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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우리 나라 좋은 나라(김영명)

사대주의에 대하여(6)

by 한글문화연대 2017. 3. 23.

[우리 나라 좋은 나라-67] 김영명 공동대표


사대주의에 대하여(6)

 

사진 송영길 의원 페이스북

사대주의는 정치적 대외관계 뿐 아니라 문화의 면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는 과거와 현재에 큰 차이가 없다. 문화적 사대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는 조선 시대의 모화 사상이지만 현대에 와서도 사정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앞선 외국의 문물을 배우고 따라하는 것은 뒤진 지역에서 불가피한 일이어서 그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정도가 좀 지나치지 않나 하는 느낌을 준다. 이런 문화적 사대주의, 그리고 정신적·지적 사대주의는 한국의 국력이 커지고 한국 문화의 힘이 강해짐에 따라 줄어들 것으로 기대되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현상을 보면 반드시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지금껏 외국 학문과 사상을 무턱대고 수입하여 그것이 최고인 줄 아는 태도가 한국 지성계를 지배하여 왔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의 자생적인 사상이나 독창적인 학문을 이루려는 노력은 한국 역사를 통틀어 매우 부족했고 나타난 성과도 사실 보잘 것이 없다. 한국에 제대로 된 사상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50년 전에 함석헌 선생이 <뜻으로 본 한국 역사>에서 개탄하고 그것이 한국 역사가 피폐했던 주원인이라고 갈파하고 한탄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 한국에는 사상이 빈약하고 독창적인 사상은 더더욱 빈약하다. 사상이나 학문이라고 할 만한 것은 모조리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고, 기껏해야 이를 자기 나름대로 가공한 것일 뿐이다.


한국 역사에서 나타난 학문이나 이론, 사상들 중 한국 고유의 것 또는 한국인의 독창적인 것이 무엇이 있을까? 퇴계나 율곡의 이기론이 그럴까? 나는 잘 모르지만 그들의 학문이 드높은 것이라고 칭송하고 있으니 그렇다고 받아들이자. 그러나 그들의 학문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그것은 중국 주자학의 범위 안에 있을 뿐이다. 그러면 실학은 어떨까? 그 또한 한국의 고유한 ‘사상’이나 ‘학문’ 또는 ‘이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당시 조선의 사회경제적 현실을 개선해 보고자 하는 실천적인 제언들로서의 가치는 인정할 수 있다. 실학은 당시 조선 지식인계를 지배하던 주자학의 추상적인 고준담론에 반발하여 현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출발한, 말하자면 현대의 사회과학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대단히 창의적인 학문 체계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쯤에서 많은 사람들의 반발이 있을 줄 알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민족주의를 옹호하는 내가 순정 민족주의 또는 막무가내 민족주의자가 아닌 증거일지도 모른다. (역시 나는 열린 민족주의자이다!)


이런 사상과 학문의 빈곤은 현대에도 쭉 계속된다. 자연과학 쪽은 내가 잘 모르거니와 이 글과 별로 연관성이 없으므로 제외하고, 한국의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 중에서 한국인이 창의적으로 만들어 낸 사상이나 이론, 방법론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 시도조차 미미하기 짝이 없다. 이런 문제점에 대한 지적은 오래 전부터 계속 나왔지만, 그 역시 문제 제기에 그쳤고 이를 시정하려는 실제 노력은 거의 없었다. 시정 자체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실제 성과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러한 시도 자체가 없었다는 사실은 한국인의 정신과 학문 권력 구조 모두에 뿌리박은 사대주의를 잘 보여준다. 여기서 학문 권력 구조라 함은 서양 학문이 지배하는 권력 구조를 말한다. 여기서 벗어나는 시도는 배척 당하고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기도 하지만) 학계에서 자리잡기 어려운 학계의 권력 구조를 말한다.


나는 이런 현실에 불만을 품고 오래 전부터 한글문화연대를 만들어 활동하고, 학계에서는 한국적 정치학 연구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많은 저항을 받은 바 있다. 우리말 사랑이라는 명제에 대한 반발은 크지 않았으나 이전의 기성 권력이었던 한자 애호가들과 새로운 권력인 영어 권력과의 싸움이 여전히 만만하지 않은 실정이다. 학계에서의 반발은 더 심각하다. 이른바 학문의 보편성 운운 하면서 자신들이 배운 서양 학문에 대한 조그만 도전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수입 학자(심하게 말하여 지식 수입상)들의 반발을 흥미롭게 겪은 바 있다. 이에 대한 보고라면 보고랄 것이 내 책 <담론에서 실천으로>  (2010)에 잘 나와 있다.


이러한 문화적 사대주의는 물질보다는 정신 영역에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신적인 사대주의는 주로 물질 세계라고 여겨지는 안보 문제에서도 나타난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국인들의 자세에 대해 내가 얼마 전에 쓴 한 수필을 이 난에 발표한 적이 있다(580호, 2016. 8.11). 그 뒤 올해 1월에 더불어민주당의 송영길 국회의원을 비롯한 몇몇이 중국을 방문하여 왕위 외교부장과 면담하였다. 거기서 어떤 구체적인 얘기가 오갔는지는 확실히 모르겠거니와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중국 정부는 한반도 사드 배치를 당연히 반대하며 한국에 대해 각종 경제 문화 보복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왕위는 면담에서 그런 보복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송영길 등이 한국의 사드 배치 당위성을 얼마나 잘 설명하였는지 모르겠지만, 중국 정부는 그런 우리의 해명에 콧방귀도 뀌지 않고 백지화를 요구하는 모양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환구신보>는 사드 배치를 백지화하지 않으면 중국인들에게 한국 화장품을 팔지 못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중국의 아무개 외교 관리는 방문 여건이 안 되었으니 좀 있다 오라는 한국 정부의 요청을 무시하고 무조건 와서는 소국이 대국에게 덤비면 되겠냐는 식으로 오만을 떨었다고 한다. 한국이 중국보다 소국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해 온 사대적 행태들 때문에 중국인들에게 단단히 무시당하고 있는 것이다.


송영길 등이 중국을 방문하자 한국의 보수파들은 이를 사대적 행태라고 비난하였다. 하지만 사드 배치를 졸속하게 결정한 정부나 이를 지지하는 보수파들은 미국에 대해 과연 사대적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중국이 자국에 대한 정보 수집으로 활용될 수 있는 한반도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 정부는 서둘러 배치 결정을 내리기 전에 중국에게 충분히 그 당위성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책을 마련했어야 한다. 그 졸속 결정에는 지금껏 한국 정부와 엘리트들이 간직해 온 대미 사대주의가 정신적 밑바탕이 되었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다른 면에서 보면 중국이 저렇게 오만하게 나오고 있으니 사드 배치 반대론자라고 하더라도 이제 와서는 무작정 반대할 수만은 없는 처지에 놓이게도 되었다. 송영길 등이 중국에 가서 양해를 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보수파에게 사대적 행위로 보일 여지가 충분하다. 야당이나 사드 배치 반대파들은 한국 정부에 대해 배치 백지화나 연기 등을 주장할 일이지, 자기들이 직접 중국에 가서 상국 관리들을 알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이는 사대적으로 보일 수 있을 뿐 아니라 한 국가 외교의 중심을 흩뜨리고 혼란을 일으키는 일이기도 하다. 이래 저래 정부나 야당이나 이쪽 아니면 저쪽에 사대적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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