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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대학생기자단

그림입니다, 그림이 아닌 - 이민재 기자

by 한글문화연대 2017. 1. 17.

그림입니다, 그림이 아닌

 

한글문화연대 대학생기자단 3기 이민재 기자

2942207@naver.com

 


“그것은 아마도 세종대왕이 ‘왕’이었기에 가능했던 커다란 개혁이었지 않을까요?”


휴대전화기로 사회소통망서비스(SNS)을 이용하고 대화프로그램으로 소통하며 우리는 날마다 끊임없이 한글을 접하고 있다. 한글의 우수성은 이미 세계에서도 인정했고, 많은 외국인들이 한글을 아름다운 글자라고 칭찬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한글이 ‘아름다운’ 글자라는 걸 잘 깨닫지 못한다. 흔히 접할 수 있는 한글이기에, 혹은 바쁜 일상에 치여 깊이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날은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에 잠깐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데 독특한 그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한글이 숨어 있었다.


글씨그림#116 기름장어 – 최희호

그림을 그린 최희호 씨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   *   *


안녕하세요. 한글문화연대 대학생기자단 3기 이민재입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최희호 작가) 안녕하세요. 경기도 분당에 살고 있고 세 아이의 아빠인 평범한 가장입니다. 40대 남자이고 건축설계 일을 합니다. 반갑습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처음 글씨 그림을 접하게 됐습니다. 간단해 보이는 그림이지만 한글로 구성된 수묵화 같은 그림이 참 인상 깊었는데요. 글씨그림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최희호 작가) [기름장어]와 같은 시사적인 내용은 집에서 소파에 앉아 '뉴스룸'을 시청하면서 그립니다. 요즘은 태블릿 컴퓨터가 생겨서 작업이 편해졌어요. 글씨그림 작업은 하면 할수록 형태(그림)와 기능(글씨)을 조율하며 가치를 찾아가는 게 건축설계 과정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운영하시는 블로그에서 확인되는 바로는 2016년 4월의 [집밥]이 첫 글씨그림입니다. 글씨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최희호 작가) 저도 잊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최초의 글씨그림은 고3 때 반 친구들과 같이 맞춰 입은 티셔츠 디자인 작업이었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수학을 가르치셔서 수학을 저희 반 특징으로 잡고 제가 수학 기호를 이용해 스쿠버 다이빙하는 장면을 그려넣었어요. 당시 그 그림도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건축가가 되고 난 뒤 업무상 스케치를 자주 합니다. 어느 날 제주도 현장 근무하면서 이면지에 뭔가를 슥슥 그리다가 다시 시작됐어요. 그때 그린 그림을 재미로 사회소통망서비스에 올렸다가 작가 활동으로 계속 이어지게 됐죠.

글씨그림 작가 최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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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가장 만족하는 그림으로 [사랑]을 꼽은 최희호 씨. 누구나 공감을 할 수 있는 단어 [사랑], [낚시], [집밥], [소녀], [꽃] 같은 초기 작품에 애정이 더 많이 간다고 한다. 글씨그림을 그리는 것은 마치 퍼즐을 맞추는 작업 같다고 말한다. 우선 화두가 되는 단어를 적어보고 그 단어의 형상에서 주제에 부합한 이미지를 상상과 스케치를 반복하며 찾아낸다고. 그러다 만족스러운 그림이 맞춰지면 '이번엔 운이 좋았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단다.



글씨그림#2 사랑 – 최희호


최희호 씨가 운영하는 누리집(https://brunch.co.kr/@tallguy)에는 현재(2017년 1월 15일) 144개의 글씨그림이 올라와 있다. 그냥 그림을 그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한글을 사용해서 꾸준하게 그림을 그리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한글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남보다 한글에 더 관심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국어 공부를 해본 경험이 있는데 중국어 간체나 번체는 영어의 알파벳이나 한글의 자모와 같이 소리와 문자의 연관된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무조건 외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암기력에 자신이 없던 저는 몇 달 배우고 포기하고 말았죠. 아마 그때 한글의 뛰어남과 소중함을 더 절실히 느꼈던 거 같아요. 글씨그림 77번은 한글날 취지에 맞게 [훈민정음]이라는 글씨그림을 그리면서 평소 생각과 주워들은 얘기들을 적어 봤던 것입니다. 한문이나 영어로 그린 글씨그림도 있긴 한데 한글이 제일 표현하기에 쉽고 다양해서 신기하다 느꼈습니다.”


글씨그림#77 훈민정음 – 최희호


현재 심각한 문제로 손꼽히는 한글 맞춤법 파괴 현상에 관한 질문에서는 조금 색다른 의견을 말해줬다.

 

“생업에 바쁜 백성들이 어려운 한문을 배우기도 힘들었겠지만 그것을 더 힘들게 만든 것은 집권층의 특권의식이었을 겁니다. 기득권자들의 생리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지금의 우리도 쉽게 공감할 수 있죠. 현재나 과거나 가진 자들의 이기심이 너무도 깊이 똬리를 틀고 있는 이 땅에서 한글 같은 민중을 위한 발명품이 나오다니, 한글을 통해 가장 큰 희망을 심어준 셈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세종대왕이 ‘왕’이었기에 가능했던 커다란 개혁이었지 않을까요? 세종대왕님이 약 500년 후에 한글을 가지고 이런 장난을 치고 있는 백성이 나타난 걸 아신다면 좋아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맞춤법 파괴 현상이라는 것이 실수이거나 모르고 틀리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행해지는 것은 압니다만, 혹시 그런 현상들도 한글이 가진 '대충 쓰긴 쉬워도 제대로 쓰긴 어려운' 점 때문에 생긴 일종의 체념과 희화의 의미도 있지 않을까 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해 봅니다.”

 

외국인들도 우리말을 더 쉽게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최희호 씨. 그는 영어조기교육의 필요성을 이해는 하지만 언어는 생각을 발전시키고 사고를 완성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자의식이 형성되는 나이까지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모국어를 우선해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글과 그림 곳곳에서 한글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온다. 지금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숨은 글씨 찾기’와 현실을 풍자하는 ‘뼈 있는 그림’ 그리고 감성과 이성을 모은 ‘글씨로 그린 이야기’를 블로그에 연재하고 있다. 그가 그린 글씨그림을 차근차근 살펴보면 어느새 한글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되새겨 보게 된다. 인상적인 글씨 그림 몇 장을 소개한다. 그림을 먼저 본 뒤 글씨 제목을 보고 글씨가 숨겨진 그림을 다시 보자. 그림과 글씨의 의미가 더욱 새롭게 다가오는 듯하다.

 

그림 출처: https://brunch.co.kr/@tallguy#magazines



뼈있는 그림 [소외] 글씨그림#142 – 최희호

뼈있는 그림 [소녀상] 글씨그림#136 – 최희호

숨은 글씨 찾기 [운전조심] 글씨그림#125 – 최희호

글씨로 그린 이야기 [가을] 글씨그림#86 – 최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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