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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아, 그 말이 그렇구나(성기지)

‘빠르다’와 ‘이르다’

by 한글문화연대 2016. 10. 6.

[아, 그 말이 그렇구나-154] 성기지 운영위원

 

우리가 잘 아는 말이면서도 때로 그 뜻을 잘못 이해하고 엉뚱하게 쓰고 있는 말들이 가끔 있다. ‘빠르다’라는 말도 그러한 말들 가운데 하나다. 예를 들어, “북한산 단풍이 예년보다 빨리 물들었다.”라는 말은 별로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대학에 가장 빨리 원서를 냈다.”는 말도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들린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말들은 모두 ‘빠르다’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들을 바루면 “북한산 단풍이 예년보다 일찍 물들었다.”, “그 대학에 가장 일찍 원서를 냈다.”가 된다.


‘빠르다’를 잘못 사용하는 사례는 일상생활에서 거의 보편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아이에게 너무 빨리 영어교육을 시키는 게 아닐까?” 하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우리 아이에게 너무 일찍(또는 ‘너무 이르게’) 영어교육을 시키는 게 아닐까?”로 말해야 올바른 표현이다. “약속 장소에 1시간이나 빨리 나와서 기다렸다.”는 말도 “약속 장소에 1시간이나 일찍 나와서 기다렸다.”로 고쳐 써야 한다.


‘빠르다’는 말은 “어떤 동작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다.”는 뜻으로, ‘속도’와 관계가 있는 말이다. “나이가 드니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라든가, “걸음이 빠르다.”, “말이 빠르다.”, “손놀림이 빠르다.” 들처럼 쓴다. 이와는 달리, “계획한 때보다 앞서”라는 뜻으로 쓰는 말은 ‘일찍’, 또는 ‘이르다’라는 말이다. 이때에는 속도가 아니라 ‘시기’, ‘때’와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는 여느 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올해는 예년보다 김장 담그기가 이른 감이 있다.” 들처럼 쓴다. 이와 같이, 어떤 때나 시기보다 앞서거나 앞서 행하는 것은 ‘빠르다’가 아니라 ‘이르다’, ‘일찍’ 등으로 표현하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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