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 학종 대세 속 비교과 중요해져 학생이 주도해 꾸리는 자율동아리 주목 관심·희망전공 등 비슷한 친구들 모아 연간계획안, 예산집행 등 큰 틀 잡고 활동내용 만들어 홍보까지 하는 과정 학생부 적으려면 일지 아카이빙 필수
대입 수시 모집 비중이 커지면서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이 대세다. 교내 수상 실적 몰아주기 등 아이들 줄 세우기의 또 다른 버전이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현재로서는 고교 입학과 동시에 학종 준비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학종은 교과 성적 못지않게 비교과 활동도 중요하다. 특히 교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동아리 활동은 학교생활의 활력소가 될 뿐 아니라 학생들의 진로·진학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고교 동아리에는 정규 동아리와 자율동아리가 있다. 정규 동아리는 교과 과정 안에 평균 매주 2시간 정도 배정돼 있다. 본인 적성과 진로에 맞춰 정규 동아리에 가입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정원이 초과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동아리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이때 관심 분야가 비슷한 학생들이 힘을 합쳐 만들 수 있는 게 자율동아리다. 자율동아리는 동아리 이름부터 부원 구성, 활동 커리큘럼, 운영 방안까지 모두 학생의 의사를 반영해 꾸려갈 수 있다. 정규 동아리와는 다르게, 자신의 흥미에 따라 2~3개 정도 활동이 가능해서 ‘학종 시대’에 학생들이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영주여자고등학교 백상숙 교사는 “고교 입학 뒤 3~4월이면 동아리에 가입한다. 역사가 오래된 방송반 등 정규 동아리 활동도 의미 있지만, 자신의 흥미와 희망전공에 따라 자율동아리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주제 선정·예산 집행…주도성 길러져
자율동아리 활동은 보통 활동 주제 선정, 동아리 부원 모집, 지도교사 섭외, 연간·분기별 활동계획서 작성, 활동 일지 아카이빙 등 5단계로 이루어진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동아리 활동 주제를 선정하는 것이다. 우신고등학교 2학년 이현성군은 지난해 3월 실험 동아리 ‘플라이’를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정규 동아리에 가입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실험을 유연하게 계획할 수 있는 자율동아리 활동에 끌렸다.
주제 선정 뒤 부원 모집에 나섰다. 고교에 갓 입학한 뒤라 친구들끼리 어색함도 있었지만, 한 달 동안 교실에서 수업을 들으며 과학에 관심 있는 친구들을 적극적으로 모집했다. 실험 진행 때 조언해줄 지도교사도 섭외했다. 15명의 친구가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모여 동아리 연간 계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군은 “1년 동안 할 실험들, 동아리 이름과 인원수, 활동계획서 등을 꼼꼼하게 작성했다. 나는 항공 분야에 관심이 있었고, 다른 부원들은 기계나 화학에도 흥미를 보여 이를 아우를 수 있는 과학 동아리 활동을 설계했다”고 했다.
동아리 규모가 커지자 운영 방안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필요한 예산도 늘어났다. 부장으로서 동아리 운영을 위한 규정도 꼼꼼하게 다듬어야만 했다. 이군은 실험 재료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지역 청소년수련관에 연간 동아리 활동계획서를 제출하고 승인받았다. 이를 계기로 매달 구로청소년활동마당에 부스를 차릴 수 있게 되면서 멤버들이 머리를 맞대는 횟수가 늘어났다. 이군은 “동아리 덩치가 커지면서 크게 과학탐구분과, 직업탐구분과로 세분화하는 작업을 했다. 분과별로 각각 4개 영역을 다시 나눠, 실험 동아리 성격에 맞게 내실을 기하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했다. “브이아르(VR·가상현실) 기기를 직접 만드는 실험만 하더라도 종이 한 장, 가위 하나 사는 데 필요한 예산 책정, 부원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결론을 끌어내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좋아하는 실험을 실컷 하면서도, 60명 단위의 조직을 이끌어보는 경험도 해본 것이죠. 블로그와 페이스북 페이지 등을 운영하며 홍보의 중요성도 깨닫게 됐고 성격도 적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아무리 잘했어도 기록 없으면 안돼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해도 기록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에 동아리 활동 내용을 기재하기 위해선 일지 작성이 중요하다. 날짜와 장소, 참여 인원 등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육하원칙에 따라 실험 목적과 과정, 결과와 소감 등을 정리해 파일에 꽂아놓는 습관을 들이면 좋다. 진명여자고등학교 오욱 교사는 “자율동아리는 대부분 신고제로 운영한다. 학생이 만들면 거의 활동이 가능한데, 중요한 건 연속성이다. 야심 차게 만들어도 일지 작성 등을 하지 못하면 학생부에 기재할 수 없다”고 했다.
진로를 정하지 못해 1학년을 그냥 보낸 뒤 2학년에 올라가 급하게 자율동아리를 만들 경우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오 교사는 “국문과, 생명공학과 등 구체적인 희망전공을 정하지 못한 경우라면, 1학년 때 인문계열과 자연계열 정도의 큰 틀만 생각하고 동아리를 만들거나 가입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대학 쪽에서는 고교 때 꾸준히 활동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봅니다. 2학년 때 대입을 위해 ‘생명공학 연구회’를 급하게 만드는 것보다, 1학년 때부터 과학 실험 등의 넓은 카테고리 안에서 묵묵히 활동해온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한 동아리 집중, 10개 동아리 안 부럽다
학생부 내용을 한 줄이라도 더 채우기 위해 2~3개 활동을 맛보기 식으로 하는 것보다는 한 우물만 파는 것도 전략이다. 전문가들은 “동아리 활동 한 개만 열심히 해도 깊이 있게 수행하면 세 동아리 부럽지 않다”고 강조했다.
영주여고 2학년 김혜원양은 1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글을 써보자’는 뜻에서 소논문 동아리 ‘유엔’(UN)을 만들었다. 글쓰기라는 소박한 뜻을 갖고 만든 동아리지만, 기왕 시작했으니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내고 싶었다. 글쓰기 동아리는 어찌 보면 흔한 자율동아리인데, 유엔 부원들은 ‘어떤 글을 쓸 것인가’에 대해 매주 고민하며 글감을 찾아 나갔다. 다른 친구들이 그럴듯한 실험과 다양한 외부 활동을 할 때도 흔들리지 않고 한 우물만 팠다.
유엔은 ‘어르신들에게 생애 기록을 남겨드리자’는 목표를 정했다. 오지로 알려진 경북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 소백산자락길 마을을 찾아 본격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
김양은 “자서전이라는 게 티브이(TV)에 나오는 유명 정치인이나 큰 공을 세운 사람만 펴낼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유엔 활동의 주인공은 소백산자락길과 요양원에서 지내시는 평범한 할머니, 할아버지였다”고 했다. 김양과 유엔 부원들은 남대리 마을 어르신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인생 이야기를 <재 너머 마을>이라는 작은 책으로 펴냈다. 이 자서전은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주관한 ‘내가 쓰는 아빠 엄마 자서전’ 스토리 공모전에서 교육부장관상 등을 받았다.
외부 연계 프로그램으로 진로 구체화도
교내에서 만든 자율동아리를 교외 활동으로 확장해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인문사회 분야는 역사나 우리말을 주제로, 자연과학 분야는 환경, 생태 등을 테마로 진행해 보는 것이다. 공공기관이나 시민단체 등에서 모집, 진행하는 외부 연계 동아리의 경우 봉사활동 시간 및 활동 내용을 인정해주는 등 학생부 기록이 가능하다.
평소 우리말에 관심 많았던 숭신여자고등학교 1학년 모세연양은 올해 7월부터 ‘우리말 사랑이’를 이끌고 있다. 한글문화연대(www.urimal.org)에서 자율동아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지난 6월 계획서를 작성, 신청한 뒤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모양은 “또래 청소년 비속어 사용 실태 조사, 과자 이름 우리말로 바꿔보기, 온 가족이 참여해보는 순우리말 퀴즈 등 프로그램을 짰다. 율동공원에 부스를 열거나 등굣길 친구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면서 한글의 소중함을 알게 됐고 국어 교사의 꿈도 더 확실해졌다”고 했다.
학교라는 테두리를 조금 벗어나 직접 모든 활동을 계획, 실행해보니 리더십과 적극성 등도 기를 수 있다. 모양은 “부스를 찾은 외국인에게 한글 원리를 설명해주고, 네 살 꼬마에게 우리말 페이스 페인팅을 해줬다”며 “자율동아리 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도 익히게 됐다”고 했다. “국어 교사가 되어 교육 현장에 우리말 사랑을 뿌리내리고 싶어요.”
한국해양재단(koreamaritimefoundation.or.kr)의 경우 매년 3월 해양교육 동아리를 모집한다. 바다와 환경을 주제로 동아리 활동을 계획하는 학생들이라면 참고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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