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작합니다!” 9월 25일 월요일 오전 9시, 여느 학교와 마찬가지로 담임선생님의 밝은 목소리가 1학년 교실 안에 울렸다. 중국어, 영어, 한국어가 한데 섞여 들리던 교실이 조용해지고, 모두 제자리에 앉아 한국어 교재를 펼친다. ‘손’, ‘달’, ‘별’, 지구촌학교에 재학 중인 1학년 박우택 학생은 오늘 받침이 ‘ㄴ, ㄹ’인 단어를 배운다. 교재의 그림과 어울리는 단어를 찾아 선을 잇고, 그 단어를 천천히 따라 쓴다. 쓰기 어려운 글자가 있거나 어떻게 발음할지 모를 때는 선생님을 불러 도움을 받는다. 이 교실의 선생님은 총 네 명. 지구촌학교에서 근무하는 1학년 담임선생님 한 명과 이화여자대학교 다문화 가정 한국어 교육 봉사 동아리 ‘다정’의 부원 세 명이다.
지구촌학교는 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있는 전국 최초 다문화 대안 초등학교이다. 다정은 2021년 2학기부터 꾸준히 지구촌학교 학생들의 한국어, 수학, 놀이영어 과목 수업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어 수업은 아직 한국어가 서툰 1학년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수업이기에 더 신경을 써서 수업에 임한다.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단어를 천천히 발음해 주며 한 명씩 이해할 수 있게 돕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인터뷰는 1교시 한국어 수업이 끝난 후, 지구촌학교 1층 카페에서 진행했다. 다정 21기 부원이자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교육과 22학번 이소영 씨가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소영 씨는 다정이 어떤 동아리인지 하는 질문에 “다정은 2005년에 만들어진 이화여자대학교 중앙동아리이고, 이주 여성과 다문화 가정 내 아동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 봉사 활동을 합니다.”라고 답했다. 교육 봉사 활동은 서대문구 가족센터의 다문화 가정 아동과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한국어 교육 수업과 지구촌학교, 이렇게 두 가지로 크게 나누어진다고 설명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교육 불평등에 관심이 많았어요. 인종, 언어, 신체적 장애 등으로 많은 학교 내 청소년, 학교 밖 청소년, 그리고 성인들이 불평등을 겪고 있잖아요. 그래서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정규 교육 과정을 따라갈 수 없는 문제를 돕고 싶었어요.” 소영 씨는 학생 신분으로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찾던 중 다정이라는 동아리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답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었다. 지구촌학교에서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하면서는 학생들이 아직 한국어가 서투른 탓에 번역기를 사용해 대화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수업할 때 ‘이 단어는 당연히 알겠지?’라는 생각은 배제하려고 해요. 이 친구들이 우리와는 다른 문화적 맥락을 내재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당연히 알고 있는 단어도 이 친구들은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2:1 비대면 한국어 교육 활동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까. “수업 첫 날과 마지막 날에 사전 테스트, 사후 테스트를 해요. 그리고 매달 동아리 회의에서 담당 아동의 수업 참여도가 어떤지 부원들과 서로 피드백하며,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직접 만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므로 종종 학생의 집중력이 흐트러지기도 했다. 그래서 부원들은 수업 자료를 만들어 화면에 띄우고 설명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들이 비대면 환경에서도 집중할 수 있게 하려고 매번 고민한다.
이러한 부원들의 노력이 때로는 빛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1, 2학년 수업하면서 받아쓰기를 했었는데, 매번 0점만 받던 친구가 1년이 지나니 열 문제 중 절반 정도를 맞힐 만큼 발전해서 뿌듯했었어요.” 한국어 수업 때 자음, 모음을 따라 쓰기보다는 한 단어를 여러 번 보여 주고 익히게 했던 것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가르쳤던 학생들이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며 수업에서 만날 일이 없게 되었으나, 복도에서 만나면 잊지 않고 인사해 주는 소소한 일들이 가장 보람 있는 순간들이라고 소영 씨는 답했다.
코로나가 잦아들며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간 지금, 다정에서는 교육 활동뿐만 아니라, 한 학기에 한 번씩 아동과 직접 만나며 경복궁 궁궐 키트 조립하기, 한국어 퀴즈 풀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반응이 좋다면 코로나 이전에 했었던 고궁 답사, 전통 문화 체험 활동도 더불어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21세기는 그야말로 지구촌 시대가 되었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인종, 언어, 문화가 함께 공존한다. 다정은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한국 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우리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이주 여성과 다문화 가정 아동들에게 건네는 다정한 손길이 그들의 삶에 닿을 때까지 “다정”한 교육 활동은 계속될 것이다.
'사랑방 > 대학생기자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글문화연대의 '쉬운 우리말 기사를 쓰자' - 김가현 기자 (0) | 2023.11.22 |
---|---|
나만 몰랐어? 한글문화연대의 꾸준하고 든든한 행보 - 강민주 기자 (0) | 2023.10.27 |
“섬세한 한국말이 좋아요.” 베트남 유학생이 본 한국말 - 박수진 기자 (2) | 2023.10.27 |
마음을 모으는 스포츠, 언어도 모을 순 없을까? - 김민 기자 (0) | 2023.10.27 |
보고서 과제로 고생하는 새내기를 위한 글쓰기 수업 - 이명은 기자 (0) | 2023.10.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