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사랑한 미국인, 원두우–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 한국어와 한글을 사랑한 외국인 특집 ③

 

한글문화연대 대학생기자단 4기 이한슬 기자

lhs2735@naver.com

 

‘언더우드’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학생이라면 아마 대부분 연세대학교의 국제학부를 선발할 때 불리는 언더우드 전형을 가장 많이 떠올릴 듯하다. 항상 전형 이름으로만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언더우드’는 사실 우리나라에 최초의 4년제 대학인 연희전문학교를 세워 우리나라의 교육에 이바지했다. 그렇다면 한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외국인 ‘언더우드’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는 19세기 말 조선으로 기독교를 알리러 온 선교사였다. 조선은 언더우드가 오기 이전인 1801년부터 신유박해를 자행하는 등 선교를 금지했다. 그에 맞서 선교사들은 일반 백성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양반들이 멸시해왔던 한글을 선교의 수단으로 삼았다.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1859-1916)

 

한글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우친 언더우드

이러한 과정에서 조선에 들어온 언더우드는 한글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깨우쳤다. 그는 선교활동에 한글을 공식 문자로 사용하기로 하고 성경, 찬송가, 전도문서, 신문 등 기독교 관련 서적을 모두 한글로 간행했다. 서민들이 쓰는 한글이 기독교 복음 전파에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람들과 친숙해지기 위해 한국 이름을 짓기도 했는데, ‘원두우’라고 불렸다. 한글을 통해 선교를 시작한 언더우드는 한글이 매우 우수한 문자임을 깨닫고 세계에 그 사실을 널리 알리고자 했다. 그는 이를 위해 두 가지 일을 진행하게 된다. 한국어 문법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서양의 문법 체계에서 한국어 문법을 정리하고, 한국어 단어를 알리기 위해 영한사전의 뼈대를 구축했다.

 

서양인의 체계로 작성된 최초의 한국어 문법의 분석

우선 언더우드는 한글을 언어학적으로 연구해 서구 세계에 이를 발표했다. 그는 중국과 일본에서 출판된 선교사들의 문법책과 사전을 참고하고 동료들과 어학 선생의 도움을 받아 조선에 온 지 1년도 안 돼 문법책을 거의 완성했으며, 3년여에 걸친 편찬 작업 끝에 두 권의 책을 1890년 요코하마에서 출간했다. 당시 서울에는 인쇄소가 없었기 때문에 한글 활자가 없어서 활자가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언더우드는 직접 한국어 활자의 지형을 떴고, 교열을 보고 감독했다. 
 

▲ 최초의 한영사전인 『한영자전』

▲ 서양인의 문법체계를 통해 연구된 한국어 문법서 『한어문전』

이런 산고 끝에 처음 발행한 문법책이 『한어문전』이었다. 1부와 2부로 나뉘어 총 425쪽이나 됐다. 서양인 선교사들을 위해 만들어진 문법서였기 때문에 프랑스어 문법 틀에 맞춰 한국어를 설명했다. 한국어가 처음으로 서양의 문법 체계 아래에서 연구되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된다. 이 책은 후임 선교사들에게 한글과 한국어 공부의 길잡이가 됐다.

 

한국인과 서양인의 소통을 위해 만든 최초의 영한사전

그는 이어 ‘한영자전’(영한사전)이라는 다른 책을 발행했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돼 있었는데 1부 한영부는 197쪽이었고, 2부 영한부는 97쪽이었다. 당시 사전을 출판하는 경비는 600∼700달러가 소요됐다. 대부분 선교사들은 그런 거액을 들이면서도 선교지에서 겨우 4년을 보낸 어학 실력으로 문법책과 사전을 만드는 것에 반대했다. 하지만 언더우드는 선교부가 부담해주지 않으면 모금을 해서라도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품고 그 일을 강행했다. 다행히 선교본부의 미첼(Dr. Mitchell) 총무 내외가 방문해 지원을 약속해줬다. 출판되자 동료들이 놀랐고 그 책은 그 후 25년간 애독됐다. 영한부는 1915년에야 후손들에 의해 약간 보완됐으며, 한영자전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애용하는 각종 영한사전이 만들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한글과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국을 사랑한 ‘언더우드’와 그의 후손들

그뿐만 아니라 처음 조선에 선교하러 온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이후로 언더우드 집안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함께하며 4대나 우리나라에 살면서 한국의 아름다움과 그 가치에 대해 널리 알리고자 한 것으로 유명하다. 언더우드 2세인 원한경(1890-1951)은 ​제암리 학살 사건 등 ​일본의 만행을 세계에 폭로하며 조선의 독립운동을 도왔고, 그로 인해 1941년 외국인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일제에 의해 추방당했다. 언더우드 3세인 원득한, 원재한, 원일한은 자진해 한국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언더우드 4세인 원한광은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해외에 알려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제 추방을 당하기도 했다.


“나의 겉은 미국인이지만 몸속의 피는 한국인이다.”라는 말을 남긴 것처럼 그들은 단순히 한국을 선교의 대상으로 본 것이 아닌 제2의 고향 그 이상으로 생각해온 것 같다. 단순히 언더우드 집안의 행보를 대단하다고 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과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그들처럼 알리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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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