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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 나라 좋은 나라(김영명)

소녀상이 불편하다고?

by 한글문화연대 2017. 2. 8.

[우리 나라 좋은 나라-66] 김영명 공동대표

 

2016년 12월 28일 제이티비씨(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끝나지 않을 이야기..."나는 살아 있다" 화면

김명인이라는 문학 평론가가 위안부 피해자 소녀상들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었다. 어느 매체에 기고한 글을 통해서인데(슬로우 뉴스, 2017.1.23.), 나는 이 글을 읽지 않고 바로 댓글로 직행하였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댓글들이 더 재미있기도 하고 댓글들을 읽으면 그 내용도 대체로 파악할 수 있다. 또 나는 원래 평론가라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자기는 안 만들면서 누가 만들어놓으면 그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아는 척만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평론가라는 사람들이 쓴 글을 보면 당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하긴 나도 정치는 안 하면서 정치 평론에 해당하는 글들을 쓰니 평론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평론가로 자처한 적이 없고 남도 나를 그렇게 생각한 적도 없을 것이다. 직업 평론‘가’와 학자 평론‘자’의 차이라고나 할까?


댓글들을 보니 99% 이상이 소녀상이 불편하다는 그 글이 불편하다는 것이고 또 그 99%가 당최 무슨 글을 이렇게 알아먹지 못하게 써놓았느냐는 것이었다. 댓글들과 본문 사이 중간 제목들을 종합한 결과 그가 소녀상에 불편함을 느낀 까닭은 그것이 편협한 민족주의와 소녀를 신성시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남근주의’ 때문이란다. (하하, 난 여기서 요새 아이들 말로 ‘빵 터졌다’―정말로 빵 터져서 웃지는 않았다. 그만큼 웃기는 말이라는 얘기다.)  

소녀상을 세운 까닭은 일본인들이 과거의 죄를 반성하지 않고 망발을 계속하니 위안부 문제를 잊지 말고 문제를 계속 제기하자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그것이 편협한 민족주의이고 남자 성기를 숭배하는 남근주의인가? 많은 댓글들이 이런 게 먹물들의 한계라고 질타하는데, 같은 먹물로서 참으로 송구할 뿐이다. 가장 기억하는 댓글은 정확한 인용은 아니지만 ‘그럼 소년상을 세우리?’였다.


소녀상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자유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런 불편함을 느낄까? 우선 정부 인사들일 것이다. 아니 10억 엔이나 받아왔는데, 강남 타워팰리스 한 채보다 더 많은 돈인데 뭐가 부족해서 저 난리들일까? 아, 할머니들 빨리 안 돌아가시나, 세월이 왜 이렇게 더디게 가지? 골 아파 죽겠네. 또 반일이니 과거 청산이니 하는 말들이 당최 불편한 사람들일 것이다. 이렇게 경제성장하여 잘 살고 있는데 왜 과거를 자꾸 들추어서 분란을 일으키는가? 하여간 못 배운 것들 하고 좌빨들은 어쩔 수가 없어. 외국 즉 서양 선진국 물 많이 먹고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싶으나 겉으로는 절대 아닌 척하는 많은 먹물들도 소녀상이 불편할 것이다. 지금은 세계 공동체 시대이고 남근주의는 절대 안 되는데, 솔직히 위안부 문제도 다른 면이 많은데, 왜 자꾸 일본을 자극하는 일을 하지? 좀 멋있고 냉정하게 영어 섞어가면서 살 수 없나? 김명인 평론가 같은 이들은 어디에 속할까?


교묘한 논리로 독립 운동의 김을 빼는 인간들이 구한말부터 일제 시대에도 수없이 많았다. 윤치호, 이광수 등등. 이들이 걸을 궁극적인 길은 어디였을까? 굳이 친일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것이 하필이면 일본이었을 뿐이지 친미, 친러, 친중 어느 것이든 될 수 있었다. 약자를 멸시하거나 시혜를 베풀거나 그 둘을 동시에 하면서 강자를 따르는 안팎의 사대주의가 현학적이고 교묘한 먹물들의 근본 노선이다.


소녀의 아픔을 잊지 말자고 문제 제기하는 것에 민족주의, 남근주의가 왜 들어가는가? 말이 난 김에, 민족주의는 또 왜 나쁜가? 민족주의는 한 민족의 독립, 자주, 정체성 확립을 위해 필수적인 이념이다. 그것이 지나치면 물론 민족들 간의 분쟁이 일어나지만, 그 자체도 엄연한 현실이다. 민족들 간의 타협으로 분쟁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뿐이다. 지금 국군의 전시작전권도 못 가지고 강대국에 휘둘리는 대한민국이 과연 주체적인 자주 국가인가? 주체적인 자주 국가로 가도록 힘을 주는 것이 민족주의이다.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이념이다.     

  
마지막으로 문학 평론 얘기를 다시 하고 끝내자. 나는 문화 평론, 그 중에서도 특히 문학 평론을 보면 ‘내용 없는 것을 알아 듣지 못하게 쓴 글’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김명인 씨의 그 글도 무슨 소리인지 이리저리 돌리면서 논점이 명확하지 않다고 누리꾼들의 질타를 받았다. 글 좀 똑 바로 쓰자. 생각이 명확하지 않으니까 주저리주저리 이리저리 돌리고 유명인사 들먹이고 어려운 개념 남발하고 불필요한 수사로 가득 채우게 된다. 이를 테면, ‘나는 아침에 밥을 먹었다’ 하면 될 것을, ‘지구의 여명이 올 때 아인슈타인이 발명한 전구의 스위치를 켜고 찰스 다윈이 제기한 남근 숭배의 이항대립에 처해 있는 나와 혼인 신고를 한 아프리카 루시의 후예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인도 드라비다 지방에서 수입된 바슈누 신의 곡물에 에이치투오가 더해 가열된 어릴 적 추억이 모락거리는 섭씨 40도의 하얀 물체를 입에 넣었다.’라고 쓰는 식이다. 쓰고 보니 너무 쉽게 썼네. 난 역시 평론가가 못 되나 보다. (안 그런 평론가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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