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좋은 나라-67] 김영명 공동대표
우리는 우리가 외국에 대해 배타적이라고 생각하고 외국인들도 그러는 것 같다. 사대주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에 대해서도 학술적인 연구는 없지만, 한국인의 대외적 배타성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 한국인의 한 특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이에 대해 나도 별로 다른 의견이 없었다. 적어도 최근까지는 말이다. 한국인이 대외적으로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외국에 대해 배타적이라면 아마도 그 까닭은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의 민족으로 구성된 1민족 사회에서 살고 있고, 게다가 역사상 외국의 침략을 많이 받아 이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고, 그 결과 우리 안에 ‘하나 의식’이 강화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정말로 외국인이나 외국 문물에 대해 배타적일까 하는 의심이 든다. 어느 정도 그런 것은 사실이겠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우리가 특별히 더 배타적일까? 우리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물질이든 정신이든 외국의 것을 배척하고 정말 ‘우리 것’만을 고집할까?
얼핏 보면 정말로 우리는 우리끼리 뭉치고 남을 배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얼핏 보지 않고 말이다) 많은 경우 이러한 배척은 배타성이나 개방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인종과 경제·문화적 격차 에 따른 ‘차별’의 문제로 보인다. 우리는 선진국 백인들에게는 지나치게 굽실거리고 못사는 후진국 사람들은 멸시하는데, 이는 배타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인종 차별’의 문제이다. 한국인은 인종 차별을 한다. 그런데 그 차별은 멸시의 차별이 있고 숭상의 차별이 있다. 보통 차별이라고 하면 멸시나 구박을 의미하지만, 그 반대인 숭상도 차별은 차별이다. 한국인은 외국인을 차별 대우한다. 한국인과 외국인을 차별하고 외국인 가운데에서도 선진국 사람과 후진국 사람을 차별한다. 여기에는 인종 차별과 계급 차별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런데 차별은 한국인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인종 차별이든 계급 차별이든 세상에 차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미국인도 인종 차별을 하고 일본인도 민족 차별을 하고 한국인도 계급 차별을 한다. 한국인의 인종 차별이 다른 나라보다 더 심한지 아닌지 나는 알 수 없다. 더 심하다고 주장하든 아니라고 주장하든, 최소한 설문 조사 결과라도 가지고 나와서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아직 그런 조사 결과를 보지 못했다.
외국인 노동자를 구박하는 한국인 사장님은 외국인에 대한 배타성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더 일반적으로 그런 구박은 을에게 부리는 갑의 횡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은 1민족 사회 구성원들이라 응집성이 강하고 그래서 외부인에게 배타적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동시에 선진 종주국에 대한 선망과 추종이 강하다. 앞에서 누누이 말했듯이 한국인들은 선진 문물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행동이 과연 배타적인 행동인가? 아니다. 완전히 반대이다. 영어공용어론이 한국처럼 사회 전체의 논란거리가 된 나라는 다언어 국가 외에는 없다. 이런 사람들이 정말 외국 문물에 대해 배타적인가? 우리는 중국의 문물을 숭상하여 소중화로 자처하였는가 하면, 현대에는 미국 문물의 홍수에 빠졌고 세계화 조류를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경우는 외국 문물에 대한 배타성이 아니라 그 반대인 무분별한 수용과 지나친 의존이 문제이다. 선진 문물에 대한 숭상과 개방은 사대성의 다른 표현이다.
그런데 배타적인 면도 물론 있다. 한국 사회는 1민족 사회로서 오랫동안 중국 이외의 외부와 단절되어 살아왔기 때문에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으로 되기 쉬웠다. 한국인이 그동안 역사적으로 적극 개방한 것은 강대국, 때로는 종주국의 문물에 대해서였고, 이에 배치되는 주변 문물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또 중심국 문물에 의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과 우리를 차별하는 배타성도 보였다. 백인을 숭상하면서도 백인을 가족의 일원으로 들이기를 꺼려하는 것이 대표적인 한 보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한국인의 배타성과 사대성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같은 현상의 다른 측면, 또는 달리 말하자면 같은 본질의 상반된 두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상호 모순되는 말들을 내가 하는 까닭은 실제로 우리에게 상호 모순되는 측면들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보니 나도 모르게 횡설수설이 된 것 같다. 내 생각이 완전히 무르익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결론을 내리면 다음과 같다. 한국인은 배타적이지만 세상에 배타적이지 않은 민족이나 국민은 없다. 한국인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특별히 더 배타적이라는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적어도 나는 못 보았다). 한국인은 배타적인 것만큼이나 또는 그 이상으로 외국에 의존하고 외국 문물을 숭상한다. 그러므로 한국인의 배타성을 비판하려면 그 사대성을 적어도 그만큼의 비중으로 같이 비판해야 한다. 휴, 이제 좀 명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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