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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전 세계를 매료한 '우영우'와 '헤어질 결심', 비결은 말맛 살린 번역 - 김이진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22. 10. 18.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9기 김이진 기자

klee0129@naver.com

 

그 어느 때보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 콘텐츠의 열풍이 거세다. 이제는 아시아를 넘어 북미, 유럽, 남미 등에서도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일례로 영화 <기생충>2019년에 아카데미상을, 드라마 <오징어 게임>2021년에 에미상을 받으며 한국 콘텐츠의 새 역사를 썼다. 이처럼 한국이 만들어내는 작품의 위상이 점차 높아지면서, 이제 한국어는 다른 나라의 언어로 많이 번역되는 언어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한국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어떻게 전 세계인을 매료할 수 있었을까? 한 가지 비결은 한국어 말맛을 살리는 번역이었다. 작품의 고유한 분위기와 대사의 어감을 해치지 않고 온전히 전달하는 자막이 있을 때, 타국의 시청자들도 한국 작품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최근 세계적인 흥행을 거둔 두 작품인 이엔에이(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은 과연 어떻게 우리말의 묘미를 살려 번역되었는지 알아보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는 주인공 우영우가 스스로를 소개할 때 자신이 이름이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라고 말하면서 이어서 기러기, 토마토, 별똥별, 역삼역 등의 단어를 늘어놓는 장면이 나온다.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특유의 말장난 대사 중 하나다. 이처럼 거꾸로 읽어도 제대로 읽은 것과 똑같은 낱말이나 문구를 회문(回文)이라고 한다. 회문은 대부분 언어에서 만들 수 있다. 한국어는 음절 단위로 뒤집어 읽을 수 있지만, 문자 특성에 따라 이것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영어는 음절 단위로 뒤집을 수 없는 대신, 음소 단위로는 뒤집기가 가능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현재 넷플릭스에서 31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자막과 함께 제공되고 있다. 우영우가 스스로를 소개하는 이 장면은 영어권 지역에서 ‘kayak(카약), deed(행위), rotator(회전), noon(정오), racecar(경주용 차)’로 번역되었다. 이외에도 각국에서 저마다의 재치 있는 현지 단어로 바꾼 자막을 살펴보면, 일본어 자막은 キツツキ(딱따구리), こねこ(아기 고양이), みなみ(남쪽)’ 등의 단어를, 프랑스어 자막은 ‘radar(레이더), elle(그녀), ressasser(반복하다)’ 등의 단어를, 스페인어 자막은 ‘arenera(모래상자), somos(우리는)’ 등의 단어를 사용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특히 이 영화는 전작들보다 좀 더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점들이 많아 걱정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지난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평점을 받았고, 감독상까지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기생충>이 그러했듯이 정교한 번역 작업에 힘입어 멜로 스릴러라는 장르적 한계를 뛰어넘었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게 되었다. 지난 6월 한국과 프랑스에서 동시 개봉한 이래로 현재까지 총 193개국에 판매된 가운데, 덕분에 국내 극장 손익분기점은 낮아지게 되었다. 한편 <헤어질 결심>은 내년도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한국 영화 대표로 국제장편영화 부문 출품작으로 선정되어 수상을 기대해볼 만하다.

스마트폰 통역 앱은 영화 안에서 중요한 매개체다. 모국어가 다른 두 주인공의 대화는 통역 앱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며, 둘은 통역 앱을 수시로 사용하면서 의사소통을 보완한다. 통역 앱은 여자주인공인 서래마음이라는 의미로 말한 중국어 단어를 심장으로 잘못 번역하기도 한다. 한국어가 서툴러 마침내’, ‘단일한등의 단어를 다소 어색한 맥락에서 구사하는 서래의 발화는, 영화 내에서 낯선 느낌을 주는 동시에 미묘한 감정선을 드러낸다.

<헤어질 결심>의 영어 번역은 <기생충>의 영어 번역을 했던 달시 파켓이 맡았다. 그는 <살인의 추억>부터 <암살>, <국제시장>, <택시운전사>, <승리호>, <브로커> 등 지금껏 200여 편의 한국 영화를 번역한 전문 번역가이다. 늘 영화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바탕으로 번역 작업을 하는 그는 한 인터뷰에서 <헤어질 결심>을 작업하면서 가장 번역하기 까다로웠던 표현으로 원전 완전 안전을 꼽았다. 한국어 특유의 언어유희가 담긴 문구이기에 영어로 완벽하게 번역하기 어려웠지만, 고심 끝에 ‘Clearly Cleaner Nuclear’로 표현했다고 한다.

 

한국의 콘텐츠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각 문화권과 언어권에 어울리는 번역이다. 세심히 공들여 제작한 번역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질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나아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한국만의 정서와 한국어의 말맛을 잘 살린 번역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것을 가장 세계적인 것으로 만드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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