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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말 비빔밥(이건범)55

장년, 중년과 노년 사이 - 2024.01.19. 장년. 중년과 노년 사이 한글문화연대 대표 이건범 꽤 오래전에 국어사전에서 단어 뜻을 찾아보고는 깜짝 놀란 말이 있었다. 바로 ‘장년’이다. 주로 ‘중장년’이라는 말을 많이 썼으므로, 대략의 나이 구분에서 청년 다음에 중년, 중년 다음에 장년, 장년 다음에 노년이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오매, 장년의 뜻이 중년과 차이가 없는 게 아닌가. 그래서 청장년이라는 말도 썼나 보다. 국어사전에 중년(中年)은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고 풀이되어 있다. 당시엔 50대도 노년 축에 끼었나 보다. 한자로 ‘壯年’이라고 쓰는 장년은 “사람의 일생 중에서, 한창 기운이 왕성하고 활동이 활발한 서른에서 마흔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 2024. 1. 19.
연방준비제도 대신 ‘연방준비은행’, 어떤가요? “파월 연준 의장 “금리 인상 속도, 다시 올릴 준비 돼 있다”(제목)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 의장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다시 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 (중략) 파월 총재는 7일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서 “최근 경제 데이터가 예상보다 강하게 나온 것은...(후략) 어느 신문 기사의 일부다. 기사 제목에 나오는 ‘연준’은 대부분 독자들이 알고 있는 약칭이다. 흔히 ‘연방준비제도’라고 불리는 미국 중앙은행 ‘Federal Reserve System(Fed)’를 줄인 말이다. 그런데 연방준비‘제도’에 ‘의장’이 있다니? 제목만 보면 언뜻 이해할 수 없다. 기사 본문 첫 줄에서야 여기서 말하는 의장이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의장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대목에서는 이 ‘의장.. 2023. 12. 26.
차별어 못지 않은 구조적 언어 차별 얼마 전 장애인 권리 예산의 확보를 요구하는 자리에서 지지발언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말이 꼬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같은 인간입니다.”라고 해야 할 걸 “장애인과 비정상인 모두 같은 인간입니다.”라고 한 것이다. ‘비장애인’이라고 해야할 걸 ‘비정상인’이라고 했으니, 시각장애인인 나조차 아직도 ‘장애인-비장애인’이라는 낱말짝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보다. 그럼에도 이제 제법 많은 사람에게 ‘장애인-비장애인’이라는 낱말짝이 자리를 잡아간다. 장애인 외에 장애인이 아닌 사람은 비장애인으로 일컫자는 의견이다. 그전에는 ‘장애인-정상인’이라는 낱말짝이 자주 쓰였는데, 그런 구도라면 장애인은 ‘비정상인’이냐는 문제 제기가 많았다. 세상을 장애가 없는 사람의 기준에서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는 태도가 장.. 2023. 5. 26.
'우리말 약칭 제안 모임', 나서서 줄임말을 만든다고? 올 3월 10일에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어문기자협회, 한글학회, 한글문화연대 등이 뜻을 모아 ‘우리말 약칭 제안 모임’을 꾸렸다. 국립국어원도 협의에 참여한다. 각 단체에서 추천한 연구위원들이 모여 4월 7일에 첫 회의를 열어 운영 방안을 정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를 영문 이름 약칭인 ‘오이시디(OECD)’로 쓰는 일이 많은데, 이 대신 ‘경협기구’와 같이 우리말로 줄인 이름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게 잘 먹힐 일인지, 아니면 욕 먹을 일인지 모르겠다. 무수한 줄임말 신조어 때문에 정신 사나워서 줄임말이라면 손사래치는 분이 많은데, 나서서 줄임말을 만들겠다니 말이다. 줄임말 문화를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은 그 말뜻을 바로 알아채기 어려운 상태에서 대화가 진행되다 보니 우선 소통이 어렵고 그 다음엔.. 2023. 5. 26.
입장과 주장, 입장과 처지 ‘입장(立場)’은 일본 한자어라고 해서 쓰지 말아햐 할 말 가운데 하나로 꼽혀왔다. 여러 선생님의 글이나 책에서 읽었고, 어릴 적에 일본어 공부할 때 이 단어가 나오는 걸 보면서 아, 이 말이 일본어에서 온 거구나 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물론 우리가 사용하는 현대 한자어 가운데 거의 80% 넘게는 일본 한자어일 것이다. 그런 말 가운데 우리 토박이말이 있거나 우리 한자어가 있다면 그런 말을 쓰자는 게 국어운동 쪽의 오래된 전통인데, 나도 그런 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처지’라는 말로 ‘입장’ 대신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입장’은 ‘당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뜻이 풀이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는 ‘처하여 있는 사정이나 형편’이라고 풀이된 ‘처지’로 순화하여 사용할 수 있으리라. 그.. 2023. 1. 20.
배리어프리에 블라인드 하나 몇 년 전에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사람들과 전화로 옥신각신한 적이 있다. 그 기관에서 연행사 제목이 ‘배리어프리 플레이 그라운드’였던가 그랬다. 우연히 이 광고문을 보았는데, 솔직히 나로선 무슨 뜻인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 의미를 물어본 뒤 꼭 이렇게 영어로 행사 이름을 지어야했냐고 따졌다. 실무 담당자는 자신이 정한 이름이 아닌지라 난감해하는 목소리였다. 곧 이 기관에 공문을 보내 이런 외국어 남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왜 그렇게 사용했는지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정말 어처구니없었다. 어떻게든 자기네의 용어 사용에 별 문제가 없다는 식의 변명뿐이었다. 시각장애인인 내가 작성했던 다소 격앙된 전체 질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는 2019년 10월 25~26일에 .. 2022. 10. 26.
영어상용도시 부산의 한글날 한국어 단일 언어에 익히기 쉬운 글자 한글을 사용하다 보니 편하게 사는 걸 모르고 허황된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 여러모로 억울하다는 열패감에 빠져 어떻게든 영어로 사회 발전의 길을 터보겠다는 야심을 지닌 자들이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 갈등이 더욱 증폭되는 다민족 다언어 사회와 비교해 우리의 말글살이가 얼마나 행복한 환경인지 모르고 그저 눈에 보이는 ‘경쟁력’ 논리만으로 모든 것을 재려 한다. 1990년대 말에 영어를 공용어로 정하자는 주장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더니, 이제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부산을 영어상용도시로 만들어 ‘글로벌 허브 도시’로 우뚝 세우겠다고 한다. 영어가 경쟁력이라는 발상인데, 그러면 지금까지 한국은 어떤 경쟁력으로 여기까지 왔단 말일까? ‘상용’이란 ‘일.. 2022. 10. 13.
부산 영어 상용의 운명은? ‘상용’이란 일상적으로 사용한다는 뜻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부산을 영어상용도시로 만들겠다고 하니, 부산 시민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상적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상태가 된다는 이야기다. 2030년 세계박람회를 유치해 그때 부산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에 전혀 불편함이 없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목표인 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영어교육 강화다. 그런데 지금까지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지 않았던 것도 아니므로 영어교육을 아무리 강화한다고 해도 그리 큰 효과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학생들은 영어만 공부해도 되는 형편이 아니고, 어른들은 공부 좋아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 다른 지자체에서 영어마을 여기저기 만들었다가 모두 실패했으니, 영어마을 몇 개 지어봤자 .. 2022. 8. 31.
난민과 탈북민, 두 개의 나라 2018년 예멘 난민을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냐로 논란이 벌어졌었다. 정치적, 사회적 위험 때문에 탈출한 사람들을 나 몰라라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수용해야 한다고 선뜻 말할 자신도 없다. 탈북 어민을 북으로 돌려보낸 일을 놓고 시끄러워진 다음에야 나는 일반적인 난민과 북에서 탈출한 난민, 즉 탈북민이 뭔가 다르다는 걸 눈치챘다. 법적으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이 아주 극소수라고 들었는데, 탈북민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북쪽으로 전단 날리는 일을 정부에서 막자 어떤 탈북민이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비난했던 것도 기억난다. 다른 나라에서 온 난민에 비해 탈북민은 수월하게 한국 ‘국민’이 되는 모양이다. 일반 난민과 탈북민을 왜 이렇게 차별적으로 받아들이느냐? 오늘의 주제는 이게 아니다. .. 2022.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