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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말 비빔밥(이건범)

(3) 한자어는 한자로 써놓아야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by 한글문화연대 2013. 7. 29.

[한자 광신도와 금 긋기-3] 이건범 상임대표


우리말 가운데 한자로 이루어진 낱말은 반드시 한자로 적어야 그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한자 광신도들은 주장한다. 30~40년 전처럼 국한문 혼용 표기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초등학교 교과서도 한자 혼용으로 바꾸고, 교과서를 읽기 위해 학생들은 당연히 한자를 공부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한자어를 한글로 적어 놓으면 그 뜻을 알 수 없으므로, 한글만으로 생활하고 있는 우리 국민은 문맹이란다. 우리가 문맹이 아니라는 사실까지 입증할 필요는 못 느낀다. 하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은 한자로 표기하지 않거나 그 낱말의 한자 어원을 모르면 낱말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에 한계가 있지 않을까 염려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인류는 말을 먼저 하였고, 그다음에 문자를 사용하였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갓난아기 때부터 말을 먼저 배우고 학교에 갈 무렵에 문자를 익힌다. 언어 사용의 기본은 듣기와 말하기이며, 문자는 듣기와 말하기를 쓰기와 읽기로 확장한 것이다. 사람의 머릿속에는 마치 사전처럼 낱말의 발음, 꼴, 뜻, 다른 낱말과의 관계 등 낱말에 관한 정보가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는데, 이것을 전문 용어로는 ‘심성어휘집’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서 머릿속 사전인 셈이다. 사람은 어릴 적부터 듣거나 말하고, 문자로 본 낱말을 체험이나 문장의 앞뒤 흐름, 남의 설명 등을 통해 의미를 파악하게 되고, 그런 과정이 쌓이면서 머릿속 사전의 어휘가 늘어나며 뜻도 풍성해진다.


예를 들어 토박이말인 ‘사람’이나 한자어인 ‘인간’은 둘 다 초등학교 1학년생이라도 귀로 들어서 그 뜻을 알 수 있는 낱말인데, 들어서 바로 그 의미가 전달되고 이해된다면, 어원과 낱말의 역사에 상관없이 그 낱말은 우리 머릿속 사전인 심성어휘집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문자로 토박이말인 ‘사람’을 읽을 때나 한자어인 ‘인간’을 읽을 때 우리는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음운적 읽기 과정을 거친다. ‘인간’을 한자 어원으로 분해하여 읽지는 않는 것이다.


만약 한글로 된 문장 속에서 ‘인간’을 ‘人間’으로 표기한다면 ‘인간’으로 읽을 때에 비해 훨씬 과중한 시각적 처리와 지식을 동원해야 한다. ‘인간’을 입말 단어로 익숙하게 알고 있는 언어 사용자에게 굳이 한자의 어원을 상기시키는 ‘人間’을 읽도록 강제한다면 이는 현학의 취미를 강요하는 것이거나 문화적 폭력을 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한글 전용으로 바뀐 신문에서 매일 이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또한 ‘인간’이라는 말뜻을 한자 어원 정보 없이도 알고 있는 초등학생에게 그것의 한자가 무언지 모른다는 이유로 말뜻을 모른다며 타박한다면 이 역시 억지일 뿐이다.


한 언어의 낱말에는 자주 듣고 말하며 읽고 쓰는 고빈도의 일상어와 자주 사용하지 않는 저빈도의 전문어가 있다. 일상어는 낱말을 듣거나 보는 즉시 그 뜻을 자동으로 떠올리게 되며, 전문어는 낱말의 뜻을 알아채는 데에 배경 지식과 이해력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김포 공항에서 막 이륙한 비행기의 소음에 놀란 비둘기는 먹던 모이를 두고 지붕으로 잽싸게 날아올랐다.”라는 문장을 읽어보자. 이 경우 한자어인 ‘비행기’와 토박이말인 ‘비둘기’는 낱말 처리 과정에서 전혀 다르지 않은 과정을 거쳐 이해된다. 둘 다 고빈도 구체어이며 일상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고빈도의 일상어는 그 어원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처리하는 단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비행기’를 날 비(飛), 갈 행(行), 틀 기(機)로 분석해서 듣거나 읽는 경우는 없다. 한자어는 어원이 무엇이든 이미 한국어에서 토착화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커피’를 coffee라고 쓰지 않아도 그 뜻을 이해하는 것처럼 한자로 표기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커피의 영문 철자를 모르더라도 어르신들이 커피가 무엇인지 아는 것처럼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모른다하여 이미 익숙해진 낱말의 뜻을 모르는 일은 없다.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곤충, 연필, 우산, 자동차와 같은 고빈도 일상어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자주 나오는 일상어 가운데 ‘배려’나 ‘민주주의’와 같이 구체적인 사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을 가리키는 낱말도 있다. 초등 2학년 국어에 나오는 ‘배려’라는 말은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쓴다는 뜻인데, 이 말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삶의 체험이 중요하다. 지하철에서 내리는 사람의 편리와 지하철의 순조로운 운행을 위해 사람이 내리고 난 다음에 탄다든가, 노약자 지정석에는 자리가 비어 있더라도 앉지 않는다든가 하는 마음이 곧 배려라는 사실을 다양한 삶의 체험을 통해 알아가고 확장시켜야 정확한 의미에 접근할 수 있다. 한자 어원만 달랑 안다고 그 뜻에 충분히 다가가기는 어려운 것이다.


저빈도의 추상어나 전문어는 대부분 외국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신조어들이다. 한자 혼용파들은 수학 개념인 ‘미분’과 ‘적분’을 한자로 써야 뜻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자 微分, 積分은 수학적 의미를 염두에 두고 영어의 Differential과 Integral을 번역한 신조어이다. 이런 낱말은 번역의 정확성과 적절함은 제쳐놓고, 한자로 읽어도 그 말의 개념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미분과 적분은 원래 어려운 수학 용어라 수학을 배운 사람들 사이에서만 그 뜻이 통한다. ‘미분’과 ‘적분’을 읽어서 그 낱말의 뜻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微分’과 ‘積分’을 읽어 그 낱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주장에는 근거도 증거도 없다. 이 경우에 필요한 것은 한자 표기나 한자 지식이 아니라 바로 수학 지식이다.


전문 학술서나 고전에 등장하는 한자어들은 사전에 등재된 경우라도 저빈도에다 그 의미가 어려워서 얼른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있다. 이 경우에 한자의 병기가 전반적인 문맥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빈도의 전문 용어나 어려운 한자어는 그 낱말을 구성하는 한자 또한 저빈도인 경우가 많아서 기초 한자를 익힌 경우라 하더라도 그 뜻을 이해하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후곤(後昆)’이라는 말은 후손이라는 뜻인데, 이 昆자는 상용 1,800자에 들어 있지 않은 저빈도 한자라 이를 적어 놓더라도 뜻의 이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럴 때에는 사전을 찾아봐야 한다.


그리고 ‘미분’과 ‘적분’의 경우처럼, 한자 하나하나의 뜻을 안다고 해도 그 낱말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그 낱말이 사용되는 분야와 출처, 맥락 등을 알지 못하면 그 낱말의 실제 뜻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어려운 낱말이 포함된 문장들을 읽을 때는 낱말을 구성하는 한자 음절 각각의 의미보다는 문장의 맥락이 이해에 더 큰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도 배경 지식과 그 분야에 대한 이해력이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다.


자, 한자어는 한자로 써놓아야 뜻을 알 수 있다거나 한자를 모르면 한자어의 뜻을 이해할 수는 없다는 한자 광신도의 주장이 별 근거가 없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하지만 한자 혼용파의 억지에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우리말 가운데 한자어가 많으므로 한자를 알면 낱말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누구나 품을 수 있다. ‘이해에 도움이 된다’는 이 생각마저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 교육과정에서도 중학교부터 한문 과목을 두어 한자를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한자 광신도들은 유독 초등학생에게 집중하여 한자 교육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한자 교육이 필요한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중고등학교나 대학교, 일반 성인 교육에서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초등학교”에서 할 필요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지금 서울시교육청에서 펴고 있는 한자 교육 강화 정책도 초등학교가 주요 대상이다. 왜 그럴까? 이 문제는 다음 글에서 다시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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