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활동/알기 쉬운 우리 새말

[알기 쉬운 우리 새말] '대체 가능'한 말 다듬기

by 한글문화연대 2022. 7. 14.

드문 일이다. 여론조사 결과부터 먼저 이야기하자면 응답자 중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 단어를 두고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25.6%) 혹은 “외국어든 우리말이든 상관없다”(19.8%)고 답했다. 쉬운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54.6%)에 비슷한 비율로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에 크게 부정적이지 않은 응답이 나타난 것이다.

한편 이 단어를 처음 들어 본다는 사람이 38.9%나 된다. 그런데 나머지 이 단어를 들어 본 적이 있고 의미를 알고 있다고 답한 사람 중에서 그 뜻이 “생각했던 것과 같은 의미”라고 답한 비율은 무려 96.3%에 달했다.

이 단어는 바로 엔에프티(NFT·non-fungible token)다. ‘엔에프티’는 ‘고유한 인식 값을 부여받아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특성을 가진 블록체인상의 디지털 저장물’을 뜻한다. 그러니까 실물 상품 혹은 작품을 버리거나 잃어버려도 ‘상표 등록 재산권’에 해당하는 이 엔에프티를 갖고 있으면 새로운 실물을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는 개념이다.

그렇지만 이 분야에 관심 있는, 그래서 이 단어를 눈여겨본 사람들은 그 뜻을 정확히 아는 듯하다. 2018년 처음 우리 언론에 등장한 이래 4년간 무려 4000만번 넘게 사용한 것으로 검색되니 그 쓰임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새말모임 위원들도 과연 이렇게 전문적인 용어를 우리말로 다듬어서 대체할 필요가 있는가에 의문을 품었다. 다듬은 말을 제시한다 해도 사용자들이 선택하지 않고 계속해서 엔에프티라는 용어를 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위원들은 엔에프티라는 단어를 끝까지 다듬어 보기로 했다. “새롭고 낯선 개념으로 뜻을 이해하기 쉽지 않은 만큼 우리말을 같이 써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니까 우리말로 ‘대체’해 쓰지 못하고 엔에프티라는 표현을 계속 사용하더라도 어려운 외래 용어를 우리말로 풀어서 ‘함께’ 씀으로써 사용자의 이해를 도울 근거를 주자는 것이다.

다듬은 말 후보는 반드시 ‘non-fungible,’ 즉 ‘다른 것으로 바꿀 수(대신할 수) 없다’는 뜻을 나타내야 했다. ‘대체 불가’, ‘비대체성’ 혹은 ‘고유’라는 단어가 필수적이다. 여기까지는 큰 이견이 없었다. 그다음부터가 문제였다. ‘디지털’이라는 표현을 넣을 것인가, 빼도 될 것인가. ‘토큰’이라는 단어를 우리말로 바꿀 것인가, 바꾼다면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 게 적절할까. 토큰의 사전상 의미는 ‘약속·합의 등을 지키겠다는 징표’이니, ‘징표’라는 단어로 대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인증서’라는 단어로 대체하는 것은 어떨까.

용어의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성격 때문에 ‘저장물’(貯藏物) 혹은 ‘저작물’(著作物)이란 표현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특정 디지털 매체에 ‘담겼다’는 점에서는 ‘저장물’이 맞지만, 작가의 고유한 ‘작품’이라는 내용물의 성격상 ‘저작물’이라는 표현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다듬은 말 후보들은 ‘대체 불가 디지털 저장물(혹은 저작물)’, ‘고유 인증 디지털 저장물’, ‘고유 디지털 저장물’, ‘대체 불가 토큰’, ‘비대체성 토근(혹은 저장물)’ 등등. 늘 고민하게 되는 일이다. 많은 단어를 사용해 표현할수록 원뜻이 더욱 정확히 전달되긴 하지만, 표현이 길어질수록 사용이 불편하다는 사실. 그래서 ‘디지털’도 빼고, ‘인증서’도 빼 가며 표현을 간소하게 다듬었다.

결국 다듬은 말 후보로는 ‘대체 불가 토큰’, ‘비대체성 토큰’, ‘대체 불가 징표’가 선정됐다. ‘토큰’이라는 단어는 우리말로 바꿔 쓰기 모호하며, 굳이 바꿔 쓸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말 표현을 하나쯤 소개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징표’를 포함한 대체어도 제시한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새말모임 위원들이 제시한 우선순위와 시민들의 선호도가 같았다. ‘대체 불가 토큰’이 73.5%로 가장 높았고, ‘비대체성 토큰’(54.2%), ‘대체 불가 징표’(49.6%) 순이었다.

말의 개념이 어려운 만큼 다듬은 말 후보 선정도 어려운 작업이었다. 앞으로 첨단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한 전문용어는 더 빨리, 더 많이 생산될 것이 분명하다. 말 다듬기 작업도 그만큼 어려워질 것이며 할 일도 많아질 터이다. 조금도 속도를 늦출 수 없는 새말의 다듬은 말 짓기. 새말모임의 위원들은 새삼, 좀 더 바투 고삐를 당겨 본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출처: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712500037

서울신문 [알기 쉬운 우리 새말]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알기 쉬운 우리 새말] ‘대체 가능’한 말 다듬기

김정희 /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드문 일이다. 여론조사 결과부터 먼저 이야기하자면 응답자 중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 단어를 두고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25.6%) 혹은 “

www.seoul.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