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방/대학생기자단

기자단, 한글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 김채원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17. 6. 12.

기자단, 한글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4기 김채원 기자
chaewon11@naver.com
 

▲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4기의 모습

지난달 20일,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4기는 ‘한글 가온길’을 다녀왔다. 4기의 첫 견학이자, ‘한글 가온길’ 견학이기에 어떤 활동으로 한글을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다들 모였다. 한글 가온길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던 경복궁을 중심으로 광화문 주변인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위치해 있다. 한글을 지키고 널리 알리고자 애쓴 사람들의 이야기와 작품들이 가득한 곳이다. 가온은 ‘가운데’를 뜻하는 순우리말로, 한글 가온길이란 한글을 지키고자 했던 역사의 중심지로 2013년에 서울시에서 지정하였다. 한글을 지키고 알리려는 업적을 기리기 위해 상징조형물 등을 조성하여 가온길의 의미를 더했다. 이날 견학을 위해, 세종학을 연구하시는 김슬옹 교수가 안내해 주셨다. 김슬옹 교수는 고은 시인의 시를 읊어주며 견학의 시작을 알렸다.

 

처음으로 들른 곳은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앞이었다. 토요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이 동상 앞에 모여 있었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세종의 4대 발명품을 볼 수 있었는데, 혼천의, 측우기, 앙부일구, 그리고 또 하나가 있다. 무엇일까?

 

먼저, 측우기와 앙부일구의 사용법을 자세히 들었다. 측우기는 비가 온 양을 측정하는 기구이고, 앙부일구는 하늘을 우러러보는 가마솥 같다는 말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쉽게 말해 해시계이다. 현재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앙부일구는 과학적 원리가 고려되어 있지 않은 채 관람의 용도로 진열되어 있다고 한다. 실제로는 애민정신이 더 깃들어 있는 발명품이란다. 삼단의 계단을 그 앞에 설치하여 어린아이들까지 볼 수 있게 했으며, 궁궐에만 설치하지 않고 종로에 한 개 또 다른 곳에 한 개 설치해 백성들이 두루 보게끔 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발명품은 볼 애민정신의 상징인 훈민정음이다. 기자단은 한글의 창시자 세종대왕 동상 앞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새겨둔 넓은 돌 앞에서 ‘아리아리’ 구호를 외치며 본격적인 견학에 나섰다.

▲ 한글 가온길의 약도

 

광화문 광장에서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건너가면 글자마당이 있다. 이 공원의 의자와 바닥에는 한글이 새겨져 있다. 투박하고 거친 모습이지만, 한글 자모를 결합하여 만들 수 있는 모든 글자인 11,172자다. 실제 글자로 쓰이지 않지만 만들 수 있는 글자들을 읽어보는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옆에, 가온길의 숨어있는 주인공, 한글 디자인이 나온다. ‘그대를 기다림’이라는 작품은 세종문화회관 오른쪽 벽면 아래 녹슬어 있다. 녹이 슨 이유는 무엇일까? 기다리는 애타는 마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디자인으로 한글에 담긴 정서까지 전달하는 것이다. 한글 기호를 재해석한 작품도 있다. 일명 ‘생각 채우기'. 단순한 괄호가 아닌, 생각을 채우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느껴졌다.

▲ 생각채우기

 

공원 옆쪽에는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이 있다. 조선어학회 한글 수호 투쟁기를 엿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속에서도 한글을 지키고자 노력하신 분들과, 한글의 얼개를 다지신 분들까지 여러 사람의 한글 사랑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한글 탑의 뒤로 돌아가면, 철로 된 나무가 나온다. ‘평화와 화해의 나무’라고 불리는 이 조형물은, 단순히 철로 된 조형물이 아닌, 글자로 잎을 표현한 나무다. 본격적인 한글 디자인 작품의 시작이다. 이곳은 원래 사역원이 있던 터였다고 한다. 사역원이란 고려와 조선 때 외국어의 통역과 번역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서이다. 외국의 문물을 가장 먼저 접하고 외국과 소통하던 사역원의 터라는 의미를 담아 한글과 전 세계 문자로 '평화'와 ‘화해’를 만들어 나무의 무성한 잎을 표현했다.


▲ 한글 가온길에 위치한사역원 터에 있는 평화와 화해의 나무

 

▲ 사역원 터였음을 알리는 표지석

 

바로 뒤에 가온길의 핵심, 주시경공원(도렴공원)이 있다. 작지만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한글 발전에 기여한 헐버트와 주시경 선생이 동상으로 서 있다. 먼저 헐버트는 외국에 최초로 한글의 우수성을 알린 사람이다. 고종 때 학당의 교사로 있던 헐버트는 한글의 우수함에 감탄했다고 한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1891년 최초 한글전용교과서인 『사민필지』를 편찬했다. 이는 인문지리 교과서이자 한글전용 교과서이다. 최초로 한글 교과서가 생겼다는 점은 기록되고, 전해져야 할 사건이지만, 당시 조선의 한글 격하 실태를 너무나 잘 보여 준다.  1443년에 한글이 만들어진 후 400년이 지났지만 한국인이 만든 교과서는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보면 당시의 한글의 격하된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당시 권위있던 실학자들도 한자를 썼지 훈민정음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이 말한 실학의 내용이 결국 백성이 아닌, 본인들끼리 의견을 나눈 것에 그쳐 학자끼리의 실학이었다는 것에서도 당시의 실태를 체감할 수 있다.


▲ 『사민필지』를 든 헐버트 동상

▲ 책 보따리를 든 주시경 선생의 동상


헐버트 동상의 뒤편에는 주시경 선생의 동상이 있다. 주시경 선생은 일생을 한글 연구에 이바지하신 분이다. 그곳을 주시경 마당이라고도 하는데 그의 업적이 간단히 쓰여 있다. 한글을 과학적, 체계적으로 연구했으며, 1896년 공식 문자 선언활동을 했다. 또한 1907년 현재 한글학회의 뿌리인 국어연구회를 창설했다. 주시경 선생은 조선어학회에서 최현배, 김두봉이라는 두 명의 큰 제자를 길러냈다. 외솔 최현배 선생은 남한에서 한글연구에 힘썼으며, 김두봉 선생은 월북해 북한에서 한글을 다듬고 전파했다. 그래서 현재 북한 문법이 주시경의 문법과 유사하다고 한다.

▲ 가~하로 꾸며진 조형물

주시경공원을 벗어나면, 길 곳곳에서 다양한 한글 디자인을 볼 수 있다. 가로등에 설치된 한글 조형물로 '가'부터 '하'까지의 글자들을 정사각형 모양으로 정리한 것으로 앞면은 단어, 뒷말은 문장으로 된 말을 찾는 재미를 준다. 다른 가로등에 설치된 팻말의 ‘ㅈㅅㄱ’은 주시경의 초성에서 땄다. 길목에도 여러 디자인이 있다. 단순한 손으로 보이는 그림 안에, ‘한글을 찾았다.’라는 글씨가 숨어 있다. 이후 골목길의 끝에서, 가온길의 정점 ‘나는 한글이다’ 조형물을 볼 수 있다. 한글학회 건물 옆 벽면에 입체로 설치된 ‘나는 한글이다’는 한글의 조형미를 잘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한글 가온길에 위치한 ‘나는 한글이다.’


설치품 관람을 끝으로,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4기의 견학도 끝이 났다. 이번 시간은 한글의 진면목을 직접 느낀 시간이었다. 한글 창제이념인 애민정신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었고, 한글을 격하했던 부끄러운 과거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한글의 우수함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이를 예술로 응용하면서 역사를 이어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한글 가온길 견학. 한글의 시작과 끝을 피부로 경험했다. 한글문화연대가 필요한 이유, 기자단으로서 가져도 될 자부심, 국민으로서 느끼는 보람. 한글 가온길 한 바퀴에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