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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5월 15일, 그리고 세종 - 김수지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16. 5. 24.

515, 그리고 세종

 

 

한글문화연대 대학생 기자단 3기 김수지 기자

suji950@naver.com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세종대왕 어진

매년 5월 15일, 많은 사람이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스승의 날을 기념하지만, 스승의 날이 가지고 있는 정확한 의미와 그 기원에 대해서는 대부분 알지 못한다. 1년 365일 중 왜 5월 15일이 스승의 날로 지정된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지금으로부터 619년 전, 1397년 5월 15일은 훗날 조선 왕조 제4대 왕에 오른 이도가 태어난 날이다. 나라의 기틀을 잡고 백성을 사랑한 세종대왕의 탄신일이 바로 5월 15일인 것이다.
1965년에 민족의 위대한 스승이신 세종대왕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정하였고, 그 결과 현재 많은 사람이 5월 15일 하면 세종대왕 탄신일 보다는 스승의 날을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이번 기사는 한글을 창제하시고 대한민국의 영원한 스승이신, 하지만 많은 현대인이 잊고 사는 세종대왕에 관해 기술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세종의 여러 업적 중에서도 백성을 사랑했던 그 마음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세종대왕은 앞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조선왕조의 제4대 왕이다. 1418년 8월~1450년 2월까지 재위했으며 이름은 도, 자는 원정이고, 시호는 장헌으로 정식 명칭은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이다. 세종은 정치·경제·국방·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훌륭한 업적을 쌓아 수준 높은 민족문화와 조선 왕조의 기틀을 튼튼히 하였다. 건국 초기의 강압적 왕의 모습에서 벗어나 온유하면서 유능한 신권과 유교적 소양을 지닌 국왕의 만남으로 유교 정치를 펼쳤다. 세종 집권 당시는 사대주의가 팽배한 시대였으나, 외국 문화를 참조하면서도 민족문화를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민족 역사상 가장 찬란한 시대를 만든 왕으로 평가된다. 또한, 백성을 매우 사랑했던 왕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백성을 사랑했던 왕, 그는 무엇을 했나?

세종대왕이 행했던 거의 모든 일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애민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종은 ‘백성들을 위한 나라’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정당한 법치를 통해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힘없는 백성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던 국가제도들을 새롭게 개편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예로 조세제도 개편을 들 수 있다. 조세제도를 개편하며 새롭게 확립한 제도가 바로 공법인데, 공법이란 누구나 일정하게 토지 1결당 10두의 세금을 내는 것이다. 과전법이 아닌 공법을 시행함으로써, 백성들이 더는 부당한 세금을 내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조세제도를 실행하기 전, 세종은 1430년 3월부터 8월까지 무려 5개월간 전국에 걸쳐 국민 여론 조사를 시행했다는 것이다. 이후 세종대왕은 국민의 의견을 토대로 공법을 보완해 나갔고, 이 공법은 백성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 후 세종 26년에 연분9등법과 전분6등법으로 최종 확정되었다고 한다.


세종의 애민 정신은 양인들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노비의 사형을 금지하는 법을 만드는 등 노비들의 지위 개선을 위해서도 힘썼고, 죄인들이 3번의 재판을 받게 하는 ‘금부 삼복 법’을 실시하여 죄인들의 인권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이외에도 세종은 여러 새로운 제도를 만들거나, 개편하여 공정한 법치를 통한 ‘백성들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일반 백성들은 글을 알지 못했고, 글을 읽지 못하니 세종이 백성을 위해 만든 법도 알 수 없었다. 이를 계기로 세종대왕은 우리말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 훈민정음을 창제하셨다.

 

훈민정음 해례본

 

애민 정신의 결정체, ‘백성들을 위한 글자’를 만들다.

세종대왕은 1443년(세종 25) 집현전의 젊은 학자들의 협력을 받아 훈민정음을 창제하셨고, 3년간의 검증 기간을 거쳐 1446년에 반포했다. 이로써 우매한 백성들도 쉽게 뜻을 전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세종은 입의 구조와 발성 원리를 연구하여 자음(17)과 모음(11)을 서로 교합하여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는 아주 새로운 표기법을 창제하였는데 이것은 누구나 쉽게 배워 익힐 수 있는 백성들을 위한 글자였다.


한글을 창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신하가 한글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린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들은 한글 창제와 사용은 사대주의에 어긋나는 일이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중국의 것을 무조건 수용하기보다는 어떤 부분에서는 우리의 것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한글 창제는 백성들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 부분을 통해서 한글은 우매한 백성들을 위한 글자이며, 세종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다시 한 번 알 수 있다.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를 통해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 위대한 업적을 남긴 많은 왕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세종대왕이 최고로 평가받고 또 민족의 스승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가 세운 모든 업적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번 달은 ‘세종 나신 날’이 있는 5월인 만큼, 백성을 위한 삶을 사셨던 세종대왕의 마음을 한 번쯤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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