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이름, ‘코지터치’보단 ‘거리 가득 벚꽃’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3기 서경아 기자

calum0215@gmail.com


일요일 저녁 무렵, 홍대입구역 9번 출구에서부터 뒤따라온 북적거림을 따돌리고는 길에 늘어선 화장품 매장 중 하나로 들어선다. 

 

‘마몽드 플로랄 하이드로 미스트? 워터뱅크 미네랄 미스트…?’
이름만 봐서는 어떤 성능의 화장품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저기요, 여기 두 개 미스트 기능성이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요?”
“션머(什么)? 미스트, 이거, 맞아요.”
중국 고객들을 상대하던 점원. 한국어가 서툴다.
“네…? 한국어 잘하시는 다른 분은 없나요?”
서툰 한국어를 대충 들어보니 지금 있는 점원은 전부 중국, 일본계 직원이라서 없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대충 고르고는 계산하려 하니 멤버십 할인해달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곳을 나오는 손에 남은 것이라고는, 제품을 제대로 고르지 못한 찝찝함과 할인받지 못한 가격의 영수증뿐이다.
 

얼마 전 홍대입구역에서 만났던 주부 이 씨(45세)가 겪었던 일이다. 최근 중국인과 일본인 관광객의 여파가 대학가로 넘어오면서 홍대 거리의 분위기 또한 사뭇 달라지는 추세이다. 관광특구로 지정된 명동이나 동대문의 길거리에서, 한국어를 듣거나 한글을 보기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명동관광특구협의회에 따르면 상권의 주 고객층이 중국인 관광객이다 보니 중국 동포나 중국인 아르바이트생을 더 많이 고용하는 추세이며 시급도 더 높다고 한다. 그러나 내국인에게는 이로 인한 불편한 점이 적지 않다. 실제로 명동을 찾은 한국인은 2011년 10만여 명에서 지난해 약 8만여 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명동관광특구협의회 이동희 사무국장은 “자국민이 등 돌리면 결국 외국인도 흥미를 잃는다. 실제 2, 3년간 유동인구는 20% 이상 늘었지만, 매출은 5% 성장에 그쳤다.”고 말하기도 했다.


관광객의 편의를 봐주고 이익창출을 높이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이곳에 와서 ‘한국’이 아닌 ‘외국’만을 느낀다면, 그들이 더는 이곳을 찾을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 관광객으로 붐비는 명동거리

이 씨가 홍대입구역에서 겪었던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Mamonde Floral Hydro Mist. Water Bank Mineral Mist.’

 

그녀가 점원에게 도움을 요청한 이유는 이 알 수 없는 긴 이름들 때문이었다. 제품의 앞면엔 한글이 아닌 영어로만 적혀있거나 크게 명시된 영문 이름 밑에 한글명이 아주 작게 표기되어있어, 한글 이름을 찾아보지 않고서는 영어가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겐 쉽게 읽히지 않는다. 또한, 영문 이름을 우리말로 바꿔 표기하지 않고 영어발음 그대로 한글로 바꿔서 표기해 놓는 경우가 많아 그 뜻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혹시 이 브랜드가 외국 계열의 회사인 건 아닐까? 물론 아니다. 현재 화장품업계에서 국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국내기업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 중 하나이다. 명동거리를 따라 늘어선 화장품 판매점들 또한 국내 기업이 대다수이지만, 어느 곳을 들어가도 우리말 이름의 화장품을 찾기란 쉽지 않다.

 

“고급스러운 이미지? 그런 것 때문이 아닐까요. 아무래도 우리말 이름이면 귀여워 보이거나 약간 옛 전통적인 느낌이 강할 것 같아요.” 명동 거리에서 친구들과 화장품을 구경하던 21살 여대생 윤 씨는, 화장품의 이름이 어려워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외국어가 주는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있으므로 어쩔 수 없게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 아리따움 모노아이즈 색상표

▲ 에뛰드 하우스 룩앳마이아이즈 색상표

위의 사진 2개는 눈에 바르는 색조 화장품인 아이섀도의 색깔을 표현한 것인데, 모두 한글로 표기되어있다. 첫째 자료사진에선 아이섀도의 색상 이름이 전부 외래어로 지어져 있고 둘째 사진의 아이섀도는 우리말 이름이 곳곳에 눈에 띈다.

 

‘코지터치’와 ‘거리 가득 벚꽃’

 

두 개의 이름을 들었을 때 어떤 색상이 더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지는가? 아마 뒤엣것일 것이다. 에뛰드 하우스라는 회사에서 출시한 ‘룩앳마이아이즈’ 아이섀도는 비록 제품명은 외래어이지만, 색상 이름이 우리말로 대부분 지어져 있는데, 이는 화장품업계에서 보기 드문 사례이다.

 

‘입안 가득 꽃 향, 오후의 발견, 춤추는 찻잎, 노을 지는 봄… 등등’

 

정말 우리말 이름은 유치해 보이거나 옛것 같이 느껴져 고급스러운 느낌이 없는 걸까? 글쎄….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와 닿지 않는 낯선 외래어 이름보다 선명하게 인식되고, 시적인 분위기마저 감돈다.

 

화장품의 앞면에 영어보다 한글이 먼저 보이고, 그 한글이 뜻을 알 수 없는 외국어가 아니라 친숙하게 와 닿는 우리말이라면, 화장품을 고를 때 제품 뒷면의 깨알 같은 한글을 읽기 위해 눈을 찌푸리고 집중하지 않아도 될 텐데…. 화장품업계에 만연한 불필요한 외국어의 남용이 아쉬울 따름이다.

 

‘내 피부 속에 마르지 않는 옹달샘 촉촉 스킨’
‘눈가 주름 꼼짝 마. 눈가가 활짝, 아이젤’
‘말끔하게 하루를 지워주는 클렌징 오일’ … 등등

▲ 아이소이 ‘한글 제품군’

국내 브랜드 ‘아이소이’에서는 한글날을 기념하며 국내 최초로 전부 우리말로 제품 이름을 지은 ‘8종의 한글 제품군’을 출시하기도 했었다. 아이소이의 한 관계자는 “화장품은 꼭 외국어 이름이어야 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면, 한글만으로도 더 고급스럽고 소통이 편한 화장품을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우리말’ 이름을 ‘한글’ 이름이라고 혼동하여 잘못 표현하긴 했지만, 이러한 취지의 제품 출시는 상당히 반길만한 일이다. 확실히 제품의 성능에 대한 설명이 우리말로 이름에 들어가 있어 한눈에 잘 들어온다. 굳이 외국어가 제품의 앞면에 있지 않아도 우리말만으로도 충분히, 깨끗하고 맑으면서 고급스러운 인상을 준다.


아직은 작은 움직임일 뿐이지만 화장품업계에서도 외국어 이름 남용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으며, 조금이나마 우리말로 이름 지은 화장품을 만들기 시작하였음에 위안을 얻는다.

▲ 명동거리의 화장품 판매점들

이 씨가 겪었던 경험은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중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혹은 이미 경험했을지도 모를 이야기이다.


거리를 걷다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한글이 보이지 않을 때, 물건을 사려는데 제품 이름이 낯선 외래어일 때, 당신이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버린다면…, 한글과 우리말을 쓸 권리를 당연하게 포기한다면…. 어느 날 우리는 또 한 명의 ‘이 씨’가 되어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을 것이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글 올린 이: 한글문화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