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도 한글 표기를 사용할 뻔했다고?-위안스카이와 류사오치
 - 한국어와 한글을 사랑한 외국인 특집 ④

 

한글문화연대 대학생기자단 4기 김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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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소수 민족인 찌아찌아족이 2009년 한글을 자신들의 공식문자로 채택했다. 그들의 언어인 찌아찌아어를 기록할 문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식문자로서 한글 도입을 찌아찌아족보다 더 먼저 시도했던 나라가 있다. 바로 우리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라, 중국이다. 중국은 19세기 후반 위안스카이(袁世凯, 1859~1916)와 1950년대 류사오치(劉少奇, 1898~1969)에 의해 두 차례나 한글의 도입을 시도했었다.

 

위안스카이의 초상화. 출처: 『중국역대인물 초상화』

 

먼저 위안스카이는 조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1882년에 임오군란이 발생하자 조선에 파견되었고, 1894년 청일전쟁이 끝날 때까지 12년간 조선에 머무르며 3명의 조선 여인을 첩으로 삼기도 했다. 이렇게 조선의 영향을 많이 받은 위안스카이는 중국으로 돌아가 중화민국의 초대 총통이 된다.
 
그 시기 중국에서는 어렵고 수가 너무 많은 한자로 인해 초래된 국민들의 높은 문맹률이 사회적인 문제로 오르고 있었다. 조선에서 이미 한글을 접했던 위안스카이는 이에 대한 해답으로 한글의 도입을 주장한다. 그는 한글이 문맹률을 줄일 수 있는, 중국 국민들이 한자보다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조선에서 이미 위안스카이와 안면이 있던 한글 학자 헐버트도 그가 실권자로 있는 청나라 정부에 한글 도입을 촉구하기도 하면서 중국의 한글 도입은 실현되는 듯했다.

 

 하지만 청나라 신하들은 “망한 나라의 글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亡國之音, 何謂國字)”는 주장을 하며 한글 도입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이와 더불어, 위안스카이가 중국의 근대화보다도 개인의 권력 유지에 더 신경을 쓰면서 결국 청나라의 한글 도입은 물거품이 되었다.

 

류사오치 초상화. 출처: 네이버

그로부터 몇십 년 후인 1950년대에 중국은 다시 한 번 한글 도입을 검토하게 된다. 당시에도 역시 복잡한 한자로 인해 높은 문맹률이 문제가 되자 그들은 문자개혁운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를 이끌던 인물 중 하나였던 류사오치가 한글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사후 공개된 그의 편지에서 잘 드러난다.

 

아직 중국 문자개혁에 대해 어떤 결정도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웃 몽골, 조선, 베트남은 이미 문자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했습니다. 관점에 따라서 그들의 어문개혁은 우리보다 앞섰다고 볼 수 있겠는데 그들은 우리의 한자를 들여가 사용했으나, 그중 조선의 한글은 이미 오랫동안 쓰여 오기도 했습니다. 조선대사 이국원은 (한자 대신) 한글만 사용해도 전혀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점을 우리가 유의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의 어문연구자들이 조선의 문자개혁 경험을 고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목적을 위하여 우리는 학생들이나 학자들을 이들 나라에 보내 배우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문자개혁을 위한 계획을 마련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 편지에서처럼 류사오치는 1950년대에 북한을 방문하기도 하면서 한글 도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당시 6·25 전쟁으로 전후의, 국력이 약한 나라의 문자를 도입하는 일이 현실화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이 역시 무산되고 만다.

 

위안스카이와 류사오치, 두 차례에 걸쳐 추진되었던 중국의 한글 도입 시도는 결국 같은 이유로 실패하였다. 그 이유는 한글이라는 문자가 문자로서 그들에게 대안이 되지 못해서가 아닌, 한글의 나라인 한국의 국력이 약해서였다. 이는 “언어의 힘은 그 나라의 국력에서 나온다.”라는 말처럼, 문자의 힘 역시 그 나라의 국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 그럼에도,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위안스카이와 류사오치가 한글 도입에 관심을 두고 있을 때, 우리나라의 국력이 강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 중국에서 한글을 사용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앞서 언급했던 대로 찌아찌아족은 2009년 한글을 도입했다. 위안스카이와 류사오치가 한글을 도입하려 했던 당시의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2009년의 우리나라는 훨씬 더 강한 나라로 성장했다. 글쓴이는 어쩌면 ‘이 국력의 차이로 인해 중국은 한글을 도입하는데 실패했고,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계속해서 복잡하고 어려운 문자인 한자로 인해 고민하는 중국이, 이제는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의 문자인 한글을 언젠가는 다시 한 번 대안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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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