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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말 비빔밥(이건범)

국어기본법 지키려 헌재 법정에 서다

by 한글문화연대 2018. 7. 9.

[삶과 우리말 2017년 제27권 제1호 · 봄]에 실린 글


국어기본법 지키려 헌재 법정에 서다


이건범(한글문화연대 대표)


2015년 8월 13일 청와대 앞, 한글 교과서 장례식을 마친 뒤 기자회견장에서.

국어기본법을 상대로 삼은 위헌심판 청구 사건의 공개 변론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건 2016년 3월 22일의 일이었다. 어디 행사에 갔던 우리 연대 정인환 위원이 문화체육관광부 사람에게서 이 소식을 듣고 내게 알린 것이다. 얼마 후 문체부 국어정책과에서 이 공개 변론에 참고인으로 나서 달라고 부탁하는 전화가 왔다. 한자혼용을 주장하던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 전통문화연구회, 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등의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2012년 10월 22일에 국어기본법 등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는데, 3년 반 만에 공개 변론이 열리게 된 것이다. 사건번호는 2012헌마854.

청구인들은 ‘한자는 국자(나라글자), 우리 문자’라는 주장에서 출발하여 네 가지 사안에 위헌 확인을 요구하였다. 첫째, 국어기본법 제3조(정의), 제15조(국어문화의 확산), 제16조(국어정보화의 촉진)에서 국어를 표기하는 문자로 한자를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한글전용·한자 배척의 언어생활을 강요하므로, 행복추구권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둘째, 국어기본법 제14조(공문서의 작성) 제1항, 같은 법 시행령 제11조에서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공문서를 한글로만 작성하도록 하여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다. 셋째, 국어기본법 제18조(교과용도서의 어문규범 준수)와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6조 제3항에서 초·중등학교의 교과용도서에 한자혼용을 금지하여 학습권과 수업권, 출판의 자유를 침해한다. 넷째, ‘초·중등학교 교육 과정’(교육과학기술부 고시 제2012-3호) 중 ‘학교 급별 교육 과정 편성과 운영’ 부분은 초·중등학교 교육 과정에서 한자 교육을 선택적으로 받도록 함으로써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 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침해한다. 헌재에서는 둘째 사안을 ‘공문서 조항’, 넷째 사안을 ‘한자 관련 고시’라고 불렀다.
법률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지평지성의 박성철 변호사는 이 공개 변론이 매우 이례적이라는 소감으로 대책 회의를 시작했다.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모든 사건에서 공개 변론을 여는 게 아니라 대체로 사회적 논란이 심할 거라 보이는 사건에 한하여 1년에 10여 건의 공개 변론을 연다고 한다. 그런데 3년 넘게 사건을 묵히다가 공개 변론을 여는 것도 그렇고, 1명씩 세우던 양쪽 참고인을 2명씩 요청한 것도 처음이라고 하였다. 청구인들의 요구를 헌재가 받아들인 결과였다. 문체부에서는 국립국어원장을 지냈고 막 한글학회장에 취임하신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님을 또 다른 참고인으로 모셨다.
설마 헌재에서 세상을 거꾸로 돌리는 판결을 내리겠냐고 전망하면서도, 헌법소원은 어떤 결정이 나든 돌이키기 어려우니 우리에겐 이런 이례적인 점들이 무거운 짐으로 다가왔다. 특히나 청구인들 변호인은 초대 헌법재판소 재판관 출신인데다, 시기도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2014년 교육부에서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를 검토하겠노라고 발표했다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잠시 유보한 때라 도무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이 위헌심판 청구인들의 논리는 2014년부터 교육부에서 초등 한자 교육 강화를 검토하던 논리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둘 사이의 차이는 한자혼용이냐 한자병기냐, 초등 저학년부터냐 고학년부터냐 따위 양적인 부분일 뿐이고, ‘한글전용의 폐해, 문해력 저하, 동음이의어 처리의 어려움, 한자 문화권 교류의 필요’ 등의 근거 논리는 모두 같았다. 이 심판 청구인들이 교육부에도 정치적 압력을 가했던 것이다. 혹시라도 이 재판이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확대로 가는 징검다리 노릇을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헌재에서는 4월 말까지 변론 요지와 참고인 의견서를 내달라고 하여, 준비할 시간도 넉넉하지 않았다. 청구인들이 처음에 낸 심판청구서는 1백 쪽이 넘고, 그 뒤 문화체육관광부 법률 대리인들의 변론서를 반박하는 내용으로 낸 보충의견서 역시 1백 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그저 읽는 데만도 꽤 긴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짧은 기간에 참으로 난감했다.  더구나 나는 자판을 쳐서 글을 쓸 수는 있어도 내가 쓴 글조차 제대로 읽을 수 없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그런데 200쪽 넘는 자료를 검토해야 한다니…….
게다가 내 의견만 밝히는 형식이 아니라 상대방의 주장을 인용하고 반박하는 논쟁적인 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터라 의견서 작성은 더더욱 힘든 일이었다. 나의 논리 전개에 맞춰 청구인들의 글 가운데 인용할 대목들을 배치하는 수고를 피할 수 없었다. 나는 청구인들의 심판청구서와 보충의견서에서 인용할 만한 글을 하나하나 따내고, 인용문 조각들을 내 논리 전개 흐름에 따라 분류한 뒤, 글을 쓰면서 인용문의 위치와 반박 논리를 수없이 조정했다. 약간 남아 있는 시력을 온통 쏟아부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글쓰기였다.
내 의견서는 애초 예상보다 길어져 무려 120여 쪽에 이르렀다. 단 한 차례 공개 변론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니 무엇 하나 가벼이 넘길 수가 없었다. 정말 막판에는 밤을 새워 가며 글을 쓰고 고치고 했다. 그런데 나는 나의 이 고통스러운 작업 과정이야말로 청구인들의 핵심적인 주장, 즉 한자어는 한자로 적어야 뜻을 알 수 있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그들이 도무지 방어할 수 없는 강력한 반증이라는 사실을 공개 변론 전날에 깨달았다. 나는 그들의 청구서를 눈으로 읽은 게 아니라 소리로 바꾸어 귀로 들었고, 내 의견서 역시 글자를 소리로 바꾸어 귀로 들어가며 고치고 또 고쳤던 것이다. 아홉 분의 재판관 앞에서 나는 이렇게 공개 변론을 시작했다. 

공개 변론은 헌재 누리집 ‘변론 동영상’에서 변론 날짜(2016년 5월 12일)로 검색하면 볼 수 있다. 

 

2016년 11월 24일 헌법재판소 법정, 공개변론을 준비하며.

“저는 1급 시각장애인입니다. 저는 중학교부터 한문 과목에서 한자를 공부했습니다. 지금 저는 한자뿐만 아니라 한글도 읽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청구인들이 냈던 아주 긴 심판청구서와 보충의견서를 저는 음성 합성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다 들었습니다. 그 안에는 동음이의어도 있었고 제가 모르는 낱말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음성 합성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소리로 듣고 그 말뜻을, 그리고 문장 전체를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모르는 낱말은 옆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사전을 찾아서 이해했습니다. 한자어라고 해서 한자로 표기되지 않으면 뜻을 알 수 없을까? 저는 이런 주장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말로 이해할 수 있는 한자어 낱말을 왜 그 낱말 소리대로, 한글로 적었을 때 이해하지 못하겠습니까. 청구인들은 그리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단적으로 중국의 시각장애인들 예를 들어 보죠. 

중국은 분명히 한자라는 표의문자를 사용하는 나라입니다. 누구나 다 표의문자를 쓰고, 중국의 모든 말은 표의문자에 근거한 낱말들입니다. 그런데 중국의 시각장애인들은 표의문자 한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중국어 낱말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대화와 체험을 통해서 남의 설명과 자신의 사용과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겁니다.
자, 그런 것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분들 시각장애인을 위해서 중국에서 사용하는 점자는 어떤 것일까요? 많은 사람이 표의문자 원리일 거라 추측하겠지만, 중국의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는 전적으로 표음문자 원리에 입각해 있습니다. 중국의 시각장애인들은 표음원리의 점자를 이용하여 중국어로 된 책을 읽는 거죠. 무슨 말씀이냐 하면 우리가 말로 사용하는 단어, 말을 사용하는 경험들이 실제로 문자로 되어 있는 단어를 읽는 경험보다 앞서고 매우 중요하다는 겁니다.”


— 참고인 진술 내용 중

 

다들 20쪽 미만이었는데, 120쪽 가까운 방대한 의견서를 낸 참고인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헌법재판관들은 매우 깊은 관심을 보였고, 나중에 박한철 헌재 소장은 내게 존경의 마음까지 표현하는 바람에 꽤나 쑥스러웠다. 어쨌거나 시작은 성공이었다. 문제는 논쟁의 구도였다. 한자혼용 표기와 한자 교육 강화가 필요하냐 아니냐가 이 심판 사건의 요지이고, 두 사안에 대해 그렇다, 아니다로 갈라지는 참으로 오래된 논쟁 구도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사실, 2013년 봄에 문체부에서 처음 변론서를 준비할 때만 해도 나는 한자 문제의 쟁점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했었다. ‘한자 표기 강화’와 ‘한자 교육 강화’가 어떻게 다른 효과를 내는지 잘 분간하지 못했다. 청구인들의 문제의식이 매우 혼란스럽다는 점을 깨달은 것은 2014년 10월 31일에 헌법재판소에 ‘참고자료’라는 제목으로 내 의견서를 내면서였다. 이 자료에 바탕을 두고 그 뒤로 1년 넘게 교육부와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문제로 논란을 펼치면서 내 문제의식은 더 날카로워졌고, 그 경험을 종합해 나는 2016년 1월에 ≪한자 신기루: 한자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단행본을 냈다. 따라서 청구인들의 주장을 요모조모 반박할 자료와 증거, 논리는 충분했다. 하지만 그렇게 청구인들의 주장을 따라가면서 비판하다 보면, 그들이 만든 틀 안에 갇힐 위험이 높다. 미국의 인지 언어학자 레이코프가 말한 ‘프레임 전쟁’이 여기서도 벌어지는 것이다.
나는 공개 변론 전날까지 이 문제를 아주 끈질기게 고민했다. 의견서는 5월 2일에 제출했지만, 그 의견서에서도 명확하게 나의 ‘논쟁 구도’를 밝히지 못한 게 못내 찜찜했다. 공개 변론에서는 먼저 10분 동안 참고인의 의견을 요약하여 말해야 한다. 밋밋하고 장황하게 이것저것 말할 게 아니라 논쟁의 구도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재판관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 텐데, 참으로 초조했다. 난 내가 쓴 의견서를 다시 듣고 또 들었다. 의견서 첫머리에서 지적했듯이, 청구인들의 주장은 참으로 혼란스러웠다. 원칙적으로 한자어는 한자로 적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전제인데, 여기서는 그리 말하다가도 저기서는 말을 바꾼다. 모든 한자어를 한자로 표기하자는 건 아니며, 특정 영역에서 한글전용을 하기 위해서라도 한자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그쪽으로 무게가 쏠려 있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한자혼용이 필요함을 다시 주장하고…….
난 이 혼란이 어디에서 오는지 헤아려 보았다. 그것은 단지 그들의 개인적 혼란이 아닐 거라는 깨달음이 어느 순간 내 머리를 쳤다. 그렇다. 한자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필요한지 그들 역시 헷갈리고 있었고, 이는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에게 마찬가지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혼란은 공개 변론 당시 청구인 쪽 대리인과 참고인 진술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나는 머리를 쥐어짜던 막바지에 이 혼란을 ‘필수:교양’이라는 구도로 정의하여 그 실체를 분석하기로 마음먹었던 터라, 참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저는 우리에게 두 가지의 선택밖에 없는 건지 몇 번을 생각해 봤습니다. 하나의 선택은 ‘한자를 모른다면 우리는 절대 한자어의 뜻을 모른다’는 논리에서 이어지는 결론입니다. 이때 한자를 모른다 함은 표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자로 표기하지 않으면 한자어 뜻을 알 수 없다라는 주장이라면 우리의 문자 생활은 전적으로 국한문혼용으로 가야 하는 게 맞습니다. 청구인들이 그렇게 주장하셔야 되는 게 맞고요. 그리고 어릴 때부터 일본이나 중국처럼 반드시 한자 교육을 철저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한자를 알면 한자어 낱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정도로 우리가 생각한다면 한자를 알면서 글자를 쓰지 못하더라도 큰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는 읽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한자의 그 뜻은 알고 있다든지 또는 대강 유추를 할 수 있다든지 하면 되는 겁니다. 한자를 알면 한자어 낱말의 뜻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만약 이런 차원이라면 한자를 ‘교양’으로서, 특히 예로부터 내려왔던 고급 교양 문화로서 한자를 생각하고 거기에 걸맞게 한자를 대우하면 맞다고 생각합니다.
청구인들은 공문서에서 한자혼용을 하자는 것인가. 아니면 말자는 것인가. 그냥 교육만 잘 시키면 된다는 것인가 되게 혼란스러웠는데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왜냐하면, 아까 참고인 중에 한 분께서 ‘한글전용으로 하다가 필요할 때 한자혼용을 하면 된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 필요는 누가 정할까요. 저는 공문서는 학력과 관계없이 국민 누구나 봐야 하는, 볼 수 있는 문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공문서는 정부에서 사용하는 문서입니다. 그 공문서를 작성하는데, 어떤 공무원은 100% 한자를 혼용하고, 어떤 공무원은 1%만 한자를 혼용한다…
그랬을 때 우리는 100%의 한자혼용을 할 수도 있는 공무원에 대비해서 100% 한자혼용에 적합한 한자 능력을 반드시 갖추어야만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 혼용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개인의 사적인 생활에서 충분히 그러실 수 있습니다. 자신이 책을 쓰거나 강의를 하거나 이럴 때 그리해도 아무 지장 없습니다. 그러나 공문서는 그런 용도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정부의 정책을 알리는 거고 그 정책을 통해서 국민은 자신의 권리와 의무, 또는 자기가 어떤 손해를 볼 수 있고 어떤 이익을 볼 수 있고 이런 것을 파악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청구인들의 보충의견서에 나왔듯이 ‘적정한 수준의 한자혼용’이라고 설명되어서는, 그리고 ‘필요할 때 적절하게’ 식으로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 참고인 진술 내용 중

 

2014년 10월 30일, 헌법재판소에 한글전용의 정당성을 밝히는 보충의견서를 제출하며.

나는 청구인들의 모호한 주장대로 공문서에 한자혼용을 허용한다면 최악의 상황에서는 모든 국민에게 한자 위주의 문서 읽기를 ‘필수’로 강요하여 국민의 알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제약하는 결과를 부르리라고 경고하였다. 한자를 ‘교양’ 수준으로 보지 않는다면 그 논리적 귀결은 일본과 같은 국한문혼용 문자 생활일 수밖에 없음을 밝힌 것이다. 그 다음에는 청구인들의 관심이 한자 모양 익히기에 있는지, 한자어 뜻 이해에 맞춰져 있는지 그들의 혼란을 더 명료하게 밝히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공개 변론 현장에서 청구인 쪽 대리인과 참고인들은 한자혼용이라는 ‘한자 표기’에 집착하면서도 정작 현실의 문제점으로는 한글 세대가 한자어 낱말의 뜻을 모른다는 이야기만 쏟아 놓았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한자어 낱말의 뜻을 가르치는 교육 방법에 관심 있는 분들이 엉뚱하게도 문자 표기 문제를 걸고넘어진 꼴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한글전용 때문에 문해력이 낮아졌다는 청구인들의 근거 없는 주장을 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에 의거하여 비판한 뒤, 한자 어원 풀이로 낱말 뜻을 가르치려는 접근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대목에서 참으로 안타까웠다. 나는 이미 ‘한자어의 뜻이 구성 한자의 훈을 기계적으로 결합하여 얻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논리를 제법 체계화하여 ≪한자 신기루≫에서 한자 조합의 대표적인 유형 몇 가지를 제시했었다. 그렇지만 우리 국민이 자주 쓰는 말 가운데 각 유형이 얼마나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아직 계량적으로 분석하지 못한 상태였다. 2015년 말에 그런 작업을 하기 위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등학교 교사들과 함께 초등 3~6학년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어를 샅샅이 뽑아 놓았지만, 아직 분류하지 못한 상태였다. 헌재 재판관들이 ‘기계적 결합’이라는 나의 용어까지 사용하면서 내 논리를 청구인 쪽 대리인과 참고인에게 들이대며 질문을 던지는 마당에, 한자 훈을 더하여 낱말 뜻에 도달할 수 없는 한자어가 많다는 구체적인 통계를 댄다면 청구인들의 주장 상당 부분을 물리칠 수 있었으련만…….
결국 이 작업은 헌재 공개 변론 뒤부터 시작되어, 9월 23일에야 ‘한자어의 이해 과정과 어원 지식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한글문화연대 토론회에서 마무리되었다. 특히 수학 용어에 관해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초중등 수학 용어를 분석한 광운대학교 수학과 허민 교수님의 연구가 있었기에 나는 국어, 사회, 과학, 도덕의 한자어만 분류하여 결과를 냈다. 구성 한자의 훈과 낱말 사이에 상관성이 높은 것은 32%뿐이고, 나머지 한자어는 상관성이 매우 낮거나 동어 반복에, 자칫하면 잘못된 개념에 이를 수 있는 낱말이었다. 수학자 허민 교수에 따르자면 수학 용어 가운데 한자가 도움이 되는 것은 21%뿐이었다. 한자어 교육에 한자 지식을 동원하는 전략이 적절하지 않음을 보여 주는 통계였다. 나는 이 연구 결과를 헌법재판소에 참고인 보충의견서로 제출하였다.
2016년 11월 24일, 헌재는 이 헌법소원 사건의 판결을 내렸다. 국어기본법의 공문서 한글전용을 밝힌 ‘공문서 조항’과 초중등 교육 과정에서 한자/한문 교육의 선택 과목화를 담은 ‘한자 관련 고시’에 위헌 확인을 청구한 두 가지는 기각하고 나머지는 모두 각하하였다. 공문서의 한글전용에 대해 헌재는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이 사건 공문서 조항은 공문서를 한글로 작성하여 공적 영역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을 확보하고 효율적·경제적으로 공적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국민들은 공문서를 통하여 공적 생활에 관한 정보를 습득하고 자신의 권리 의무와 관련된 사항을 알게 되므로 우리 국민 대부분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한글로 작성할 필요가 있다. 한자어를 굳이 한자로 쓰지 않더라도 앞뒤 문맥으로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뜻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할 수 있으므로 한자혼용 방식에 비하여 특별히 한자어의 의미 전달력이나 가독성이 낮아진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이 사건 공문서 조항은 청구인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지 아니한다.”


— 헌법재판소, ‘2012헌마854 국어기본법 제3조 등 위헌 확인 사건 판결 요지’ 중에서 (2016. 11. 24.)


각하한 사안과 한글전용에 관한 기각 판결은 재판관 전원 일치였으며, 한자 교육 관련 고시에 대해서는 위헌 의견을 낸 4명이 있었지만 5:4로 기각하였다. ‘한자 관련 고시에 대한 기각’ 이유를 밝힌 다음 대목은 한자에 관한 과장 광고를 차분히 비판하고 있어서 눈여겨볼 만하다.

 

“한자어는 굳이 한자로 쓰지 않더라도 앞뒤 문맥으로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낱말에 담긴 뜻은 결국 그 단어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실제 생활에서 그 단어를 사용하는 과정을 통해 정확히 이해하게 되는 것이므로, 그 낱말이 한자로 어떻게 표기되는지를 아는 것이 어휘 능력 향상에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고 보기 어렵다. 독해력이나 사고력의 향상도 근본적으로는 꾸준한 독서와 다양한 경험 등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한자 지식이라는 하나의 요소가 학생들의 독해력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 헌법재판소, ‘2012헌마854 국어기본법 제3조 등 위헌 확인 사건 판결 요지’ 중에서 (2016. 11. 24.)

 

게다가 ‘한자 관련 고시에 대한 반대 의견(재판관 박한철, 안창호, 서기석, 조용호)’에서도 문제가 초등학교 교육 과정에 있지 않음을, 즉 중고교 한자 교육부터 먼저 정상화하여야 함을 수차례 밝혔던 나의 생각과 비슷한 견해를 이렇게 말했다.

 

“초등학교 단계에서는 모국어의 기초 낱말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고 우리글의 기본과 언어 예절, 대화 방법 등 기초적인 언어 학습을 해야 하는 시기이므로 한자 교육을 한글 교육과 동시에 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중고등학생은 우리말과 글에 대한 이해와 사용 능력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상태로, 한자 교육이 한글 학습이나 기초적인 언어 습관 형성에 혼란을 초래한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적절한 수준의 한자 교육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 전통에 대한 이해와 사고를 기르고, 우리말의 어휘력을 향상시키며, 각 교과 과목의 필수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등 학생들의 교육적 성장과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중략) 최소한 중고등학교에서부터 기본적인 한자 지식을 갖추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학에서는 보다 심화된 내용의 한자 학습과 학문적 연구 등을 할 수 있도록 교육의 토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 헌법재판소, ‘2012헌마854 국어기본법 제3조 등 위헌 확인 사건 판결 요지’ 중에서 (2016. 11. 24.)

 

2016년 11월 24일 헌법재판소 앞, 한글전용 합헌 결정을 기뻐하며.

숨죽이고 판결을 듣던 나는 환호성을 지를 수도 없는 분위기 때문에 조용히 법정을 빠져나와 미리 준비해 간 한글문화연대 논평을 법정 건물 앞에서 발표했다. 언론에도 바로 뿌린 논평에서는 이 판결의 의미를 다음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이 판결은 일부 식자층 위주의 말글살이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알 권리’를 보호하는 말글살이가 중요하다는 ‘언어 인권’ 정신이 우리나라에 뿌리내림을 뜻한다. 둘째, 이 판결은 우리 한민족의 문자 역사가 19세기 말부터 대략 1백여 년의 과도기를 거쳐 한자 시대에서 한글 시대로 완벽하게 옮아왔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셋째, 청구인들과 동일한 논리를 펼치는 지나친 한자 숭상론이 더 이상 우리 교육을 망가뜨려선 안 된다는 주장의 올바름을 확인해 준 것이다.”


— 한글문화연대 논평 중에서(2016. 11. 24.)

 

우리 사회에서 한번은 제대로 짚고 넘어갈 일이었으므로, 나는 헌재의 이번 공개 변론과 판결이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고 믿는다. 넓은 시야로 보자면, 한자혼용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일종의 과도기 혼란이다. 국한문혼용이라는 표기 방식은 우리 선조들이 사용한 일반적인 문체가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우리말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한자로 기록했고, 이 ‘한문’이 19세기 말까지 주된 문체였다. 말의 순서와 글의 순서, 말의 표현과 글의 표현이 달랐던 것이다. 이런 번역 시대로부터 말과 글이 순서와 표현 모두 일치하는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1백 년가량 국한문혼용이라는 문체가 주로 사용된 것이다. 한자를 사용하여 한문 번역 생활을 하던 지식인들이 당연히 자신에게 익숙한 한자를 버리지 못하고 국한문혼용으로 옮아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변화일지도 모른다. 그 과도기에 어린 시절의 호기심과 젊은 날의 총명함을 모두 바쳐 글을 읽고 쓰던 분들 입장에서 요즘의 한글전용은 참으로 걱정스러운 삶의 방식이리라.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열정적으로 살던 시대의 삶의 방식, 생각의 방식을 자연스럽고 진실하며 가장 사람다운 것이라고 여긴다. 누구에게나 ‘그때가 좋았던’ 바로 그때가 있다. 그것은 자기 삶의 정체성과 정당성의 표출이니, 어찌 이를 그저 탓하기만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세상은 바뀌고 사람살이도 변한다는 점만은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자연스러운 세상의 움직임을 돌이키려는 시도가 바로 한자어로 ‘반동(돌이킬 반反, 움직일 동動)’이다. 대부분 노년 세대인 청구인들의 걱정이 그저 헛되거나 사리사욕의 결과라고 할 수는 없다. 이분들의 걱정이 반동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젊은 세대와 꾸준히 대화하면서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들을 믿어야 할 것 같다. 미래는 미래 세대에게 맡겨야 한다. <끝> 2017년 3월 6일

2015년 8월 13일 세종로, 한글 교과서 장례식을 치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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