주고 영양분도 주고 햇볕을 잘 쬐도록 돌보니 흙을 뚫고 올라온 새싹 두 개를 맞이한 상황 같다. 가지가 뻗고 잎이 나고 열매를 맺는 나무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상상해 본다. 그 나무가 숲을 이루는 장면도 떠올려본다. 이제 두 걸음 내디딘 국어소통능력시험, 쉽고 분명하게 소통하며 배려하는 말 문화를 널리 퍼트리고 소통능력을 보장하는 대표 시험으로 자리 매기기를 소망한다.

 

* 2016년 8월 한글학회 [한글새소식 528]에 실린 김명진 한글문화연대 운영위원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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