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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한글 인 더 월드(in the world)” - 정희섭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17. 2. 24.

 

 “한글 인 더 월드(in the world)”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3기 정희섭 기자

jheesup3@naver.com

 

중국의 성인 장자(莊子)는 이런 말을 했다. 井蛙不可以語於海 (정와불가이어해)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 이야기를 해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뜻이다. ‘한글문화연대 누리집에 실릴 글에 영어와 한자라니!’ 라며 노여워하는 독자들도 있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제목에서 미리 느낄 수 있듯, 이번 기사는 ‘세계’라는 글감으로 써내려니 너그러이 이해해주시라. 그리고 기대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물론, 한자나 외국어 사용 자체를 무조건 반대할 정도의 엄청난 독자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미국에 도착하여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두 달에 접어들었다. 아시아권의 몇몇 나라들을 짧게 여행해본 것이 해외외국 경험의 전부였던 나는 이전과는 다르게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익숙하지 않은 문화와 환경, 그리고 사람들 속에서 산다는 건 내가 가지고 있었던 가치관, 사용하던 언어 등을 통째로 바꾸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모든 상황에서 영어를 써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변화다.

예를 들면 10년 묵은 체증이 단번에 내려갈 정도로 탁 트인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을 때, 이를 “와우, 뷰티풀!” 정도로만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때 문제가 생겼다. 나는 그 이상의 것을 보았지만, 그것은 그저 ‘뷰티풀’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내게 있어 모국어인 국어는, 생각을 담는 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내가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었던 감정 표현, 감각의 순간들이 우리말과 한글을 통해 비로소 가능했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왔던 순간이었다.

 

외국에 나와 보니 우리나라의 위상, 외국인들은 한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 한국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친하게 지내는 중국, 일본 학생들도 고등학생 시절 제2  국어로 배운 언어는 한국어나 동양의 언어가 아닌 스페인어나 프랑스어였다. 한국가요(K-POP)에 관심을 갖고 우리나라 가수 ‘동방신기’를 좋아하는 또 다른 내 미국인 친구는 소리 나는 대로, 로마자로 표기된 가사를 보며 힘겹게 한국 노랫말을 따라 부르곤 한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어울리며 느낀 것은 이렇다. 한글의 과학성과 창제 원리는 둘째 치고, 의외로 한글 자체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나는 한국인으로서 쉽게 발음하고 말하고 있던 우리말인 한국어도 라틴 문화권에서 자란 이들 외국인에겐 정확하게 발음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언어에 속하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출국하기 전, 한글을 세계에 알리며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귀국할 때 이곳 사람들에게 선물하려는 목적으로, 한글로 수놓은 손수건, 에코백, 티셔츠 등등을 가지고 왔다. 한국인으로서 순수하게 우리 것들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1년 남짓한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활동을 하며 나름 열심히 글감을 고르고 기사를 써내려가며 다듬어진 글이 누리집에 올라가면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 속의 한글은 그다지 매력적인 대화 소재로 환영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내가 우물 안 친구들에게만 한글을 알리는 데 만족했음을 알았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으로서의 수료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한글 전하기’에는 수료가 없을 것 같다.

 

 

더 큰 세계를 바라보며 아름답고 과학적인 우리 한글을 세상에 어떻게 알릴 수 있나 앞으로도 치열하게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기숙사 같은 층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너 물건 라운지에 놓고 갔더라. 내가 갖고 있을 테니 기숙사에 돌아오면 연락해!’ 라는 내용이었다. “목욕에는 제일”이라는 한글이 적힌 것을 보고, 그 층의 유일한 한국인인 내 물건일 것이라는 추측을 했던 것이다. 아쉽게도 내 물건은 아니었지만 한편으로 고맙기도 했다. 한글은 우리의 정체성이다. ‘목욕에는 제일’이라는 한글을 읽을 수 없었던 외국인에게도 한글은 한국인의 상징이었다. 우리의 생각을 주관하고 담아내는 틀이자 세종의 애민정신이 집약되어 담겨 있는 아름다운 결정체이기도 하다. 한국을 떠나보니 더 잘 알겠다. 한글에 담긴 깊고 다양한 의미, 우물 밖으로 가지고 나아 가야 할 때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멋진 말을 실현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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