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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한자 가르쳐도 문해력 해결 못해… '어휘망' 교육이 정답 (이건범 기고)

by 한글문화연대 2026. 10. 20.

[출처: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opinion/contribution/2026/09/15/SCYOAGXSYRGERPBZHBRTHML45M/

 

[기고] 한자 가르쳐도 문해력 해결 못해… ‘어휘망’ 교육이 정답

한자 교육이 문해력 저하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함. 한자 암기의 비효율성과 실제 의미 파악의 한계를 분석하고, 단어의 관계와 맥락을 학습하는 어휘망 중심 교육이 문해력 향상에 실질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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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를 몰라 한자어의 뜻을 모르니 초중고생들에게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또 나온다. 심심한 사과, 금일, 중식처럼 권위주의적 조직에서 쓰는 철 지난 한자어를 모른다며 문해력이 낮아졌다는 비약에 따라 제시하는 처방이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몇 가지 암초에 부딪힌다.

첫째, 한자어 이해에 실마리가 되는 정보는 한자 모양이 아니라 훈에서 나오는데, 한자 교육으로 가면 글자 모양 외우느라 헛심 쓸 위험이 높다. 암기 효율 높이자고 한자 병기나 국한문혼용으로 돌아간다면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둘째, 한자의 훈을 모아도 단어 의미에 다가가지 못하는 한자어가 너무 많다. 파충류는 ‘기어 다니는 벌레’가 되고, 사회와 회사는 ‘모임’이라는 있으나 마나한 실마리만 준다. 우주는 ‘집 우, 집 주’, 비난은 ‘아닐 비, 어려울 난’이니 뜻이 엉뚱하고, 문화는 ‘글월 문, 될 화’니 무슨 도움이 될까? 유리수와 무리수는 ‘이치’와는 아무 관련도 없고, 방정식을 ‘모 방, 길 정’으로 알아서 무엇이 풀리겠는가?

셋째, 한자의 훈과 음이 동어 반복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재화는 ‘재물 재, 화폐 화’인데 재물은 다시 ‘재물 재, 물건 물’로 동어 반복이다. 헌법은 ‘법 헌, 법 법’으로 동어 반복이고 ‘죄 죄, 벌 벌’처럼 한자의 훈과 음이 동어 반복인 것도 많아서 뜻 이해에 도움은 되지 않는다. 죄는 죄일 뿐이고, 벌은 그저 벌이니 죄와 벌의 의미를 모르면 한자와 무관하게 이해를 못 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단어 의미가 한자에서 나오는 게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넷째, 교과서 한자어 가운데 어려운 한자가 섞인 단어가 많다. 초등학교 지구과학 한자어 용어 23개 가운데 ‘퇴적암’처럼 교육부 권장 1800자 바깥의 한자를 포함한 용어가 35%, ‘주상절리’처럼 고교용 한자를 포함한 용어가 39%였다. 한자 가르쳐서 한자어 용어를 이해하게 하려면 초등학생도 한자 2000자 정도는 익혀야 하니 비현실적이다. 쉽고 중요한 한자만 가르치면 어떻겠냐 싶지만, 그런 한자가 들어 있는 한자어는 안 가르쳐도 뜻 이해에 문제가 없다.

부작용은 제법 클 것 같다. 교과서에 한자가 표기되는 순간, 한자 급수 시험, 한자 사교육, 조기 한자 교육 등 사교육이 요동칠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학습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어휘력을 키워 문해력을 높이고자 한다면 학습용어 가운데 중요한데도 어려워하는 단어를 선별하고, 이 한자어들을 더 깊이 이해시킬 방법을 보완하자. 문맥 속에서 단어 뜻을 파악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한편으로, 단어에 대한 분석과 관계 짓기를 통해 뜻을 또렷하게 만들어주면 좋다. ‘분류, 분석, 분배’ 나 ‘신도시, 신제품, 신소재’처럼 같은 글자 중에 같은 속성을 지닌 것들을 묶어서 알려주는 형태소 어휘망 교육, 비슷한 말과 반대말, 상위어와 하위어 등의 단어를 대비시키면서 단어의 뜻을 분명하게 쌓아가는 관계어 어휘망 교육을 강화하면 좋을 것이다.

‘구분’과 ‘구별’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구별’과 ‘차별’의 결정적 의미 차이는 무엇인지 아는 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어휘력이다. 단어의 뜻은 사회적으로 약속된 정의와 개인의 사용 경험에서 파악하고 구체화해야 한다. 설명을 익히고 읽기와 대화, 쓰기에서 그 단어의 씀씀이를 깨닫고 부려봐야 뜻에 다다를 수 있다. 한자 교육이 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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